2024-04-21

나는, 도전이 아니라 소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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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양은 평소에 조심성이 많아서 자기가 정말 좋아하거나 잘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없이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가 지난 달부터 학교 육상 팀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둘리양은 평소에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을 좋아하기 때문에 육상종목을 하면 잘 할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팀에 가입하기 위한 안내문을 읽어보니 주중에 하루도 연습을 빠지면 안되고 연습에 지각하거나 조퇴하는 것도 안된다고 적혀 있었다.
당시에 둘리양은 월요일과 수요일 일요일에 테니스 클리닉에 다니고 있었고 화요일은 피아노 레슨, 목요일은 클럽 활동이 없는 날에는 아트 레슨,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격주로 학교에서 하는 클럽 활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만약에 육상팀에 들어가려면 이 모든 활동을 다 접어야만 하기에, 나는 몇 번이고 둘리양에게 확인을 했다. 둘리양은 다른 모든 활동을 접는 것이 싫지만 그래도 육상 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리하여, 아트 레슨은 당분간 쉬기로 하고, 테니스 클리닉도 더이상 등록하지 않기로 했다. 육상이 끝나는 여름 방학이 되면 다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아노 레슨은 두 달이 넘게 쉬게 되는데다 여름 방학 동안에는 레슨이 없기 때문에 다음 레슨이 시작하는 9월까지 반년을 쉬어야 한다. 피아노 선생님은 한창 기량이 오르고 있는 둘리양이 레슨을 쉬는 것에 반대한다고 하셨다. 나도 남편도 같은 생각이다.
게다가 아무리 성실한 훈련과 팀웍이 중요하다 해도, 일주일에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두 시간 이상 육상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아예 팀에서 제명을 하겠다는 규칙이 무척 못마땅했다.

화나는 마음을 저 아래로 가라앉힌 다음 육상 코치에게 읍소작전으로 타협을 시도했다. 육상팀의 코치 (영어를 가르치는 여교사이다) 에게 정중하다 못해 비굴해 보일 정도의 태도로 이메일을 보낸 것이 지난 주 목요일이었다.
그 날은 팀에 가입하려는 학생들이 처음으로 코치와 미팅을 하는 날이었는데, 저녁 시간에, 오늘 둘리양이 육상팀 미팅에 다녀와서 무척 기대하고 있고, 새 운동화도 사주었고, 다른 스케줄도 다 조정해 두어서 연습을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일단 육상팀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호감을 표현한 다음, 단 하나 아직도 조정 중인 스케줄이 있다고 썼다. 화요일 오후의 피아노 레슨을 늦은 저녁 시간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현재 저녁 시간에 다니고 있는 아이가 한 달 후 쯤에는 그만둘 것 같으니 그 때 까지만 화요일의 육상 연습을 빠지게 해달라고 했다. 결석과 지각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 규칙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따를 용의가 있다고도 썼다. 다만, 이미 지난 가을부터 일 년간 피아노 레슨을 받기로 약정을 했고, 지금 스케줄을 조정하는 과정 중이니 그 동안만 예외적으로 연습을 빠지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예상했던대로 코치는 이메일 답장을 하지 않았고 주말이 지난 월요일에 둘리양은 첫 연습에 참가했다. 그리고 그 날 밤… 즉 다음날 연습을 빠져야 하는 때가 왔다.
내 주장은, 코치가 가타부타 답이 없었으니 연습을 빠져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자, 하는 것이고 첫 연습과 미팅에서 코치의 성향을 파악한 둘리양은 그렇지 않다는 해석을 했다. 분위기 파악이 빠르고 신중한 둘리양의 해석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화요일에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가 있으니, (비가 오면 연습이 취소된다) 피아노 레슨을 가는 쪽으로 선택하자는 말에 둘리양의 마음이 아주 불편해졌다.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닌 아이지만, 그 마음은 엄마인 내게 육감으로 아주 잘 전달 되었다.
그래, 그러면 피아노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레슨을 결석하겠다고 하고 연습에 참가하라고 하니, 여전히 불편한 마음을 보였다. 피아노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이번 주는 그렇게 넘어가더라도 계속해서 월요일 밤마다 같은 고민을 해야 하는 점 때문이다.

다정하고 배려심 많은 피아노 선생님은 둘리양의 결석을 이해해 주셨고 둘리양은 어제 두 번째 육상 연습을 잘 하고 귀가했다. 이번 주 목요일에는 육상팀 아이들의 부모들을 모아놓고 미팅이 있는데, 그때 코치를 만나서 직접 얼굴을 보며 부탁을 해보려고 오늘 아침에 이메일을 다시 한 번 더 보냈다. 수많은 아이들과 학부모와 소통해야 하니 얼마나 바쁘시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지난 주 제가 보낸 이메일을 본의아니게 놓치셨나봅니다… 하며 다시 한 번 납작 엎드린 태도의 이메일을 보냈더니 거만하고 고압적이지만, 웃는 얼굴에 침뱉을 수 없어 억지로 예의를 차리는 답장이 왔다. 미팅이 끝나고 얼마든지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연습에 결석하는 것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내일 저녁에 학부모 미팅이 끝나면 코치와 할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어놓고 작전을 세우기 위해 이 글을 쓴다 🙂

  1. 전인교육 (whole child developoment) 차원에서 아이는 학교 운동 팀 연습 말고도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있다.
  2. 운동도 그렇지만 악기연주도 어린 나이에 꾸준히 하는 것이 평생 지속되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 그걸 뇌과학자들은 결정적 시기 (critical peoriod) 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여러 가지 외부 활동에 참가하게 하고 있다.
  3. 결석 지각을 단 한번도 용납하지 않는 규칙에 대해서 미리 안내를 받았더라면 다른 활동을 겹치지 않는 시간으로 정할 수 있었을텐데, 지난 1월에 운동팀 안내문을 받기 전까지 그런 규칙이 있는줄 전혀 몰랐다.
  4. 동료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집단의 효율성을 위해서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있지만, 운동팀 코치들이 대부분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라 (교사나 학부모가 코치로 일하는 경우가 많음) 사정을 잘 설명하면 이해하고 허락해 줄것이라고 하더라.
  5. 몇 년 전에 자녀를 블랙스버그 중학교에 보내고 운동팀에 참가했던 학부모 여러 명한테 그렇게 들었다.
  6. 올해 다른 운동팀에 참가하는 아이들과 부모들로부터 듣기로도 연습 의무의 규칙이 조금씩 다르거나 유동성이 있더라. 치어리딩은 월화수요일만 연습, 수영팀은 외부 수영 레슨을 받기 위해 연습에 빠지는 것을 허락함
  7. 내년에는 다른 모든 레슨 스케줄을 운동과 겹치지 않게 잡을테니, 중학교 첫 학년, 게다가 첫 운동팀에 참여하는 우리에게, 당분간 피아노 레슨 시간을 바꿀 수 있을 때까지만 화요일 결석을 허락해 달라.
  8. 허락한다면 화요일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서 두 시간 연습 중에 한 시간은 참여하겠다.

이렇게까지 설명하고 읍소해도 코치가 안들어준다면 다음 주 수요일에 교육감을 만나서 할 이야기를 남편과 함께 열심히 작전을 세울 계획이다.
나는 그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 설령 고압적이고 거만하고 못되빠진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내가 원래 평화주의자여서 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내 아이가 마음 불편해질 상황을 내 손으로 만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2024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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