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가능한 거리에 살면서도 요즘은 아이들을 학교에 차로 데려다주는 일이 많다. 춥거나 비가 오면 무거운 가방을 매고 악기나 운동 가방까지 들고 많이 걸어야 하니, 아침에 시간이 허락하면 차로 데려다 주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이젠 습관이 되어 버려서 남편은 아침 출근 길에 둘리양을 학교에 내려주고 가고, 아침 강의가 없는 나는 코난군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서 느지막히 출근을 한다. 코난군의 고등학교는 걸어가도 5분, 차를 타고 가도 5분이 걸리는 짧은 거리이지만, 테니스 경기가 있는 날은 부피가 큰 테니스 가방을 들고 가게 하는 것이 마음쓰여서 꼭 데려다준다. 5분 동안 함께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다.
며칠 전 아침에 코난군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지개가 보였다. 태양의 반대편에 무지개가 뜨는 것이니, 아침에 보이는 무지개는 서쪽 하늘에 떠있었다. 차를 몰고 우리집 드라이브웨이로 들어오는 정면에 무지개가 떠있는 것을 보고, 차를 차고에 주차한 다음 나와서 사진을 찍으려하니 벌써 사라지고 끝자락만 겨우 보였다.
사진 두 컷을 찍으니 무지개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무지개를 더 보고 싶다면 해를 등지고 물을 뿌려서 무지개를 만들면 된다. 과학이 대중화되니 무지개 너머 저편엔 요정이 산다거나, 개기일식이 재난이라는 생각 등을 없애주었다. 그렇지만 무지개와 닮은 인간사를 생각하는 것은 내가 문과출신이어서이다 🙂
아침 강의가 없는 대신 오후와 저녁 강의가 있어서 퇴근하자마자 저녁 식사 준비를 하기가 빠듯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후라이드 치킨을 사와서 먹기도 한다. 보쟁글스 라는 치킨점은 닭고기가 신선하고 튀김옷이 바삭하며, 딸려오는 사이드 메뉴와 티가 맛있어서 요즘 자주 사먹는다.
며칠 전에도 패밀리팩 (닭고기가 8조각 들어있음)을 사다가 가족 저녁식사로 먹였는데, 나는 늦은 점심을 많이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아 남편과 아이들만 먹게 했다. 각자 퇴근 후나 운동 연습에서 돌아온 후에 박스에 들어있는 치킨을 개인 접시에 덜어서 먹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남은 박스를 열어보니 닭다리 두 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8조각 박스 안에는 다리 2개, 날개 2개, 허벅지살 2개, 가슴살 2개씩이 들어있는데, 각자 자기가 먹을 조각을 덜어담을 때, 다음 사람을 배려해서 가장 좋아하는 다리는 일부러 남겨놓고 먹은 결과였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두 아이들에게 각기 닭다리 하나씩을 덜어주곤 했는데, 그렇게 배려받은 아이들이 이제는 가족을 배려하는 행동을 할만큼 자란 것이다.
하룻밤 묵어서 차갑게 식은 치킨 박스로부터 행복을 충전하는 것은, 사라지기 직전의 무지개를 발견하는 것처럼, 별 것 아닌 일이기도 하고, 뜻밖의 기쁨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내 착각일 수도 있다. 그 날 따라 닭다리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아이들이 남겨놓은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이드 메뉴가 너무 맛있어서 닭고기를 안먹은 결과일 수도 있다. 무지개도 어차피 태양광이 물방울 속에서 굴절해서 생기는 것이니 무지개 자체가 태양빛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어쨌든 그 날 아침 나는 행복했다 🙂
이제 학기 말로 접어드니 내 강의는 끝나가고 학생들의 과제 발표 수업이 진행되어서 퇴근 시간이 조금 빨라졌다. 치킨이나 냉동식품에 의존하던 저녁 식사를 집밥 스타일로 개선할 때가 왔다.
2024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