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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월요일은 미국의 노동절 (Labor Day) 이어서 온국민이 긴 주말을 즐기게 된다. 나는 정신없던 개강 첫 주일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며 집에서 쉬기로 작정했다. 독감 예방 주사도 맞고, 요리도 좀 하고, 이렇게 오랜만에 블로그 글도 쓰고 하는 것이 내 휴식 방법이다.
코난군은 오늘 친구네 호숫가 별장에 초대를 받았다. 첫 여자 친구였다가 헤어진 매들린과 요즘 다시 친하게 되었는데 그 가족이 노동절 연휴 동안에 호숫가 별장에서 지내면서 코난군을 하루 부른 것이다. 매들린의 남동생이 누나의 입장과 상관없이 코난군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따르는 덕분에 둘이 다시 친분을 회복하게 된듯하다. 매들린의 부모는 재력이 무척 든든해서 사우스 캐롤라이나 휴양지에 비치 하우스를 가지고 있는데다, 얼마전에는 스미스 마운틴 레이크에 레이크 하우스를 더 구입했다. 블랙스버그 골프장을 끼고 있는 주택도 우리집보다 1.5배로 큰 좋은 집인데, 그 집 한 채로 모자라서 별장을 두 채나 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스미스 마운틴 이라는 산은 로녹에서 한 시간 정도 더 들어가는 곳에 있는데 거기에 댐을 설치해서 수력발전소를 짓고나니 산꼭대기에 거대한 인공 호수가 생겼고 그 호숫가를 따라 멋진 별장도 들어섰다. 매들린의 가족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머물고, 코난군은 토요일 하루 동안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내가 로녹까지 코난군을 데려다주고 매들린이 별장에서 로녹까지 한 시간 운전해 나와서 코난군을 데리고 갔다. 코난군이 아직 운전면허가 없어서 이런 방식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저녁에는 다시 매들린이 코난군을 로녹까지 운전해서 데려다주고, 남편이 로녹으로 코난군을 데리러 갔다.

우리 가족은 서로의 현재 위치를 공유하고 있는데 코난군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위치를 찾아보다가 별장의 위치를 알게 되었고 호기심에 부동산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이렇게 크고 멋진 별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8 밀리언 달러나 하는 고급 주택인데 크기가 우리집 정도 되고 마감재나 통창으로 보이는 호수의 풍경이 아주 멋져 보였다. 이 정도의 집을 주거용으로 소유하고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단한 일인데, 고작 일 년에 며칠씩 사용하려고 별장으로 구입하다니… 그 재력이 부럽기도 하고, 코난군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코난군은 생각이 성숙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아이여서, ‘우리집은 왜 이렇게 부자가 아닌가’ 하는 불만을 갖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부모인 우리도 코난군을 다른집 아이와 비교하면서 ‘너는 왜 그렇게 못하니’ 하고 윽박지르지 않는다. 사람마다 타고난 환경과 복이 다른데, 그걸 나와 비교하면서 나는 왜 저렇게 못하는가 하는 한탄을 해봤자 정신 건강에 해롭기만 하다. 그저 친구 잘 둔 덕분에 멋진 별장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행운을 누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높은 가치가 있다. 만나면 반갑고,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기쁘고, 서로가 열심히 잘 사는 것을 치하해주는 것이 즐겁다.
지난 수요일 저녁에는 플로리다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고 워싱턴 앤 리 대학교로 돌아가는 클라라와 그녀의 엄마이자 내 후배(이지만 친구라 여기는 것이 더 맞는) 한교수가 열 두 시간을 운전해와서 대학교로 가기 전 길목에 있는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다. 후배와 나도 생각이 비슷하고 말이 잘 통하지만, 서로의 남편들도 부지런하고 남자다운 성격이 아주 많이 비슷해서, 두 가족이 좋은 친구 사이이다. 이번에도 남편이 무슨 말을 하면 클라라가 연신 ‘우리 아빠랑 똑같아’ 하고 감탄을 했다.

두 가정 모두 비슷한 또래의 아들과 딸을 키우고 있는데, 한교수와 나는 아이들에게 너그럽고 허용적인 반면, 아빠들은 아이들을 더 잘 하도록 끊임없이 독려하고 단속을 하는 성향이어서, 두 가정의 생활상을 이야기 나누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올해에는 클라라의 남동생 앤드류와 우리집 코난군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대학교 선택이나 등록금 마련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도 했다.


금요일인 어제, 8월 29일은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주교수님의 생일이었는데, 올해는 60번째 생일, 즉 환갑일이었다. 평소에는 생일을 굳이 따로 챙기지 않았지만, 환갑이라는 특별한 생일이어서 조금은 특별하게 챙겨드리고 싶었다. 주교수님은 내게 맏언니처럼 언제나 좋은 말을 해주고, 서로의 가족에게 경조사가 있으면 서로 축하하고 위로하는 사이이다. 얼마전에 아이들을 만나러 다녀오긴 했지만 생일 당일에는 혼자 지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금요일 저녁을 같이 먹자고 초대를 했다.

주교수님은 육류 뿐만 아니라 생선이나 계란조차 안먹는 채식주의자여서, 생일상을 차리려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재료 구입비가 얼마 들지 않았다. 갈비라도 좀 구우려 했다면 고기값으로 60-80불 정도는 써야했을텐데, 콩나물 한 봉지, 무 한 개, 청경채 한 봉지, 애호박 한 개… 이 정도 재료만 사도 충분했다.

나물 비빔밥과 미역국을 끓이고, 무지개떡을 만들어서 초를 꽂아 케익으로 썼다. 보통의 케익에는 계란이 들어가서 주교수님은 먹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어르신들 생신 케익으로 떡케익을 많이 주문한다고 하는데, 인터넷으로 사진을 검색해보니 화려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내가 그 정도 솜씨는 안되고, 그런 떡을 주문할 곳도 없는 우리 동네에서, 이런 걸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집에 있던 찹쌀을 충분히 불리니 바이타 믹스 블렌더에 잘 갈아져서, 한국의 떡방앗간에서 빻은 가루처럼 되었다. 거기에 소금과 설탕을 조금 넣고, 체리 쥬스, 초코시럽, 등의 재료로 물을 들여서 컵케익 사이즈로 무지개떡을 쪘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려는데 꽃을 파는 구역에서 색깔이 짱짱하고 꽃잎이 그림으로 그린 듯 싱싱한 꽃이 한 다발에 6불 밖에 안하길래 해바라기 한 다발, 카네이션 한 다발을 사서 선물로 드렸는데, 그 모든 마음 씀씀이를 다 알아주신 주교수님이 와락 허그를 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다.
둘리양도 좋은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단짝 친구였던 매들린이 (코난군의 친구 매들린과 같은 이름이다. 요즘 아이들 세대에서 유행하는 이름이다) 맥스로 이름을 바꾸고 성정체성도 바뀌는 놀라운 사건이 있었지만, 좋은 친구가 되는 데에 이름이나 성별이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다. 맥스의 이야기는 조심스러워서 이 정도로만 언급하려고 한다.

친구가 나보다 부자이건 가난하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나이가 많든 적든, 그런 사소한 차이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서로를 신뢰하고 좋은 소식을 나누고 외롭고 힘들 때 위로하는 그런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2025년 8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