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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이들 근황을 쓴다.
지난 달, 사슴을 치고 차가 없어진 동안에도 학교 버스를 타고 가서 할 수 있는 자원봉사를 했다. 둘리양의 마칭밴드 페스티벌이 인근 크리스찬스버그 고등학교에서 있었는데, 거리가 가깝고 학교 버스를 타고 가서 돕고 다시 돌아오면 우리집까지는 걸어갈 수 있으니 아무 일 없는 토요일 하루를 썼다.

주최측인 크리스찬스버그 고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아주 아담한 규모의 마칭밴드였다. 20명도 채 안되는 학교도 있었는데, 전교생이 이 백 명쯤 되는 규모의 학교라고 한다.

반면에 명왕고는 전교생이 천 명이 넘고 전통적으로 마칭밴드 수준이 높으니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도 많아서 깃발을 흔드는 컬러 가드 까지 합하면 백 명도 넘는 대규모 밴드이다. 아무래도 악기가 많으니 소리가 웅장하고, 대형을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공연할 수 있어서 참가하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어 오게 된다. 부익부 빈익빈…

이 날은 무대 소품을 처음으로 사용한 공연이었는데,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나무판을 자르고 그림을 그리고 해서 만든 그림판을 나무로 만든 받침대에 고정시키는 방식이었다. 바람이 불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림판과 받침대의 홈이 깊지 않아서 그림판이 자꾸 넘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다음 날에 받침대를 수선하기로 하고, 이 날 당장은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 그림판 뒤에 숨어서 넘어지지 않도록 공연 내내 붙잡고 있었다.
나도 그림판 하나를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서있느라 공연 사진은 제대로 찍지 못했다.

고등학생이 된 둘리양이 드디어 댄스파티를 가는 날이 왔다. 드레스를 사줄까 하고 둘리양을 데리고 옷가게에 갔지만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찾지 못했고, 대신에 반짝이가 붙은 블라우스 한 벌과 짙은 남색 실크 넥타이 하나를 사달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옷감용 물감으로 반고흐의 작품을 오마주한 그림을 둘리양이 직접 그려넣었다.

올해의 홈커밍 댄스 파티의 주제가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Starry Night) 이기 때문에 그 분위기에 맞는 의상을 직접 제작해서 입은 것이다. 이렇게 입은 모습을 보니 드레스를 입은 아이들보다 더 멋져 보였다.

대학교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 코난군은 요즘 주말마다 테니스 경기로 바쁘다. 학교 대표팀 선수는 아니고, 동아리 정도라 부를 수 있는 클럽 테니스 팀에 뽑혀서 주전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취미로 하는 동아리 팀이지만 선수 급으로 잘 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열 다섯 명의 회원을 선발하는데 이백 명도 넘게 지원자가 왔다고 한다.

테니스 실력도 좋은데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코난군은 주전 선수로 뽑혔을 뿐만 아니라 클럽의 임원도 맡게 되었는데 내년에는 회장으로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고 있기도 하다. 좋아하는 테니스를 마음껏 할 수 있는데다 좋은 친구들까지 사귀게 되어 건전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얼마전 중간 고사 기간에는 모든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도 했다. 공부도 열심히 운동도 열심히, 그렇게 대학 생활을 잘 하고 있어서 참 자랑스럽다.

주중에 두 세번씩은 연습을 하고 주말에는 다른 대학교 클럽 테니스 팀과 시합을 하는데 서로의 학교를 방문해서 하는 경기라서 어떤 날은 다른 도시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선배의 차를 타고 몇 시간씩 이동해서 메릴랜드도 다녀오고 조만간 콜럼비아 대학교와 시합에서는 유에스 오픈 공식 경기장에서 치게 될거라고 한다.

경기를 마치면 맛있는 음식도 함께 사먹고 호텔에서 함께 자면서 마치 수학여행 간 기분으로 재미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이번 주말에는 버지니아에 있는 프레데릭스버그 라는 도시로 원정 경기를 갔다. 같은 날 둘리양은 버지니아의 브리스톨 이라는 도시에서 마칭밴드 대회가 있어서 집에서 아침 6시 40분에 나가서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돌아온다.

나는 7주일간의 실습 과목 지도가 끝나서 이제야 한숨 돌리게 되었는데 (그래서 오랜만에 블로그도 쓰고 있다), 오늘 아침 둘리양을 보내놓고 우리 아이들이 어디 있나 앱으로 살펴보았다. 코난군은 대학교가 있는 샬롯츠빌에서 북쪽으로 이동 하고 있었고, 둘리양은 명왕성에서 남쪽으로 두 시간 거리인 브리스톨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며칠 전에 둘리양에게 혹시 생각하고 있는 전공이나 장래 직업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평소에는 그런 속내를 물어보는 질문을 하면 짜증을 내며 대답을 안하는 편인데 그 날은 어쩐 일인지 진지한 자세로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대답을 했다. 아마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장래 희망을 굳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압박감을 느껴서인 것 같았다.
내가 둘리양에게 그 질문을 한 것은,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니 만약에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픈 분야가 있다면 지금부터 관련된 봉사나 동아리 활동 같은 것을 시작하기 좋은 시기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둘리양도 그걸 알고 있지만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를 아직 모르기 때문에 고민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직 무얼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면, 그저 네가 좋아하는 걸 계속 열심히 하면 돼. 하고 조언을 해주었다. 코난군도 고등학생때 대학이나 전공은 모르겠고 그저 좋아하는 테니스를 열심히 했고 학교 수업을 성실히 따라갔는데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생인 지금도 아직 전공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전공을 선택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 나도 잘 모르고 아이들 자신도 아직 모른다.
이건 마치 여러 가지 초콜렛이 든 상자를 열어보는 기분이다. 어떤 집 아이들은 고등학생 혹은 그 전부터 자기가 뭘 공부하고 싶은지를 알고 쭈욱 그 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다양한 재주와 능력이 있어서 그 중에 무엇을 최종 선택할지, 또는 전혀 새로운 길을 선택할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한가지 확신하는 것은, 그 무엇을 전공으로 삼고 그 어떤 길을 가더라도 잘 해낼 것이고 좋은 어른이 될 거라는 것이다. 알록달록 다양한 모양과 맛의 초콜렛이 들어있는 상자에서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고르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그건 행복한 고민의 시간이고, 그 어떤 걸 고르더라도 맛있는 초콜렛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제 10월도 절반이 넘게 지나갔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할로윈에 둘리양은 친구들과 캔디 동냥을 다닐건데 그 때 입을 코스튬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유명한 만화 주인공인 스누피가, 상상 속에서 자신을 쿨한 (=멋진) 대학생이라고 여기는 일종의 부캐가 바로 조 쿨 이다. 이름이 조 이고 성이 쿨 이다. 선글래시스를 쓰고 빨간 스웨터를 입은 스누피 조 쿨…
거의 한 달 걸려서 오늘 마침내 완성했다.


둘리양이 주문한 올해의 할로윈 코스튬
스누피가 입은 것과 똑같은 조 쿨 스웨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브리스톨에 있는 둘리양의 문자가 왔다. 명왕고 마칭밴드가 오늘 대회에서 그랜드 챔피언 상을 받았다고 한다. 두 시간 후인 밤 열 두시 30분에 둘리양이 돌아오면 나의 토요일 일과는 끝이 난다.
오늘 밤부터 기온이 급락해서 내일 아침 최저기온은 0도가 될거라고 한다. 한파로 얼어서 시들어버릴 바에는 집안에 꺾어다 놓고 며칠만이라도 더 감상하자 싶어서 수국 꽃을 잘라왔다.

오랜만에 쓰는 블로그라 전할 소식은 많고 그래서 두서없는 긴 글이 이어진다.
사슴에 부딪힌 차는 폐차시키고 보상금 받은 것과 내 돈을 더 보태서 2년 되고 2만 7천 마일을 달린 중고차를 구입했다. 잔고장이 없고 집에서 직접 정비하기 쉽다는 이유로 일본차만 타다가, 이번에는 한국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12살 짜리 차를 타다가 이런 최신식 차를 몰아보니 여러 가지 편리한 옵션이 많아서 좋다.
스포츠 유틸리티 비히클 SUV 라서 차체가 높고 운전할 때 시야가 탁 트여서 좋기도 하다. 남편은 어쩌다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야할 때 (예를 들면 무릎 수술 후 집에 올 때) 더이상 허리와 머리를 숙이고 타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고 한다 ㅎㅎㅎ

엄마 차가 폐차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엄마 차에 붙여두었던 버지니아 대학교 스티커도 따라서 없어지니 새로 사다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던 코난군이 지난 주말에 집에 다니러 오면서 엄마 것과 아빠 것 두 개를 사왔다. 우리집 차고 문을 열면 왼쪽의 엄마 차 오른쪽의 아빠차 뒷범퍼에 나란히 코난군 학교 스티커가 붙어 있다.
2026년 10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