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문: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얼린 협주곡 1번
연주: 어떤 백인 아줌마랑 아틀란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일시: 잘 기억 안남 (김박사가 좀 찾아서 고쳐주시구랴… ^__^)
고등학생이었을 때 우연히 정경화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물론 직접 들은 게 아니라 녹음된 것을, 그것도 카셋트 테이프로 듣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사주신 일제 워크맨의 성능은 정경화의 연주 실력을 과히 흠집내지 않고 잘 들려 주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등학생이던 그 때에도 러시아라고 하는 나라는 내게 그저 동화속의 왕자 공주가 사는 그런 신비스런 나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주변 친구 친척들 중에서 조차도 러시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없었으니… 러시아에 대해선 단연코 아이 해브 노 아이디어! 그저 텔레비젼이나 책에서 보고 들은 것을 짐작하여 아주 매섭게 추운 곳이려니… 그렇게 상상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정경화의 연주는 그런 내 상상의 나래를 더 활짝 펼치게 해주었다. 매서운 겨울 바람처럼 날카로운 바이얼린의 선율과 웅장한 대륙의 기질이 전해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제치고 바이얼린 협주곡 1번이 나의 페이버릿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몇 주전… 드디어 그 웅장하고 멋진 곡을 연주회에서 실연으로 들을 기회가 생겼다. 일 년에 두 번씩 UGA 공연을 하는 아틀란타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그 곡을 연주한다는 것이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저마다 악기 소리를 맞추느라 붕붕~ 깽깽~ 소리를 내는 동안에도, 딩~딩~ 하고 공연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가 들릴 때도 나는 얼마나 마음이 설레었는지 모른다.
첫 번째 연주곡이 끝나고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바이얼린 협연자를 맞이했다. 그 아줌마는 줄리어드인지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다른 훌륭한 학교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하여튼 훌륭한 학교에서 배웠고, 특히 차이코프스키 연주로 정평이 나있다고 팜플렛에서는 소개를 했었다.
심포니가 먼저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바이얼린이 등장할 차례… 나는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그러나 오래도록 내 상상 속에 남아있는 눈쌓인 시베리아 벌판과 삣쭉삣쭉 솟은 전나무 숲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띠잉…
코가 시리도록 알싸~하고 향취가 강한 차이코프스키가… 그렇게 로맨틱하고 유약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시종일관 가녀리고 연약한 연주… 차라리 미뉴엣을 연주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협연자를 살리기 위해서 오케스트라도 억지로 숨을 죽이고…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가 졸지에 미국와서 빠다세례를 받고 허물어지는 형국이었다…라고 말하면 그 날의 연주자들에게 심한 표현일까나…?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이얼린 협주곡의 협연자만큼 큰 카리스마가 요구되는 연주자도 없을 것이다. 그 가녀린 악기 하나로 육 십 명도 넘는 (그 날도 세다가 실패했다, 대략 60쯤 되어 보였다…) 심포니와 조화를 이룰려면 말이다.
게다가 차이코프스키는 바이얼린 협연자에게 단순한 조화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치 나무 호미 한 자루 주면서 돌밭 열 두 이랑을 다 매라고 한 팥쥐 엄마처럼, 바이얼린 하나 들고서 금관 목관 타악기까지도 다 이기고 그들을 휘두르라고 한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정경화가 정말 위대한 연주자임을… 집에 돌아와서 정경화의 연주를 다시 들었다. 이번엔 LP판으로… 역시 명연주는 카셋트고 엘피고를 가리지 않고 그 진가를 드러내는 법…
언제나 그 진가를 실제로 들을 기회가 생기려나…?
빠다없는 화끈한 매운 맛을 언제쯤 맛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