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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군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났고 점도 몇 개 생겼다. 점이 생기는 과학적인 원리는 모르지만 블랙헤드인지 점인지 모르게 시작된 점이 점점 짙어져서 코난군의 외모에 티를 만들었다.
한국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고모가 미리 예약해둔 피부과에 가서 점을 뺐다. 오른쪽 눈 아래에 한 개, 왼쪽 눈 가에는 큰 점이 한 개인 줄 알았으나 의사가 제거하는 과정에서 보니 두 개가 겹쳐져서 큰 하나로 보였던 것이었는데 그걸 모두 제거하고 진물을 흡수해서 소독을 할 필요가 없는 특수 반창고와 연고 같은 것을 모두 포함한 비급여 진료비가 고작 120달러 정도 밖에 안했다.

아이들 고모가 오랫동안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던 방배동 서래마을에서 친하게 지내던 한부모 한 명이 특별히 힘을 써주셔서 단골이 아니면 예약을 잡기도 힘든 피부과 진료를 받은 것이다.
여기가 바로 “오빤 강남 스타일~” 하는 그 강남이냐며 아이들이 신기해 하기도 했다.
피부과 진료를 마친 후에는 간단하게 짜장면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작은 시누이는 볼일이 있어서 먼저 떠나고 큰 시누이가 우리 가족을 안내해서 간 중국집은 우리의 상상을 벗어난 곳이었다.

이 동네 근황을 상대적으로 잘 몰랐던 큰 시누이가 안내한 곳은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대중적인 중국집이었지만, 얼마간 안온 사이에 강남 이라는 지역에 걸맞는 고오급 레스토랑으로 변신해 있었던 것이다.
그냥 나가서 다른 음식점을 찾아볼까 하다가 너무 덥기도 하고 배도 많이 고파서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음식값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미국에서 온지 이틀째인 나에게는 달러로 환산하니 비싸기는 커녕, 감지덕지한 가격이었다. 워싱턴디씨 근교 한인타운 중국집에서 옛날 짜장 한 그릇 가격이 11달러인데 거기에 세금과 팁을 더하면 14달러, 원화로 2만원이 넘는다. 그런데 이렇게 깨끗하고 화려한 테이블에서 먹는 짜장면이라니…


피부과 다음날은 미용실 예약이 잡혀있었다. 이번에는 큰 시누이가 잘 아는 분으로부터 소개받은 청담동 미용실이었는데, 그 날 나는 일산에 가서 엄마를 만나느라 코난군이 머리손질 받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 못했다.
하지만 머리 손질을 마친 후에 다시 만난 코난군은 얘가 우리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주 멋진 변신을 했다. 헤어컷을 하고 다운펌을 해서 앞머리는 웨이브를 살리고 귀 윗쪽의 머리는 착 달라붙게 만들었는데 이게 한국의 최신 유행하는 남자 머리 스타일이라고 했다.
한국 유행보다 한 걸음 뒤쳐지는 미국 한인사회에서는 앞머리를 길게 길러 보글보글 파마를 하는 게 최신 스타일이라 코난군을 비롯한 한국인 중국인 소년들이 그런 머리를 하고 다녔었다. 그런데 올해 한국은 이미 그 머리는 한물간 스타일이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번엔 내 차례였다. 나는 최신 유행 같은 것은 별로 관심이 없으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면 머리손질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스타일이 필요했다.
작은 시누이가 단골로 다니는 동네 미용실에 갔는데, 일본에서 유학했다는 남자 미용사는 큰 덩치와 순한 인상이 내 동생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생김새와 달리 아주 세심하게 내 머리를 살피고 내가 원하는 바를 듣고 자세한 설명을 먼저 해주었다.
머리카락의 길이를 이 정도로 자르면 펌 롯드가 두 바퀴를 돌게 되어, 따로 고데기를 쓰지 않아도 머리카락 끝이 안쪽으로 동그랗게 말려들어가니 머리 손질이 편할 거라고 했다. 앞머리는 티나지 않을 정도로만 길이를 달리해서 자연스럽게 옆으로 쓸어넘기게 하겠다고도 했다.
결과는 대만족! 이렇게 멋진 머리를 만들어주는 값이 명왕성 브라질 할머니 미용사의 가격의 3분의 1도 안되었다.

오빠와 엄마가 머리손질 받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둘리양이 제주와 부산 여행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드디어 자기도 머리를 하겠다고 했다. 섣불리 덤비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잘 살펴보고 그 결과까지 본 다음에 결정을 내리는 용의주도한 둘리양이다.
심지어 미용실을 고를 때도, 엄마가 했던 동네 미용실 말고, 오빠가 했던 청담동 미용실을 선택했다. 얘도 청소년이라 어느쪽이 최신 유행을 잘 따르는지를 알고 그걸 선택한 것이다 ㅎㅎㅎ

청담동 미용실이라니! 내가 한국에 살 때는 간이 작아서 생각도 못해봤던 곳인데, 두 아이 머리 손질을 이런 곳에서 해줄 수 있을 만큼 부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둘리양이 머리를 한 날은 일요일이어서 미용실 다른 의자에는 결혼식 준비로 머리와 얼굴 메이컵을 받는 신랑 신부가 여럿 있었다. 둘리양 머리를 해준 미용사도 둘리양 다음 순서로 예약을 받은 손님이 결혼식을 하는 신랑이었다. 펌은 안하고 헤어컷만 하기 때문에 예약을 한 시간만 잡아도 충분하려니 생각했다가, 숱이 엄청 많고 길이도 아주 긴 머리를 손질하느라 한 시간을 꼬박 채워서 겨우 손질을 마쳤다. 시누이랑 아는 사이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 투철한 직업정신과 예술혼이 있어서일 수도 있는데,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어도 둘리양의 머리 한 가닥 한 가닥을 세심하게 손질해 주셨다.

원래도 약간 곱슬인 둘리양의 머리는 숱을 치고 레이어를 주는 헤어컷 만으로도 컬이 잘 살아나는 멋진 모양이 되었다. 너무 길고 무거워서 컬이 안보이다가, 가벼워지니 컬이 되살아난 것 같다.
용의주도한 둘리양은 머리하러 가기 전, 머리하고 돌아온 직후, 고모네 집 화장실에서 같은 각도로 뒷모습 사진을 찍어서 비교를 하고 만족해 했다.

미용실에서 나와서 이태원 구경을 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을 식당을 찾고 있었는데, 같이 간 큰 고모와 삼촌은 우리 아이들이 먹겠다는 케밥을 먹는 것에 동의했으나, 남편은 건너편에 있는 해장국집 간판에 마음을 빼았겼다 🙂
각자 원하는 식당에서 먹고 싶은 점심을 먹고 다시 만나니, 모두가 즐거운 식사가 되었다.

남편은 시간이 없어서 머리 손질을 못했지만, 나와 아이들은 한국의 최신 미용기술을 마음껏 누렸다.
한국 옷도 많이 사입혔더니, 길을 가다가 어디 있는지 찾기가 힘들 정도로 우리 아이들은 한국인으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 실제로 한 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실이 다소 어두웠다) 코난군인줄 알고 영어로 “이것좀 봐봐 이게 바로…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신나게 말을 걸었는데, 알고보니 모르는 청년이어서 민망했던 일이 있었다. ㅎㅎㅎ

한 달 간의 여행이 끝나갈 무렵,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코난군의 머리가 그 사이 많이 자라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손질을 받기로 했다. 이번에는 굳이 청담동으로 가지 않고 내가 갔던 용인의 동네 미용실에 가서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하되 길이만 짧게 잘라 달라고 했다.
그 다음 날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고모집을 나서면서 미용실 옆 돈까스 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한국에 도착한 날 첫 끼니로 먹었던 바로 그 음식점이었다. 한국 여행의 시작과 끝을 머리 손질과 왕돈까스로 해서 수미쌍관을 이루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남는 시간 동안 인천 공항을 구경했는데, 고작 한 달 사이에 우리 아이들은 완전히 한국인 아이들처럼 보이게 되었다. 코난군은 한국말도 제법 늘었다. 습도가 높은 더운 날씨 하나 빼고는 둘리양도 한국의 모든 경험을 즐거워 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한국 여행을 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6년 7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