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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산에서 태어나서 대학교를 가기 전까지 19년 동안 부산에서 살았다. 지금의 나이가 되고보니 19년 이라는 시간이 그리 긴 것도 아닌 것 처럼 여겨지지만 (내가 명왕성에서 산지가 벌써 21년이다) 성장기를 보낸 곳이라 그런지 고향이라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
부산에는 나의 아버지가 살고 계시고 시어머니와 시동생도 살고 계신다. 올 가을이면 아버지와 따로 살고 계신 나의 엄마도 부산으로 이사를 하실 예정이다. 이래저래 고향이기도 하고 연고가 많은 도시가 부산이다.

이번 한국 여행 중에 6월 25일 목요일부터 7월 3일까지 (남편은 하루 더 머물러서 7월 4일까지) 부산에서 지냈다. 앞서 썼듯이, 부모님과 많은 지인들이 살고 계신 곳이어서 8박 9일 동안에 사람들을 만나는 이벤트만 해도 여러 건이었고 다시 찾아가고 싶은 곳을 방문하는 일로 매일 바빴다.

중학교때 소위 부산의 8학군이라고 하는 동래구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좌천동에서 살았는데, 그 때 아버지도 마침 해운회사에 근무하셨어서 매일 저녁 엄마의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나갈 무렵이면 나와 동생들은 거실 창문 밖을 내다보며 큰 배가 들어와있는지 아닌지를 보고 아빠가 저녁 식사를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야근을 하실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외국에서 컨테이너를 실은 큰 배가 들어오면 아빠의 사무실은 많이 바빠지기 때문에 그런 날은 아빠없이 우리끼리 먼저 저녁을 먹고 자는 날이고, 항구에 큰 배가 없으면 정상 퇴근을 하고 산복도로를 숨가쁘게 올라오는 버스를 타고 아빠가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어 오실 수 있는 날이었다.
중앙동 거리를 멋진 양복차림으로 휘날리며 다니시던 아버지는 이제 여든이 훌쩍 넘은 은퇴자가 되셨는데 여전히 매일 북항 근처 여객터미널과 수변 공원을 걷는 운동을 하신다.

티비나 인터넷으로 본 적 있는 해동 용궁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찰은 산속에 있지만 용궁사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위치는 특이하지만 불교 사찰은 한국에 살 때 흔히 방문하고 구경했던 곳이어서 나와 남편에게는 새로운 감흥이 별로 없었지만, 태어나서 불교 사찰을 처음 방문해본 우리 아이들은 모든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불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십이지신상 중에서 자기 띠에 해당하는 돼지 상에다가는 백 원 짜리 동전을 얹어놓기도 했다. 그 다음 날 잘 기억은 안나지만 뭔가 사소한 운좋은 일이 있었는데 코난군이 이게 다 자기가 어제 백 원을 기부해서 생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ㅎㅎㅎ

뭐니뭐니해도 부산 여행에서 해수욕장을 빼놓을 수 없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광안리 해수욕장을 같은 날에 방문했는데, 아직 공식 개장 전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에서도 바다, 강, 호수 가에서 물놀이 하는 것을 좋아해서 해운대와 광안리를 좋아했다. 미국과는 달리, 자연 풍광이 드넓은 해안을 보다가 뒤돌아서면 (명왕성 기준으로) 엄청 높은 빌딩이 즐비하게 서있고 (명왕성 기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것을 신기해 했다.
명왕성에서는 그야말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는 말처럼 물가에는 물만 있고 산속에는 산만 있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니거나 큰 빌딩 사이로 사람과 차가 가득한 풍경을 볼 수 없다.



아직 개장 전이지만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은 잘 정비되어 있어서 화장실도 깨끗했고 모래묻은 발을 씻을 수 있는 시설도 잘 준비되어 있었다.
마침 발씻는 곳 옆에는 어느 교회에서 물티슈를 상자째 놔두고 무료로 가져가라는 푯말을 붙여두어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잘 썼다. 비록 티슈 봉지에 인쇄된 문구는 좀 무시무시했지만… (예수천국 이라는 말은 괜찮지만 그 다음 문구는 아이들에게 굳이 번역해주지 않았다 ㅋㅋㅋ)
부산에서 지내는 일정 내내 운전기사를 자청해준 아이들 삼촌 덕분에 하루에도 여러 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아이들 삼촌은 인터넷 검색으로 맛집, 교통상황, 최저가 물품 구매 등등을 잘 찾아내는 재능이 있어서 그 덕도 톡톡히 보았다.

삼겹살 불판 가장자리에 구워먹는 김치와 콩나물 그리고 계란찜은 나한테도 신기했으니, 우리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에다 신기한 체험으로 아주 근사한 저녁 식사였다.
해운대에서 저녁을 먹은 후 광안리로 이동하니 해가 져서 광안대교의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여기서도 우리 아이들은 휘황찬란한 고층빌딩과 수많은 사람들 구경을 즐겼다.

바다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다음날은 거제도 몽돌 해수욕장으로 갔다. 여기서는 발에 모래가 묻어서 털어내야 하는 귀찮음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수영복까지 챙겨 갔지만 너무 피곤해서인지 아이들은 수영을 하지는 않고 발만 담그는 정도로 놀았다. 대신에 매끈매끈한 돌멩이를 쌓고 사진을 찍으며 바닷가에서 한가한 시간을 즐겼다.


거제도까지는 거가대교 덕분에 이동 시간이 단축되었고 아이들이 수영을 안한 덕분에 시간이 남아서 이웃 도시인 통영 구경까지 했다. 통영에는 윤이상 기념관이 있어서 그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작곡가 윤이상은 한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많이 알려졌는데, 독일에서 유학할 당시 하지도 않은 간첩활동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심지어 독일로 추방되었기 때문이다.
해방직후 통영, 마산, 부산 등지에서 음악교사로 일하면서 남편의 모교인 마산고의 교가를 포함한 많은 학교의 교가를 작곡했다고도 한다.

기념관에서 윤이상 선생님이 손으로 직접 쓴 수필을 전시해 두었는데 읽어보니 내용이 재미있어서 사진으로 찍어왔다. 시간날 때 소개하려고 한다.
그 밖에도 부산에서는 많은 이벤트가 있었는데 아이들 외할머니의 팔순 잔치 까지는 아니고 축하 식사가 그 중 하나였다. 코난군은 한국에서 먹었던 수많은 식사 중에 이 식사가 가장 맛있고 좋았다고 기억한다. 아무래도 뷔페식이어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을 수 있고, 가격이 높은 호텔 뷔페이니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많은 덕분이다.

동생 내외와 함께 준비한 이 식사자리에는 평소에 나의 부모님을 잘 챙겨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초대를 했다. 내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했어야 할 일들 – 안부를 챙기고 병원에 모시고 다니거나 하는 등의 일 – 을 기꺼이 대신 해주신 막내 이모와 막내고모부에게 감사를 표하는 대접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의 그림 선물을 받고 외삼촌의 봉투 선물도 받아서 기뻐했다.
부산 여행에 관해서는 다음 편에 더 쓸 거리가 있다.
2026년 8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