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날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 땅에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하며 한발한발 어렵게 다져온 길을 일거에 후퇴시킨 ‘야만의 정치’가 판을 친 슬픈 날로 기록될 터이다. 꺼져가는 권력을 놓지않으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낡은 정치세력이 합법을 가장한 ‘의회 쿠데타’를 감행해 권력을 찬탈하려 한 날이기 때문이다.
두 야당의 폭거는 국민의 뜻을 대변해야 하는 대의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도전이자 훼손이다. 정해진 4년 임기를 마치고 불과 한달 뒤면 새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국회의원들이 4년 남짓 임기가 남은 대통령을 다수의 힘으로 몰아내는 것이 과연 어떤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물러나는 국회의원들이 탄핵할 수 있는 것인가. 더구나 모든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을 원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난 터이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군사작전을 하듯 날치기로 탄핵안을 통과시킨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안하무인과 오만불손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나라의 앞날이 어찌 되든 국민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든 아랑곳 않고 오로지 정파 이익에 따라 무슨 짓이라도 한다는 후안무치한 행태에 울분을 참을 수 없다.
국민의 고통 아랑곳않는 폭거
나라와 국민을 볼모로 삼는 대통령 탄핵 사태가 벌어진 배경에 한달 앞으로 다가온 4·15 총선이 자리잡고 있음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동안 검찰 수사를 통해 기업들로부터 차떼기로 검은돈을 뜯어온 파렴치한 범죄가 낱낱이 드러나고 부정부패로 얼룩진 낡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표로 나타날 위기감을 느낀 정치세력이 지역주의에 기대 개혁을 외면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하는 낡은 정치세력과 야합한 것이 바로 탄핵안 처리다. 국민의 외면으로 바닥에 떨어진 지지도를 반전시키고 흩어진 지지층을 결집해 전세를 뒤집어 보겠다는 얄팍한 잔꾀에 국민들만 희생양이 된 것이다.
대통령 탄핵 소추가 법률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정당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차례 한 바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해 선거중립을 지키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 있었으나 눈앞에 어른거리는 권력욕이 눈을 감고 귀를 닫게 했을 터이다.
국회 경위들을 동원해 본회의장을 점거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밖으로 들어내거나 외곽으로 밀어내고 탄핵안 처리를 강행한 국회의장과 두 야당의 폭거에 국민은 절망하고 있다. 힘에 밀려 울부짖다 망연자실 허탈해하는 여당 의원들의 모습과 한국정치의 현실을 국민들은 똑똑히 보았다. 16대 국회를 날치기 탄핵안으로 마감하고 의기양양하게 국회를 빠져나간 야당 의원들은 과연 탄핵안이 정당하다고 믿고 있을까.
나라의 앞날이 정말 걱정스럽다. 법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이 있을 때까지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하도록 돼 있다. 국정공백과 혼란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과연 그리 될지 의문이다. 국가안보는 이상이 없을지, 나라 경제가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눈 앞에 닥쳐온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부터 우려된다. 정국이 어디로 흘러갈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많은 국민들이 충격과 분노로 허탈해 하고 있다. 탄핵안 무효와 국회 해산론을 펴는 국민들의 절망과 분노가 어떻게 터져나올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짓밟힌 민주주의를 국민들이 나서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온몸으로 민주화를 지켜온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의회 쿠데타를 감행한 낡은 세력들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헌법재판소, 신속하고 올바른 결정을
법에 따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최종 판단해야 할 헌법재판소는 하루라도 빨리 올바른 결정을 내려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나라를 정상궤도로 돌려놔야 한다. 민주주의가 청산되어야 할 낡은 정치세력의 놀이개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엄중한 책무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지워져 있다. 이번 탄핵정국의 시발점이 된 정치개혁, 특히 검찰의 부패정치인 수사가 힘을 잃어서는 안된다. 돈 정치, 부패한 정치를 몰아내는 데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기득권 세력의 끈질긴 방해와 시련을 딛고 새로운 정치를 일으켜 세워 참된 민주주의를 열어가느냐 그대로 주저앉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낡은 껍질을 깨고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결단을 온 국민이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