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방문기 제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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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문기 제 8편: 창원 외삼촌 댁 방문기

너무나 좋았던 한국방문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하여 방문기를 써보려 합니다. 읽어보시고 첨삭이 필요한 부분은 친지 여러분께서 또한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아참, 그리고 보다 진솔한 글쓰기를 위해 존댓말을 쓰지 않는 점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___^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창원에 계시는 외삼촌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마산에서 젤로 맛있다는 뉴코아 빵집에서 빵도 사야하고, 외숙모님 번거롭지 않도록 저녁식사 시간을 피해서 잠시 다녀오자니, 투표장에 들러서 한 표 찍을 시간이 빠듯했다.

“고마 투표하지말고 가자, 늦겠다”
“양수씨가 꼭 투표해야 한댔는데요”
“(투표 안하고) 했다카믄 안되겠나?”
“전 그이한테 거짓말 못해요 어머님~~”

그리하여 우리 네 식구는 투표장으로 향했다. 주민등록상으로 우리 시댁엔 자그마치 여덟명의 유권자가 살고 있는 걸로 되어있다. 부모님과 타지에서 직장생활하는 시누이동생들과 미국사는 우리 부부, 그리고 시골에 계신 할머니까지… 옛날에 부정선거가 당연시 되던 시절 같았으면 이렇게 표가 많은 집엔 고무신이든 돈봉투든 확실하게 들어왔을 거라고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투표장에서 나와서 기념사진 한 방 찍고, 아버님께 슬쩍 여줘보았다.
“아버님, 몇 번 찍으셨어요?”
아버님 씨~익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3번 찍어야 양수가 좋아하지”

창원의 큰 외삼촌은 우리 결혼식때 스냅사진을 찍어주었던 성원이 도련님의 아버님이시며, 우리 시어머님의 아우가 되신다. 성원이 도련님은 산업디자인을 공부했고, 지금은 포항에서 리모델링 관련 사업을 하느라 집을 떠나 있고, 그 아래 성준이 도련님은 (한 번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형보다 먼저 장가를 들어서 역시 집을 떠나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창원에는 외삼촌과 외숙모님 두 분이서만 사시고 계셨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하신 외삼촌께서 여행하신 이야기며, 성준이 성원이 도련님 어릴적 이야기며, 지금 사는 이야기며,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 (외숙모님과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을 가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오우~ 멋져라~~) 등등을 말씀하시며 눈을 지긋이 감으시는 외삼촌에게서 우리 아빠의 모습과,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살아오신 삶이 보였다. 젊으셔서는 그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자식들 먹이고 가르치는데만 골몰하시다가, 이젠 다들 제 살길 찾아 떠나고 부부 두 사람만 남아서 서로에게 영광의 훈장으로 남은 주름을 보듬어 안으며 도닥여주는… (아~ 정말 멋지지 않은가!!)

저녁에 술자리 약속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누님과 매형을 오랜만에 만났으니 특별히 양주 한 병 따야 한다시며 외숙모님의 역작인 쑥수프를 안주삼아 외삼촌께서는 술을 꽤 많이 드셨다. 우리 아버님도 술이라면 남못지않게 좋아하시지만 운전을 하셔야 하기에 참으시는 듯 했다. ㅋㅋㅋ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봉곡동 옛날집 이야기가 나왔다. 외삼촌댁을 나와서 창원 시내를 달리다보니 저기가 옛날 살던 동네고, 저기가 어디고, 그러면서 옛날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봉곡동 집에는 마당에 연못도 있고, 부지런하신 어머님께서 정원을 잘 가꾸셔서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잘 꾸민 집이라고 했다는… 아버님 사업도 번창하던 시절… 어머님이 말씀하시고 나는 감탄하며 듣고, 그러는 사이에 아버님께서 슬그머니 핸들을 봉곡동으로 돌리셨다. 이미 캄캄해진 밤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옛날 살던 집 앞을 차로 지나면서 아버님과 어머님은 적잖이 회한에 젖으시는 눈치였다.

나도 그냥 왠지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그 아픔은… 뭐랄까… 열심히 살아오신 두 분으로부터 살짝 비켜간 운명… 그리고 두 분의 쓸쓸함… 그런 것에 대한 느낌이랄까… 뭔가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암튼 두 분의 쓸쓸해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노력해서 두 분께 작은 기쁨과 소망을 드리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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