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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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을 시작으로 해서 우리 부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가던 날, 이상한 마을에서 돼지로 변한 엄마아빠를 구하기 위해 목욕탕에서 일하게 된 치히로는 목욕탕 여주인 유바바 할머니에게 이름을 빼앗기고 센 이라고 불리게 된다. 알 수 없는 일만 가득히 일어나는 일본 전통식 목욕탕…

그 신비롭고 웅장한 매력에 끌려 다음으로 보게된 영화는 <천공의 성 라퓨타>
하늘에 떠있는 성에 대한 전설을 믿고 있는 광산 마을의 두 아이… 갖은 모험 끝에 라퓨타를 찾아내고, 왜 그 신비의 성이 사람들에게 잊혀졌는지,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성 상실에 대한 경고… 같은 것이 주요 줄거리이지만, 여기서도 역시나 히야~ 하고 탄성을 불려일으킬 수밖에 없는 건, 감독의 놀라운 상상력이었다.

<원령공주 (모노노케 히메)> 역시, 환경오염의 무서운 파괴력과, 원시시대로의 동경 내지는 현대기계문명의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이 주요 메세지… 솔직히 이 영화는 그림의 아기자기함이 덜하고, 살짝 그레이 톤의 우울한 화면이어서 그렇게 즐겁기만한 감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본 영화가 <이웃의 토토로> 와 <마녀 키키> 였다.

사실, 제작순서로 보자면 우리는 미야자키의 영화를 완전히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본 것이다. (정말로 맨 처음에 봤던 <고양이의 보은> 의 제작 참여를 끝으로, 미야자키 감독이 은퇴 선언을 했다고 하니 말이다)

고작 영화 몇 편 본 것으로 주제넘게 거장의 작품 세계를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나름대로 마음에 남았던 감상을 떠올리자니, 자연스레 그의 작품에 흐르는 일관된 주제가 조금씩 진화해 가는 과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녀 키키> 에서는 일본인들의 유럽문화에 대한 동경심을 담뿍 담고 있는데, 마치 이탈리아 어느 마을을 본딴 듯 그려낸 바닷가 마을 풍경이라든지, 빗자루를 타고 날으는 마녀, 장작을 때는 화덕에 구워내는 빵을 파는 언덕 위의 빵가게, 그리고 키키의 엄마가 키우는 약초 온실의 풍경은 그대로 그림엽서에 담아내도 좋을 만큼 예쁜 그림이었다.

<이웃의 토토로> 는 일본의 농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역시나 정교하고 섬세한 그림이 놀랍기만 했다. 시골 흙길에 패인 바퀴 자국, 그리고 바퀴가 지나가지 않는 길 한 가운데에 자라난 잡초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네 살 난 아이의 아장아장 걷는 모습과, 도시락 가방을 메고 ‘어디 갈 데가 있어’ 하며 새초롬하게 마당으로 향하는 뒷모습… 거기서 감독이 얼마나 세상을 꼼꼼히 관찰하고, 세밀하게 그려내려 했는지 짐작이 되었다.

예전에 디즈니월드 스튜디오에 갔을 때, 월트 디즈니가 말도 못할 완벽주의자여서 그 휘하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고생깨나 했지만 그 덕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어딜 가도 최고로 인정받는 작품이 되었다는 가이드의 소개를 들은 적이 있지만… 내 짐작으론 미야자키 감독이 디즈니보다 더한 완벽주의자가 아닌가 싶다.

그의 완벽성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목욕탕 장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는데, 3-4층 정도의 큰 건물을 한 눈에 보여주면서, 각 층의 각 방에서 각기 다른 모습의 괴물들이 목욕을 하거나, 음식을 먹고 있거나, 대화를 하고, 인간들은 수건을 나르거나, 음식 시중을 들고, 부채춤을 보여주고,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 어느 구석으로 눈을 돌려도 각기 다른 모습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몇 번을 다시 봐도 새로이 볼 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키키> 나 <토토로> 에 비해서 <행방불명> 에서는 일본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마치 ‘하천의 신’이 목욕하던 욕조의 물처럼 철철 흘러 넘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일본스러운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일까…?

<키키> 에서 하늘을 날고 싶었던 톰보의 꿈은 <라퓨타> 에서 실현된 것 같았고, <토토로> 와 <키키> 의 친절한 할머니는 <행방불명> 에서 좀 더 나이를 먹고 괴팍하게 변한 듯 했다. 하긴 <키키> 에서도 그 할머니… 마녀 빗자루를 몰래 타보거나, 비행선에 열광하는 등… 좀 수상하긴 했었다… ㅋㅋㅋ

그리고… 미야자키의 메세지 중에서 유아교육 전공자인 내게 인상깊었던 것은…

모든 아이들은 일을 한다

<행방불명> 에서는 먹고 자는 댓가로 목욕탕 청소 일을 하고, <키키> 에서는 역시나 거처를 얻은 댓가로 빵가게 일을 돕고,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는 퀵서비스 일을 하는, 이른바 투 잡을 뛰어야 한다. <라퓨타> 나 <토토로> 의 아이들은 밥하기나 빨래 등의 집안일에 아주 능숙하다. 그것도 아무 불평이나 불만없이 당연히 자신이 해야할 일로 여기며 일하고 있다. 만화의 주인공이라고, 마녀나 공주라고 해서 봐주는 일없이, 자신의 삶을 위해서는 당연히 일을 해야 한다는 메세지… 그건 나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인 것 같다…

또한 모든 아이들이 예의바르다

‘혼네’ 를 드러내지 않는 일본 문화 때문이라 해도, 미야자키 감독의 아이들은 언제나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심지어 동식물과, 악당에게 까지도 (사실은 미야자키 작품에서 악당과 우리편의 경계는 늘 모호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아닌 다른 대상 – 그것이 사람이든 아니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 에 대한 존경심은 오만한 인간에게 겸손함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자연을 ‘보호’ 하자는 식상한 캠페인에서 벗어나, 자연에게 ‘감사’하고 ‘미안’해 하자고 가르친다.

나 아닌 다른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것…
내게는 큰 가르침이었다…

마지막으로 <키키> 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

‘그림이 잘 안그려질 때는 계속해서 될 때까지 그리는 거야’

‘그래도 안되면 어떡하지?’

‘그럼 그 때는 손을 놓고 다른 일을 하지,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질 때까지 말이야’

나도… 논문이 안써질 땐 써질때까지 계속해서 쓰고… 그래도 안써지면 잠시 책상에서 물러나 휴식하면서 다시 쓰고싶어질 때까지 기다리리라…

왜냐하면 ‘마녀는 복잡한 주문을 외워서 마녀가 되는 것이 아니고, 마녀의 피를 (운명을) 타고나서 마녀가 되는 것’ 처럼, 나역시 노력해서라기 보다는 운명처럼 학자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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