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효과 – 엄마에게 바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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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한 옛날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조각상을 만들고 그 조각상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는 조각상을 아내처럼 여기면서 온갖 정성을 쏟는 것에 감동한 아프로디테 여신이 그 조각상에 생명을 주어서 마침내 피그말리온은 그 여인과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어찌보면 너무나 아름답고, 또 어찌보면 황당무계한 이야기이지요.

제가 공부하는 교육학에서도 피그말리온 효과 라는 것에 대한 논의를 많이 합니다. 교사의 높은 기대를 받는 학생이 실제로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심리적 분석이지요. 성경 구절 중에서 “네가 믿은 대로 되리라” 하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뜻입니다.

지극 정성을 쏟으며 일말의 의심없이 추진하는 일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온다… 아주 희망차고 멋진 말이지만, 우리들의 일상사에서 그다지 자주 일어나는 흔한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피그말리온 효과가 엉터리 가설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우리들이 피그말리온 처럼 황당한 꿈을 품고 무한히 노력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인생에서 이루어진 피그말리온 효과를 봅니다.

33년 전 2월, 스물 여섯 살 젊은 애기 엄마 한 사람이 말도 안되는 황당무계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 꿈은 바로, 자신의 딸이 장차 훌륭하게 자라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큰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아이 엄마라면 누구나 그런 바램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새댁은 자신의 형편과 능력을 넘어서는, 그러나 구체적인 꿈을 아주 오랜 동안 포기하지 않고 꾸어왔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중반, 새마을 운동으로 온국민이 밥이나 굶지않고 살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엄마는 단칸셋방에서 시작한 살림으로는 가당치도 않게 아들도 아닌 딸 (속칭 ‘기집애’)을 유치원에 보냅니다. 물론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비싼 유치원은 언감생심 버거웠기에 피아노 대신에 풍금이 있고, 난방 시설이라곤 연탄 난로 하나가 전부인 동네 어린이집을 “유치원” 이라 믿으며 보낸 것이지요.

판잣집이 즐비한 산동네에 새로 개발한 택지지구를 싼 값에 분양받아 2층 양옥집을 억척으로 지어 올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일 년 동안 칼 도마 한 번 쓰지 않는 초라한 밥을 먹으면서도, 그 엄마는 어쨌거나 아이들이 뛰어놀 마당이 있는 집을 장만해 주었습니다. 아이들 입성은 철철이 좋은 것을 마련해 주는 대신에 매일 저녁 손뺄래로 눈부시게 세탁해서 단벌일 망정 언제나 깨끗하게 입히곤 했습니다.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 크리스마스엔 산타 할아버지가 학용품을 머리맡에 두고 가시도록 해서, 어차피 구입해야할 학용품값만을 치루고도 우리집엔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셨다는 자랑을 친구들에게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런 지혜 덕분에 그 집 아이들은 자신이 동네에서 가장 부잣집이라는 행복한 착각을 하면서 어딜 가든 당당할 수 있었다지요.

옛날엔 임금님만이 먹을 수 있었던 흰 쌀밥을 우리는 맨날 먹을 수 있고, 계란 후라이 한 개를 먹으면 통닭 한 마리를 다 먹는 것이니, 우리가 얼마나 부자이냐고 그렇게 아이들을 세뇌시키던 엄마…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우리집 형편이 그다지 별 볼일 없는 수준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닥 달라질 리가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깨닫게 되지만, 피그말리온 엄마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원서를 쓸 때… 어지간히 공부 잘 하는 여고생은 동네 국립 사범대로 진학하고, 졸업해서 교사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경제적인 것이라는 상식을 뒤엎고, 피그말리온 여사는 딸을 서울로, 그것도 등록금이 국립대의 두 배도 넘는 사립대학교에 보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녀의 꿈이었으니까요. 남편의 보잘것없는 월급 액수도, 기집애는 집밖으로 내돌리면 안된다는 통념도, 그 어느 것도 그녀의 꿈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화여대생이 된 딸의 모습을 보면서 이젠 되었다 하고 한숨 돌릴만도 하건만, 그녀는 여전히 꿈속에 있었습니다. 대학원도 가고 미국 유학도 가서 교수 박사가 되어야 한다는 꿈… 어떤 사람들에겐 꿈이 아니라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현실일 수 있지만, 적어도 그녀에게는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현실 세계에선, 딸이건 아들이건 얼른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적금이나 들어서 자기 힘으로 시집 장가나 가고, 막둥이 동생 교육비에 보탬이나 주는 것이 모범 답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좌우지간 그 딸은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5년 동안 모은 1년치 등록금을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려는 딸에게 아버지는 “공부가 힘들면 언제라도 돌아와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피그말리온 여사는 “너는 이제 공부 열심히 해서 미국사람들 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고 석사 박사 학위 받아서 교수가 될거다 (‘되어라’ 도 아닌 ‘될거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도 할거다” 라는 말도 안되는 말씀을 하십니다그려…

당장 미국땅에 떨어지면 길이나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수업에 들어가면 영어를 알아 들을 수 있을지 자신도 없는 판국에, 미국인들보다 더 공부를 잘 하다니요… 그리고 스물 아홉 꽉찬 나이에 한국에서 열심히 맞선자리 쫓아다녀도 시집가기가 힘들텐데 공부하면서 남자를 만나 결혼이라… 부모님 하시는 말씀이니 그저 건성으로 네 네 하며 넘겼습니다.

명절에 만난 친척 친지 어른들의 “보영이는 시집이나 보내지 유학은 무슨 놈의 유학이냐, 아들도 아닌 딸을 미국유학씩이나 보내고, 쯧쯧” 하는 나무람에도 끄떡없었던 피그말리온…

그런데… 가지고 왔던 등록금이 바닥날 무렵 조교 장학금을 받게 되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와 사랑하게 되고,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끊임없는 칭찬과 격려를 받게 되고… 남들보다 먼저 교수가 되었고, 박사 학위를 받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피그말리온 우리 엄마가 이제껏 제게 품어오셨던 꿈들이 늘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건 어림 턱도 없는 일이라 여겼던 꿈들이 말이죠.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우리 엄마가 품어오셨던 건 꿈이 아니라 믿음이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믿음은 한없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도 알았습니다.

서른 세 번째 생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믿어주시고 꿈꿔주신 우리 엄마께… 온몸을 굽혀서 크나큰 절을 올립니다… 엄마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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