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1

작별 파티

Loading

한동안 더디게 가던 시간에 드디어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일종의 죄책감에, 그래도 시작한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를 지어야 겠다는 책임감에, 가는 날까지 열심히 실험을 하리라는 생각이 현실로 되고 말았다. 블랙스버그로 내려가겠다고 보스에게 말하고 나서부터 한 달 꼬박 실험을 하는데, 예기치 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처음엔 대여해준 장비를 돌려받는데 이틀.
다음엔, 링 레어저 얼라인먼트 사흘. 진공 펌프 장애 사흘. 샘플 만들다가 유리 용기를 깨뜨리고. It never rains but it pours. 라고 했던가.
바쁠 때 일이 계속 터지는 법이다. 그래도, 이 난관을 뚫고 (??) 어느 정도 일을 마무리 할 듯 보인다.  8월 5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그렉의 집에서 작별 파티를 열어주었다. 예전에 나 먹으라고 아내가 싸준 LA 갈비를 꼭 이 행사를 위해서 보관한 것은 아니지만, 요긴하게 썼다. 식사 전에 버치라는 게임을 하고, 식사는 양고기 스테이크, 갈비, 각종 샐러드에 곁들인 각종 와인(멀롯, 피노 노아, 리즐링)으로 했다. 식사가 끝난 후 그렉은 나에게 세이코 손목 시계를 선물로 주었다. 식사 후 디저트를 먹고 한참 동안 여러가지 대화를 나눈 후에 우리집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홈페이지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기념 사진 촬영. 다른 사람.은 일찍 가고 난 후에 약 40분 정도 더 있다가 돌아 왔다. 페니는 이제 못 보겠구나 하면서 hug 를 해주었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하지만 왠지 이 사람들과의 이별은 이별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날 것 같은 느낌이다. 로라랑 돌아오는 길에(로라가 내 아파트 근처에 살 길래 카풀을 했다) 그룹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동의를 했다. It is not easy to meet nice and good people. 여기서 nice 와 good 의 차이가 별로 없어 보이지만, 우린 nice 란 인격적으로 훌륭하단 뜻이고, good 이란 학문적으로 뛰어나단 뜻으로 이해를 했다. 과학을 좋아하지 않고선 과학자가 되지 않았겠지만, 다들 연구 자금과 성과를 걱정하는 암흑기(왜 암흑기라고 표현했는지는 다음에 말을 할까 한다.)에 재촉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해서 결과를 얻게 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물가, 높은 인구 밀도 등의 이유로 난 롱 아일랜드의 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곳 브룩해븐 연구소에서 과학 이외에도 많은 것은 배웠다. 어쩌면 내가 이 곳 사람들을 좀 더 빨리 만났더라면 나의 인생도 많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지금이라도 만나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대등한 관계는 아니지만, 아주 고운 품종의 지란처럼 그 인연이  계속되길 바란다.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