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1

인문학의 위기, 현대문명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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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국 대학 인문학부 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서자는 선언 행사를 열었고, 출판계와 연계해 정부에 인문학 지원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었다. 1998년 연세대에서는 계간지 〈진리·자유〉에 인문학의 위기 문제를 다루었고, 성신여대 인문연구소가 주관한 학술행사에서도 각 대학 학자들을 초빙하여 이 문제를 정식으로 다뤘다. 부쩍 인문학 위기론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각 대학 인문학자들을 짓누르는 부담감이 어떤 것인지 나는 심각한 눈으로 지켜본다. 모든 전공 학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대학 살리기 방안들은 모두 시장 상인들의 손님 끌기와 같은 경영학적 전략에 매여 있다. 그것은 학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고문이다. 학문은 상행위다, 학자들이여, 가서 돈 벌어오라!

인문학이란 근본적으로 이런 질문에 바탕하여 그 방법론과 목표를 찾아나가는 학문이다. 사람은 왜 사는가? 나의 나됨이란 정말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삶이란 과연 어떤 뜻이 있는가? 정말 잘사는 삶은 어떤 삶인가 하는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을 놓고 철학이나 역사학, 문학을 하는 인문학자들은 노심초사하며 이 시대에 맞는 대답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이런 질문법이 통하지를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나?

70년대부터 미국의 도움을 받아(?) 아이 낳지 않기가 가장 아름다운 미덕인 양 떠들더니 그 결과가 이제 구체적으로 나타나 학자들의 한 날개인 학생들(구매 손님) 끌어들이기가 당장 어렵게 생겼다. 가르칠 학생이라는 날개가 없는 선생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각 분야 학자들은 너도나도 돈벌이가 가장 잘 되는 학문만을 교육이라 몰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인문학의 위기를 그냥 간단히 인문학만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곧 현대문명, 미국이 앞장서서 세계에 퍼뜨려 놓은 개발전략, 1949년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세계에다 대고 개발을 선언한, 이른바 물신의 세계 점령, 툭하면 지식인들이 ‘선진국’ 운운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문명이 무너질 위기에 맞닿아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인문학의 질문법에 대한 정답은 곧 상업적 성공이다. 이제 세상은 온통 그쪽으로 몰려왔다. 대재벌이나 정치권의 서양문명 숙주들, 무엇보다도 서양 악당들의 의견몰이, 각종 악랄한 매체를 동원한 관념바이러스 살포로, 이제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나 상아탑일 수가 없게 되었다. 최근 한국의 역대 교육장관들의 학적 고향을 보면 대체로 미국 박사 출신들이어서 모든 걸 미국식으로 한다고 하면서 인문학적 질문에 대한 상업적 정답을 마련해 왔다. 대학도 돈벌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학문이 쑥밭으로 변한 원인이다. 대재벌회사가 장악한 한 대학교는 미국에서 내는 ‘과학기술논문색인’(SCI) 등재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학자에게 5천만원씩 포상금을 준단다. 교수 길들이기다. 더는 인문학 분야 교수들을 채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 요즘 각 대학 총장이나 학교 운영자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물신의 노예로 만드는 것을 지상의 모든 교육지표로 정해놨다면 이미 그 교육은 끝난 것이고, 그런 교육은 약육강식의 짐승사회로 변해 간다는 뜻일 터이다. 이런 현상을 나는 현대문명이 이제 무너져 가는 징후로 읽는다. 미국식 물질문명이 이제 그 무너짐의 거대한 흔들림으로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정현기 /문학평론가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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