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8

추수감사절에 태어난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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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 11월의 세번째 목요일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다.

바바라 선생님댁에서 추수감사절 점심 식사를 초대받아, 남편과 샬롯에서 올라온 정림 언니와 함께 차를 몰았다.

지난 여름에 블럭놀이 연구에 도움을 주었던 바바라의 손주 꼬맹이들을 위해 과자라도 사갈까 하고 동네 슈퍼마켓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려는 순간…

뭔가 뜨끈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양수파열이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고, 그 자리에서 도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뭘 챙겨가야 할 지를 묻는 남편은 약간 긴장하고 있는 듯 보였으나, 또 한편으론 우리 둘 다 강의가 없는 추수감사절 기간에 “사태”가 발생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도 있었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세면도구 같은 것을 챙기면서 병원에 연락을 했더니, 공휴일이라 집에 머물던 담당 의사와 연결을 해주어, 분만실에서 만나기로 하고, 30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일 년 중에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가장 큰 명절이라, 도로는 한산했고 병원으로 가는 길도 뻥 뚤려있었다.

그 때 까지도 나는 약간의 배가 단단해짐을 불규칙적으로 느낄 뿐, 진통이라 이름붙일 만큼의 통증은 전혀 없었다.

뉴 리버 밸리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인 커릴리언 메디컬 센터가 내가 다니는 병원인데, 분만장 시설도 아주 훌륭함을 지난 수요일에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지난 번 글 참조 바람 ^__^).

분만장으로 가니 이미 내 챠트가 준비되어 있었고, 곧바로 입원실이자 분만실인 넓은 방으로 안내받았다.

지난 번에 보았던 것처럼, 각종 모니터가 달린 스테이션이 있고, 천장에 수술실 조명같은 큰 전구 두 개가 달린 것을 빼면, 꽤나 괜찮은 호텔방과 흡사한 형태의 방이었다. 혼자 쓰는 방에는 손님용 소파겸 침대가 있고, 소형 냉장고, 텔레비젼, 욕조가 딸린 화장실이 붙어있는 그런 구조이다.

여전히 아무런 아픔은 없고 간간히 느껴지는 딱딱한 수축감…

간호사가 와서 정맥주사를 놓으려 할 때는 약간 무서움이 들기도 했다. 이전에 한 번도 링겔 주사를 맞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림 언니와 남편이 전혀 아프지 않다고 안심시켜 주었고, 실제로 맞아보니 그닥 아프지도 않았다.

원래는 굳이 연락을 하지 않으려 했던 바바라 선생님이었으나, 점심 식사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려야하니, 곧 아기를 낳게 되었다고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고, 후다닥 점심을 마친 후에 바바라 선생님이 병원으로 달려 오셨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도 도착하여 분만촉진제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 부터 시작되는 진통… 그건 과연 많이 아팠다.

불과 2-3분 간격으로 자궁이 강렬하게 수축하면서 숨을 쉴 수 없도록 아픈데, 그 때마다 바바라 선생님이 손을 잡아 주고 호흡을 도와주셨다.

약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마취과 의사가 와서 척추에 무통분만 주사를 놓아주었는데, 그 뒤로는 하반신에 감각이 무디어지면서 아주 편안한 진통을 하게 되었다.

간호사 두 명이 자궁수축이 올 때마다 종아리를 잡아주며 푸쉬를 하라고 하는데, 아무런 감각이 없으니 이게 지금 내가 푸쉬를 잘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처음엔 알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나 처음 한 번의 푸쉬를 하고났더니, 바로 그렇게 하면 되는 거라고 간호사들과 바바라 선생님이 칭찬을 마구마구 해주셔서 자신감을 가지고 힘을 줄 수 있었다.

한 번 자궁수축에 서너 번 정도 10초간 푸쉬하기를 40여분…?
마침내 오후 2시 50분 쯤에 아기가 태어났다.

남편이 탯줄을 자르고,  바로 내 품에 안긴 아기를 쳐다보고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의사선생님은 태반을 꺼내고 절개했던 부분을 꼬매느라 바빴다. 무통 주사의 덕분으로 나는 여전히 전혀 아프지 않았고 말이다.

애기는 우렁찬 목소리로 울어대며 자신의 건강함을 과시했고, 7파운드 9온스 체중에 21인치 키 – 아주 정상적인 사이즈로 태어났다.

보통 임신 37주가 지나 출산하면 임신 기간을 다 채운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 녀석은 타이밍도 완벽하게 37주 하고 1일째 되는 날 아주 정상적인 몸매로 매우 신속하게 태어난 것이다.

나를 돌봐주던 담당 간호사가 교대 시간이 끝나기 전에, 그리고 담당 의사가 추수감사절 디너를 놓치지 않도록, 바바라 선생님과 정림 언니가 너무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완벽한 시간에 태어난 우리 아기를… 남편은 팔이 아프도록 내내 안고 쳐다보고 있었다.

마취가 풀리면서 꼬맨 자리가 화끈거리고 아팠지만, 미리 챙겨온 카메라와 컴퓨터로 홈페이지에 사진도 남기고, 한국의 부모님들과 이웃 친구들에게 무사히 출산한 소식을 전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병원에서 주는 저녁 식사를 하고, 아기는 신생아실로, 남편은 집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가족구성원이 생기던 날… 그 신기하고도 감동스러운 날이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내일부터 펼쳐질 새로운 우리 가족의 삶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

모두들 좋은 밤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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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

보영아! 축하한다. 이제서야 알았어.

선종연

아가야…영민아…너를 네 부모님보다 기다렸다면 좀 과장이겠지만 정말정말 너를 기다렸다.
나는 네 어머니와 오랜 친구이고 자매같은 사람이란다. 네가 세상에 와 주어서 정말 고맙고 반갑다. 엄마를 크게 힘들게 안하고 와 줘서 너무너무 고맙고, 건강하게 와 주어서 또 고맙다.
앞으로 부모님과 행복하게 행복하게 잘 지내고 언제고 너를 만나게 되면 내가 해주고픈 뽀뽀는 어머니께 우선 가불해서 받아라..^^

보영.
정말 수고했어. 세상에 한 생명을 내어 놓는 일이 옛말에는 사자밥을 떠 놓고 치르는 일이랬지.
우리는 그런 일에 참 용감하게도 특히 난 참 미련하게도 두 번이나 저질렀지만, 내가 장담하건데 절대로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아기는 어쩌면 엄마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과 행복의 근원 ^^
많이 많이 행복해라. 이미 행복하겠지만.
축하한다. 친구야.

보영

종연…
다른 누구보다도 네가 우리 아기를 많이 기다려왔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알지.
그래, 네 말대로 나 요즘 무진장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네 몫까지 영민이한테 뽀뽀 많이 해줄께.
고마워!

최성진

보영아,,,너무 축하해….내가 눈물이 다 나네…
확실하고 화끈한 엄마를 닮아 아기가 정확한 시간에 모든 사람들을 위로해주며 세상에 나왔구나…
정말 귀한 생명,,,너무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