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부터 내린 폭설로 주변 학교나 사무실 등이 모두 문을 닫아서, 3일간의 긴 주말 동안에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영민이를 핑계로 별다른 일을 할 생각을 못하고, 그동안 다운 받은 영화를 몇 편 봤다. 여러 편 중에서도 일요일엔 우연찮게도
‘내사랑 내곁에’ 그리고 일본 영화 ‘굿바이’를 봤다. 처음 것은 루게릭 병(근육이 수축하는 병)을 가진 주인공이 죽어가면서
사랑하는이야기, 두번째 것은 우연히 장의사가 되어 염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이류 음악가가 어릴 때 집을 나간 아버지를 주검이
되어 만나게 된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음 날 밤 9시 쯤 둘째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착 깔아앉아
있어서, 안 좋은 일이 있었을 거란 짐작을 했다. 혹시… 아니라 다를까…. 나는 이 일을 예감이라도 하듯이 일요일엔 죽음에
관한 두 편을 영화를 본 것 일까?
지난 여름에 어머니랑 화상전화를 하면서 할머니의 상태가 아주
많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가끔씩은 기억이 끊긴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화를 하고난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자
마자, 이러다간 오래 사시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년 5월까진 버티실까, 아니면 올 겨울. 만일에 학기 중에
돌아가시면 틀림없이 들어가진 못할 거고, 그럴 바엔 지금 살아계실 때, 아니 아직 기억이 있으실 때 한번 뵙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들어갈 날짜를 정하고 비행기 표도 알아보고 했다. 영민이는 증조 할머니를 알지도 못할테지만, 그래도
나중에 같이 찍은 사진이라도 있으면 알 수 있을 테고, 할머니께서는 증손자를 한번이라도 직접 만나는 것이 나중에 후회가 없지 않을
까는 생각도 했다. 할머니께서 여한이 있었다면, 아마도 사랑하는 손자를 한번 보는 것, 그 손자의 아들을 한번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뵙고 나면 머지않아서 세상을 달리 할 거라는 예감도 강하게 들었기에, 오히려 우리가
들어가는 것이 할머니의 생을 앞당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할머니께서 나를 기억하실 때 뵙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기에, 어쩌면 명을 앞당기게 될지도 모를 방문을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