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봉만이: 선물받은 산후조리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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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나더러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역시 동의한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 – 복많이 = 봉만이 – 이다.

얼마나 복이 많은지 일일이 다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지만, 대략 생각나는 것만 몇 가지 꼽아보자면, 타고난 건강체질, 명석한 두뇌, 든든한 부모님의 지원, 훌륭한 남편, 똘똘한 아들과 딸, 부족함이 없는 배움과 그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 서로 돕고 지원하는 직장 동료들, 나를 좋게만 보아주는 좋은 이웃과 친구들…

이상이 굵직한 큰 복이라면, 자잘하고 사소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작은 복도 참 많다.  우연히 정착해서 살게 된 동네가 참으로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라 문단속이나 도둑 걱정 없고, 아이들 키우기에 적합한 마을이라든지,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머릿결이나 피붓결 덕분에 미용비를 절약할 수 있다든지, 등등 돌아보면 내 인생은 정말이지 행운과 복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형상이다.

각설하고, 이번에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또 한 번 내가 봉만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한 시간 가량 진통하고 쉽게 아이를 낳고, 이틀만에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는 다른 게시판에 이미 썼고, 지금은 퇴원해서 돌아오는 길에 받은 선물 이야기를 하려 한다.

차고 앞에 한국 우체국 택배 상자 하나가 곱게 놓여 있었다. 한국에서 누가 소포를 보냈나? 그런데 왜 현관문이 아닌 차고문 앞에 두었을까? 의아하게 생각하며 열어보니 주교수님이 놓고가신 음식 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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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부엌으로 들여놓고 나는 아기와 함께 윗층으로 올라가서 한 숨 자며 쉬었다.

그 사이에 코난 아범이 주교수님께 전화해서 음식을 잘 받았다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저녁을 뭘 먹을까 하고 부엌에 내려왔다가 상자를 열어보았더니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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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 한 솥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자그마치 열 가지가 넘는 반찬을 그득그득 담아서 뚜껑마다 이름표까지 붙여둔 것이었다.

이건 뭐… 출장부페를 불러다 차려놓은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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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장아찌 양념을 얹은 양송이버섯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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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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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함께 넣어 깔끔한 맛의 달걀장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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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게 썬 오이를 볶아 만든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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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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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에 밀가루를 묻혀서 찌고 양념을 얹은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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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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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양념된 닭고기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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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한 돼지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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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후조리 음식의 필수요소, 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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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에 코난아범이 미리 지어둔 쌀밥을 말아서 여러 가지 반찬을 골고루 함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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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베어문 사과가 마치 환하게 웃는 얼굴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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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단한 밥을 먹고나니 원래부터 넘치던 기운이 더욱 솟는 것 같았다.

내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지금 이렇게 복을 받고 사나보다, 생각하니 참 기분이 좋았다.

나만큼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사랑을 받았으면 나눠줄 줄도 알아야 하는 법.

고작 이틀 동안 엄마가 병원에 있는 사이에 뭘 잘 먹지 않고, 어딘가 모르게 가여워 보이던 코난군에게, 대단한 음식은 아니지만, 엄마손으로 따끈하게 만든 계란죽을 먹였다. 내가 어렸을 때에 나의 엄마가 자주 만들어주시던, 내 영혼을 달래주던 소울푸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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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밥 반 공기에 물을 넣고 끓이다가 밥이 죽처럼 퍼지면 소금 간을 하고 계란 한 개를 풀어넣고, 계란이 부드럽게 익으면 참기름을 뿌리고 불을 끈다.

고소한 참기름의 향이 입맛을 돋우고, 계란의 부드러움이 죽을 삼키는 것을 도와준다.

오빠가 된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동생을 예뻐하는 코난군이 기특하고, 또 엄마가 당분간 아기를 돌보느라 예전만큼 잘 보살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서 죽 한 그릇을 다 떠먹여주었다.

배도 안고프고 아무것도 먹고싶지 않다던 녀석이 엄마가 먹여주는 죽을 바닥까지 깨끗하게 비우며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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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아이들은 밥이나 돈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다.

우리 코난군도, 새로 태어난 코난군의 동생도, 나처럼 언제 어디서나 누구로부터나 사랑을 많이 받고 사는 봉만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2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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