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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강의평가 결과를 어제 받았다. 4학년 학생들은 내 강의가 매우 훌륭했다고 높게 평가를 한 반면, 3학년 학생들은 대체로 좋았으나, 과제물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했고, 피드백이 혼란스러웠다는 평가를 했다.

츠암~ 나, 도대체 과제물 한 가지를 받자고 열 번도 넘게 같은 말로 설명하고 알려주어도, 여전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한 게 누군데…?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초보 교수 시절에는 이런 강의평가 결과가 나오면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학생들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었나보다 하고 자책했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그것이 내 탓이 아니라, 교수의 설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학생들 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 교수들의 강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늘 있는 것을 보면,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주의집중의 문제인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암튼, 어제 강의평가 결과를 보면서 잠시 어이가 없고 기분이 나빠지려 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내가 그만두겠다고 물러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교수로 남아있을 수 있는 종신교수, 즉 테뉴어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부터 나에게 교수노릇은 더이상 “직업” 이 아닌, “취미” 이다.

취미로 교수질을 한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지만, 그건 사실이다.

취미이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고, 더 노력하고,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내 남편의 취미생활 제 일 번은 테니스이다.

그에게 있어서 사계절은 테니스를 야외에서 칠 수 있는 계절과 실내에서 쳐야하는 계절로 나뉜다. 그에게 날씨란, 테니스 치기에 좋은 날씨 (너무 덥거나 춥지 않고 바람이 없는 날) 아니면 테니스 치기에 나쁜 날씨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로 구분된다. 그에게 친구란, 테니스 친구와 테니스가 아닌 일로 만나고 사귀는 친구로 쉽게 나뉜다.

그는 늘, 보다 나은 서브를 넣고, 보다 날카로운 스트로크를 치고싶어 한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혼자서 코트에 나가서 공 수 백 개를 치면서 서브 연습을 하거나, 공이 자동으로 튕겨나오는 볼 머신으로 스트로크 연습을 한다. 사실, 조지아 에서도 그랬고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내 남편만큼 테니스를 잘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전문 선수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 말이다). 즉, 그만하면 어디가도 뒤지지 않고 잘 하는 실력이지만, 자기 스스로 더욱 실력을 키우고 싶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테니스 잡지를 읽거나, 티브이로 유명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서 배우기도 하고, 비디오 카메라로 자신의 플레이를 녹화해서 보면서 분석을 하기도 하고, 따로 레슨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의 서브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밥줄이 잘리는 것 아니고, 그의 스트로크가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누구에게라도 손가락질 받을 일 없다. 세상 그 누구라도 내 남편에게 ‘왜 그렇게 밖에 못하느냐’고 따져 물을 일 없다.

나에게 교수질이란 남편의 테니스처럼 그런 취미생활이다.

이만하면 교수 노릇 7년차에 그럭저럭 중간 이상은 되는 정도로 내게 주어진 일을 잘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누구의 압력이나 종용 때문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이왕이면 조금 더 잘 하고 싶고, 조금 더 열심히 하고싶을 뿐이다. 테뉴어를 받기 전에는 잘 하지 못하면 밥줄이 잘릴 수 있기 때문에 노력해야만 했다면, 지금은 내가 진정으로 잘 하고 싶은 마음에서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취미는 교수질 이다.

지들이 열심히 공부안한 것은 모르고 교수의 강의평가를 깎아내린 녀석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이 번 학기에도 같은 그룹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오히려 더 잘 되었다. 열 번의 설명이 부족했다고 하니, 이번에는 스무 번 같은 설명을 해주리라. 보다 효과적으로 학생들이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온갖 다양한 방법을 연구개발해서 가르쳐 주리라. 그래서 이번 학기 평가는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받으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마치, 내 남편이 라켓이나 날씨 탓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테니스 실력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력하는 자가 즐기는 자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했던가…?

아니면 열심히 하는 놈이 운 좋은 놈을 못이긴다고 했던가…?

나는 내 일을 즐길 뿐 아니라, 대체로 운도 좋은 편이니, 세상 그 누가 나를 이길 수 있으랴.

2012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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