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테니스 친구인 애드리언은 볼리비아에서 유학와서 학위를 받고 버지니아텍 교수가 된 사람이다. 부인은 프랑스 사람인데 여러 가지 인연으로 한국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집으로 몇 번 초대를 해서 김치와 여러 가지 한국음식을 먹으며 더욱 친하게 되었다.
이번에 우리집 둘째 아이가 태어난 축하 선물을 주겠다며 서로 바쁜 와중에 언제 만날까 날을 고르다보니 티나의 마흔 번째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그런데 파티날 보다 며칠 앞선 어느날 저녁에 애드리언이 잠시 우리집에 들러서 먼저 선물을 주고 갔다. 아마도 파티하는 날에는 다른 손님들도 많고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랬던가보다.
선물을 열어보니 둘리양을 위한 여러 가지 장난감과 예쁜 드레스 뿐만 아니라 코난군을 위한 옷과 장난감 까지, 여러 모로 신경을 쓰고 돈도 많이 쓴 품새가 보였다. 어허… 이거 이렇게 되면 티나의 생일파티에 빈손으로 갈 수가 없지 않는가 말이다… 그저 와인이나 한 병 들고 가려고 했건만…
티나의 취향과 우리집 경제사정을 고려하면서 급하게 고른 선물이 바로 이 책 이었다.
김치 연대기, 혹은 김치 크로니클 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티브이에 방송된 다큐멘터리가 꽤 유명세를 탔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방송을 보진 못했다. 하지만, 그 방송을 제작한 사람이 쓴 한국요리책 이라길래,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티나에게 어울릴 것 같았고, 아마존닷컴 에서 반값으로 할인 판매를 하므로 이거다! 하고 구입을 했다.
그리고 선물로 주기 전에 내가 먼저 살짝 읽어보았다 ^__^
저자인 “마ㄹ자 (마자 도 아니고 마르자 라고 하기도 애매한 발음이라…) 본게리쉔(?) 은 흑인 미군과 한국인 여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 인데,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고 세 살까지 엄마와 둘이 살다가, 또다른 미군 부부에게 입양되어서 미국 노던 버지니아 지역에서 자랐다고 한다. 양부모님은 전형적인 미국인 흑인이라 한국 음식을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으나, 성인이 되어 다시 찾은 한국인 생모과 외가쪽 친척들을 만나게 되면서 아주 어릴적에 먹었던 한국음식에 대한 미각을 다시 찾고, 거기에 프랑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남편의 아이디어를 더해서, 몇 가지 프랑스식 한국음식 혹은 한국식 프랑스음식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 김치버터스테이크 라든지, 김치렐리쉬를 얹은 핫도그, 김치 파스타 같은 메뉴는 나도 한 번 만들어 먹어보고픈 생각이 들 정도로 만들기 어렵지도 않고, 사진으로 본 모습이 맛있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개된 음식보다도 나를 더 끌리게 만들었던 것은 마ㄹ자의 입양 이야기였다.
얼마전인가 한국 에스비에스 방송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딸을 간절히 찾는 병든 엄마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 역시 내 마음을 울렸었다.
애엄마가 되고나서부터 “엄마 없는 아이” 라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 이상한 증세가 생겼다. 입양된 아이라면, 엄마가 의도했든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이든 간에 어쨌든 그 아이는 “엄마없는” 상황에 처한 기간이 있을 것이고, 조그만 몸뚱이와 어린 영혼으로 그 상황을 견뎌내야 했을테니, 그 얼마나 불쌍한가 말이다. 게다가 그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
요즘 코난군이 무척 친하게 지내는 어린이집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는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같은 반을 여러 번 했었던 – 그러나 “친구” 라고 부를만큼 친하지는 않았던 – 한 아이를 생각나게 한다. 또래 아이들보다 작은 체구에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잘 받지 못한 티가 나는 남루한 입성과 차림새… 엘러리 와 성림이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렇게 닮은꼴로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
성림이는 늘 우리 교실 제일 앞자리에 앉아야 하는 키작은 아이였는데, 발육이 좋아 뒷자리에 앉은 내 시선에 머리카락이 한 웅큼 빠진 듯 엉성한 숱의 단발머리와 손으로 세게 잡으면 부서질 듯 조그만 어깨가 센서리 메모리로 (감각기억이라고 해야하나?) 남아있다. 매일 술만 먹는 아버지와 구박하는 계모 아래서 제대로 보살핌을 못받고 자라서 그런지 그 아이에게서는 지린내가 나고, 나는 감히 흉내내지도 못할 지독한 욕설을 내뱉곤 했다. 학교 준비물은 늘 가져오지 못했고, 시험 점수와 성적은 거꾸로 세면 일 이 등을 다투는… 그래서 여러 모로 나와는 어울릴 이유가 없었던 아이였는데…
남루한 옷자락 밖으로 드러난 그 조그맣던 어깨와, 언제나 빨갛게 터 있던 조그만 손이… 코난군과 어울려 노는 엘러리 에게서 데자뷰 현상처럼 다시 보이고 있다. 엘러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그러나 내 육감은 그 아이가 엄마가 없는 아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엄마없는 아이었던 마ㄹ자는 이렇게 성공해서 책도 쓰고 방송에도 나오고 화려한 뉴요커로 살아가고 있다.
에스비에스 방송에 나왔던 입양아 순진이는 좋은 양부모를 만나서 잘 교육받고 잘 자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흔 살이 넘었을 성림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몇 십 년 후에 “그 때 그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마음 한 구석이 어쩐지 아프지 않으려면, 엘러리의 작은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아주어야겠다… 내 아이와 잘 노는 좋은 친구라서 고맙다고 말 한 번 더 건네주어야겠다…
쓰다보니 요리책 리뷰로 시작해서 엉뚱한 입양아 이야기로 끝나는 이상한 글…
2012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