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문의 망가진 온몸 연기가 인상적이었고, 박해일의 찌질함, 공효진의 자유분방함, 윤여정의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 앙큼함… 등등이 두루두루 어우려져서 빚어내는 재미있는 코메디 영화였다.
극중에서 윤여정이 하는 대사 중에서 깊이 공감하는 말이 있었다.
“너를(박해일) 보면, 네 아부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또 미연이(공효진)도 내 자신을 생각하면 다 이해가 되고 그랬어…” 이후 생략
찌질하거나 자유분방하다 못해 한심한 삼남매가 각기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의 조합인 콩가루 집안인데, (즉, 윤제문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버지의 전처의 자식이고, 차남 박해일은 윤여정과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식이고, 막내딸 공효진은 엄마가 외도해서 낳은, 아버지가 다른 자식이다. 참 복잡다단하다 🙂 이혼을 두 번이나 하고 세 번째 결혼을 앞둔 딸을 부끄러워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자애로운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윤여정은, 숨겨온 자신의 외도 경력 때문에 날라리 딸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아이 둘을 낳아서 키워보니, 윤여정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게 되었다. 나의- 혹은 남편의 습성을 꼭같이 따라하는 닮은 꼴이 보일 때마다, 저 아이의 저런 행동이 어떤 연유로 나오게 되었는지를 잘 알게 되니 말이다.
예를 들면, 나는 큰 일에는 대범하고 수월하게 넘어가는 이른바 ‘성격좋은’ 사람이지만, 사소한 일에는 짜증을 잘 내고, 원하는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좌절하는 성향이 있다. 코난군이 그걸 그대로 닮아서, 레고 장난감이 원하는대로 맞추어 끼워지지 않으면 마룻바닥이 꺼지도록 발을 구르거나, 얼굴이 벌개지도록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깟 장난감, 잘 안되면 집어던져 버리고 다른 걸 가지고 놀면 될 것을, 거기에 매달려서 약올라하고 속상해 하는 모습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되는 건, 바로 내 모습이 거울처럼 비추어 보이기 때문이다.
둘리양이 제가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들고 있던 물건을 집어던지며 큰 소리로 우는 모습도, 감추고 있던 내 모습이다. 성질머리 드러운 게 아주 나랑 똑같다.
코난군의 극도로 섬세하고 꼼꼼한 성향을 보면서 남편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터프한 둘리양을 보면서 남편도 나를 좀 더 많이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에 동생 내외가 우리집을 방문해서 일주일간 머물렀는데, 그 부부의 모습을 보니 마치 우리 부부의 십여년 전의 모습을 재연한 듯 보이고, 그러면서 우리 부부의 모습을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내 동생이지만 대학을 가고난 이후로 나는 미국유학을 떠나왔고, 그 이후로는 각자의 삶을 사느라, 성인이 된 동생이 어떤 성격과 습성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올케와 둘이서 여행을 하고 쇼핑을 하고 운동이나 식사를 하는 일상의 모습을 보니 어쩌면 그리 내 남편과 비슷한지 모르겠다. 게다가, 남편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것도 비슷하지만, 성격도 나와 참 많이 닮은 올케가, 내 남편과 비슷한 내 동생과 부부로 살아가는 모습이란 어쩔 수 없이 비슷하게 마련이다.
남편은 나이가 많기도 하고, 이런저런 경험이 많아서, 어린 아내에게 듬직한 남편 노릇을 하는 것…
남자 치고는 섬세하고 꼼꼼해서, 가정의 작은 일까지도 다 보살피고 돕는 점…
그리고 아내는 상대적으로 덜렁대는 성격이라, 남편의 노련하고 섬세함을 좋게 받아들이고 따르려고 노력하는 점…
느긋하고 수월한 성격의 아내 덕분에 전체적인 가정의 분위기가 조화롭게 유지되는 것…
그런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존중하여, 아주 작은 일 하나라도 꼭 의논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
남편과 아내가 죽이 잘 맞아서 항상 으쌰으쌰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 부부가 저런 모습이구나!’ 하고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었다.
단돈 십 달러짜리 도시락 가방 하나를 사는데도, 남편과 의논해서 골라서 구입하는 것은, 아내가 결정장애 증후군이 있어서가 아니고, 남편이 살림권을 꽉 쥐고 있어서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재미있고 좋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에서 각기 멀리 떨어져 살지만, 동생네와 우리 가족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비슷한 모습으로 사는 이유는 아마도 동생과 내가 비슷한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고, 비슷한 두 사람이 잘 어울려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유전자의 힘이랄까… ㅋㅋㅋ
2013년 7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