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아이, 더 성숙한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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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군이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쩍 반항행동이 늘었다. 샤워를 마치고나면 제 방에 가서 새 속옷을 꺼내입고, 파자마 아래윗도리를 입으라고 시키면 팬티 하나 입기까지 20분도 더 걸리고, 파자마를 아래위로 갖추어 입을 때까지 가만히 놔두면 한 시간도 더 걸린다. 팬티를 꺼내다 말고, 옆에 늘어놓은 장난감을 꺼내서 놀고, 파자마를 입다가 말고 둘리양과 숨바꼭질을 한다든지, 이 방 저 방으로 뛰어다니며 장난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코난군, 빨리 옷입어야지” 하고 잔소리를 해봤자 시간이 단축되지는 않고, 결국은 아빠나 엄마가 언성을 높이고, 그로 인해 코난군도 심통을 부리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저녁에 샤워하기 전후의 사정이 그러할진대,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도시락과 간식을 가방에 챙기고, 외투와 신발을 입고 등교길을 나서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전쟁터처럼 소란하고 치열하다. 코난군과 아빠 엄마의 기분이 상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가끔은 엉뚱한 요구를 하면서 떼를 쓰는 통에 직장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피곤한 상태의 아빠 엄마를 더욱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도 제가 해야할 일은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고서 아빠 엄마에게 무언가를 해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 나이 먹은 어른이라도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서 짜증이 솟구친다.

어디 그뿐이랴. 간식으로 혹은 점심 도시락으로 이걸 싸달라, 저걸 넣어달라, 시시콜콜 요구해서 원하는대로 해주었더니, 꼴랑 한 입만 먹고 그대로 남겨오기 일쑤, 왜그랬냐 물어보니 갓 만든 것이 아니라서 맛이 없었다는 대답… 그러면 학교 급식을 사먹으라고 하면 그건 또 싫단다.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이 좋단다.  그게 그렇게 좋으면 먹기나 잘 먹지…

아직 어린 둘리양 어린이집 등하원도 챙겨야 하고, 온식구들 먹을 거리 준비하랴, 두 아이가 어지른 집을 치우랴, 출근하면 학교 일로 정신이 없고, 집에 오면 집안일로 분주한 가운데 코난군의 반항과 엇나가는 행동을 다루려면 정말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지치는 느낌이다.

도대체 이 녀석이 왜 이럴까?!

어제 저녁에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동네 놀이터로 가잔다. 어이없는 요구사항이 또 하나 시작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나도 그러고픈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둘리양을 얼른 씻기고 저녁을 먹여서 아빠에게 맡겨두고, 코난군과 동네 놀이터로 갔다.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코난군은, 기차가 보이는 놀이터도 가고, 그 옆에 구불구불한 미끄럼이 있는 놀이터도 가고, 거기서 흔들다리도 건너자며 신이나서 종알댄다. 

그 때마다 몇 번이고, “오늘 이렇게 놀이터에 가주는 대신에, 있다가 집에 돌아가면 저녁밥 잘 먹어야 해.”, “재미있게 놀았으니, 있다가 샤워할 때 엄마 말 잘 들어야된다!” 등등의 토를 달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또 어쩐지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애써서 참았다. 그냥 “오케이~, 구름다리도 건너고 구불구불 미끄럼도 타자!” 하고 코난군의 흥에 장단을 맞추어 주기만 했다.

오랜만에 나간 동네 놀이터는 벌써 석양에 물들어가고 있었고, 한 두 명의 아이가 부모와 산책을 나왔는지 저만치서 놀고 있을 뿐,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코난군은 놀이터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연신 종알종알 말이 많았고, 나는 그네를 밀어주거나, 미끄럼틀 아래에서 코난군이 내려오는 것을 받아주거나, 코난군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거나, 내가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한 시간 정도 함께 있어주었다.

그러다보니, 이 흔들말을 처음 탔던 때의 코난군이 지금의 둘리양보다 더 어릴 때였구나… 그 때 한국에서 오신 외할아버지와 함께 바로 여기서 비누방울도 불고 놀았었지… 저 높은 미끄럼틀을 처음 올라갈 때는 무척 조심조심하더니 이젠 씩씩하게 재빨리도 올라가네… 저렇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좀 봐, 참 많이도 컸네… 이런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었다.

그래…

우리 코난군이 벌써 이렇게 자랐구나…

몸도 자라고 생각도 자라고…

엄마 아빠에게 원하는 바가 있고…

어른이 보기에는 말이 안되어 보여도,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과 계획이 있고…

누가 시키는 일보다는 자기가 선택하는 일이 더 재미있고…

그러고보면, 최근에 내가 (그리고 아빠가) 코난군에게 건내는 말이란 죄다 “이거해”, “저거 가지고 와”, “그렇게 하면 안되지”, “빨리 안할거야?”, “좋아 그럼 엄마/아빠도 이거 안해준다?”, “네가 이렇게 하니까 둘리양이 울잖아/아빠가 아프잖아/엄마가 힘들잖아!” 이런 부정적이고 지시하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게 불만이었던 코난군은 일부러 아빠 엄마가 하는 말을 안듣고 반항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가보다.

또한, “빨리 옷을 입으면 네가 좋아하는 티브이를 틀어줄께” 라든지, “밥을 잘 먹지 않으면 티브이를 꺼버릴거야.” 하는 등의 조건을 걸고 하는 요구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부끄러운 짓이었다. 왜냐하면, 그 논리의 연장선 저 끝으로 가면 다음과 같은 것이 맞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랑 같이 있어준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나는 비행청소년이 된거예요.”

“아빠는 빌 게이츠 만큼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했으니 내가 공부를 못하는 것에 대해서 나무라지 마세요.”

“우리집 자동차는 오래된 구식이라 남보기 챙피하니, 아빠는 나한테 용돈을 듬뿍 주셔야해요.”

“둘리양이 내 장난감을 뺏어갔으니, 나는 편식을 할거예요.”

말이 안된다고 느껴지는가? 아마도 코난군이 지금 그 느낌을 온전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엄마 아빠가 조건부 타협을 제시할 때마다 말이다.

물론, 조건을 걸고 아이에게 지시하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지만, 아이에게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미리 경고해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밥먹을 때 장난을 했으니 오늘은 티브이를 못봐!” 하는 것과, “저녁 9시에는 자야하는데, 지금은 8시야. 이렇게 밥을 오래도록 먹다가 8시 50분이 되어버리면 이를 닦고 자러 올라가야 하니까 티브이를 볼 시간이 없어져.” 하는 것은 같은 말 같지만, 코난군 연령의 아이에게는 전혀 다른 말로 이해된다.

마침 어제 학부모 면담에서 코난군의 담임 선생님도 같은 조언을 해주셨다. 코난군은 집에서와는 달리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무척 잘 듣고 있지만 (이 대목에서 휴우~ 다행이다! 하고 생각했다 :-), 선생님의 지시를 안따르는 다른 학생들에게 윌리스 선생님도 이런 방식으로 타이른다고 하셨다. 네가 선생님 말을 안들으면 어떤 나쁜 결과가 초래되는지 말해주고, 선택은 너의 몫이다, 하고 말해주신다고 한다.

어제 놀이터에서 한 시간 가량 놀고 사방이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에야 비로소 집에 돌아왔다.

밖에서 노느라 에너지를 많이 썼는지, 배가 고프다며 저녁밥을 잘 먹었고, 샤워를 하고 잠옷을 갈아입는 것도 반항없이 잘 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학교 가는 길까지 우리 가족중에 아무도 언성을 높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많이 자란 코난군을 존중하려는 엄마의 마음이 전달되었을까?

시시콜콜 잔소리나 조건부 강화조약을 내걸지 않고, 한 시간 동안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뭐, 어쩌면 소가 뒷발질 하다가 쥐 한 마리 잡은 격으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제 놀이터 나들이 덕분에 코난군의 성장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고, 아이가 자라는 만큼, 부모도 자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2013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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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로 애국

어억…. 찔려라…………………………..

소년공원

미모로 애국 님, 이게 얼마만이예요??

정말 반가워요.

만두군도 잘 크고 있죠?

텃밭 농사도 여전하시구요?

대학원 공부는 끝나셨는지요?

이래저래 반갑고 궁금한 것도 많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