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교수 데비의 아이들이 우리집에 놀러와서 점심밥을 차려주었다.
아이들 모두가 원체 식탐이 없는 편인데다, 어울려 놀기 바빠서 먹는데에 별로 신경을 안쓰는 것이, 밥상을 차리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속편하고 좋았다.
냉장고를 열어서 손에 잡히는 재료를 꺼내서 썰거나 데우거나 해서 담으면 끝.
무척 더운 날씨에 마당에서 놀면 갈증이 날 듯 싶어서 음료수만 쥬스와 우유와 얼음물로 여러 가지를 준비하려고 신경을 썼고, 나머지는 모두 반조리 식품이었다.
그릇과 컵도 깨질 걱정 없고 설거지 안해도 되는 일회용.
하지만 이 정도면 미국 아줌마들 수준에선 아주 잘 차린 밥상이라 자부한다. ㅋㅋㅋ
마당에서 뛰어 놀다가 밥상 앞에 잠시 모인 아이들.
사실 코난군은 어제 이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오는 슬립오버를 한 터라, 오늘은 우리집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고, 데비 교수는 모처럼 아이들없는 호젓한 시간을 즐기라고 내보낸 것인데, 아예 저녁도 먹고 가라고 하고 또 한 번 미국식 밥상을 간단히 차렸다.
이렇게 큰 그릇에 음식을 담아놓고, 각자 덜어 먹을 수 있도록 개인 접시와 음식을 덜어낼 도구만 준비해두면 상차림은 끝난다.
한국식으로 밥 푸고 국 뜨고 갖가지 반찬을 담아서 차리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다.
음식 자체도 간단히 데우기만 하거나, 기껏해야 끓이기만 하거나 (마카로니 앤 치즈) 썰어서 섞기만 하면 되는 (샐러드) 것이라, 이렇게 허술하게 손님을 대접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데비의 남편 데이빗은 퇴근이 늦어서 함께 하지 못했지만, 데비는 아이들과 저녁을 해결했으니 집에 돌아가서 한가한 저녁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아이들이 노는 동안에 오랜만에 손톱가게에 가서 발톱을 다듬고 왔다며 내게 고마워 했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잘 안다고, 학기 중에는 교수로서 바쁘게 살다가 방학을 맞이해서는 그동안 다하지 못했던 엄마 노릇 주부 노릇 하느라 또 다른 종류의 바쁜 삶을 살다가, 이렇게 생각지 못한 한나절 휴가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았을지 짐작이 된다.
2014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