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산타클로스 라고 하는 인물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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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종교가 기독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 시즌에는 사람들이 너나할것 없이 즐겁고 들뜨고 먹고 마시고 선물을 돌리며 즐거워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집은 더더욱 그러하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크리스마스 노래를 듣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구입해서 포장한 다음 몰래 숨겨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 할아버지가 주고 가는 것처럼 꾸며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도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선물교환이나 트리 장식같은 것은 전혀 없었던 크리스마스를 보냈었지만, 요즘은 선물을 포장하는 포장지 하나에까지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되었다. 아이들 덕분에 (남들이 보기에는 유치해 보일지 몰라도) 생전에 안하던 일을 하게 된 변화가, 바로 아이들을 낳아서 키우는 보람인 듯하다.

지난 달 22일을 전후로 생일 선물을 한차례 대대적으로 받은 코난군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어떤 선물이 받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인 크래프트 인형? 이라고 말했다. 마인 크래프트는 요즘 코난군이 무척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인데, 전세계적으로 요만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이고, 그에 걸맞게 게임 캐릭터 관련 상품들도 많이 판매되고 있다. 레고 씨리즈, 목도리, 티셔츠 등은 이미 생일선물로 받았으니 (한국에서 삼촌이 레고를 왕창 선물해주셨다), 거기에 더해서 받고 싶은 물품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몇 년 전부터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산타가 주는 것, 부모가 주는 것, 한국에서 보내주신 것, 등등으로 구분해서 몇 가지를 준비했었는데, 항상 지켜왔던 룰 하나는 바로 산타가 주는 선물을 가장 별 것 아닌 품목으로 정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처음에는 단순한 것이었는데, 돈은 뼈빠지게 벌어서 우리 부부가 지불했는데, 알지도 못하는 할배가 그 공을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져서 였다. ^__^

그런데 조금 지나고 생각하니 장기적인 장점이 또 하나 있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텐데 그 때에 느끼는 실망감이 덜할 것이다. 해마다 근사하고 비싼 최고의 선물을 주던 사람이 사라지는 것과, 그럭저럭 받아도 안받아도 그만인 선물을 주던 사람이 사라지는 것 중에 어느 쪽이 실망감이 덜할지는 묻지 않아도 당연한 답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인터넷으로 산타가 비싼 선물을 주면 안되는 이유 라는 글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아이들끼리 “너는 산타할아버지가 무슨 선물을 주셨니?” 하고 물어보게 되는데, 우리반 부잣집 아들 케빈은 수십만원짜리 비싼 장난감을 받았지만, 가난한 집 아이 마이클은 고작 몇 천원 하는 벙어리 장갑을 받았더라, 이런 식으로 비교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아이들의 논리는, 산타클로스가 케빈을 더 사랑하고 마이클은 안예뻐하더라 하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만약에 (사실은 만약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확율이 무척 높다) 케빈은 평소에도 선생님께 칭찬을 많이 듣고, 마이클은 수업태도가 불량하거나 준비물을 빠뜨리고 오는 등의 이유로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던 아이라면,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편견의 벽이 한 층 더 높아지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황소가 뒷걸음질 하다가 쥐를 잡은 격으로, 남루한 본전 생각에서 시작한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 철학이 알고보니 그렇게 깊은 뜻이 숨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ㅎㅎㅎ

무신론자인 남편이나 다신교를 신봉하는 나나, 크리스마스는 별 의미없는 날이자, 동시에 보람있고 즐거운 명절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날이지만, 그래도 지난 한 해 모두가 건강하게 열심히 잘 살았다는 자부심도 느끼고, 강의가 없는 기간이니 몸과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친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나누어 먹기도 하고, 세일을 이용해서 집안에 필요한 물품을 좋은 값에 구입하는 기쁨도 누리고 (남들은 이것을 크리스마스 쇼핑 이라고 부른다 :-), 그래서 즐거운 명절이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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