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기와집 부설 유치원의 김혜자 원장님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뛰어난 재주와 천부적인 윗사람 모시기 실력으로 인해 교수님들의 애정을 받았고, 그래서 삼대부속 유치원 교사로 발탁되어 일하다가 급기야는 푸른기와집으로부터 스카웃된 것이 그녀의 나이 20대 후반이었다. 그녀역시 삼화여대가 아닌 유아교육은 유아교육도 아니라는 자부심이 무척 강했고,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임용된 후배 교사들에게 아동중심 교육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원장이라고 소문이 나있었다. 게다가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유치원이 아니므로 교사의 봉급도 정해진 호봉을 제대로 다 받으며, 심지어 푸른기와집 직원으로서의 특혜? 같은 것까지 받을 수 있다는 소문도 돌았었다.
(특혜? 혹은 다른 유치원 교사에 비해 무언가 더 받은 것이 있다면, 생일날 경호실장님의 싸인이 적힌 3천원짜리 공중전화 카드를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 당시에는 셀폰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고맙게 잘 썼다. 경호실장님의 돼지그림이 곁들인 싸인도 재미있었다. 풋~)
하지만 어두움의 세계에 도는 소문은, 김혜자 원장님의 심한 완벽주의 성향과, 독신으로 오직 일에만 매진하는 라이프 스타일 때문에, 그 아래에서 교사가 못버티고 해마다 신임 교사를 임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예전에는 세 반의 교사들 중에서 한 두명이 그만두었다면, 내가 취직하던 그 해에는 세 명의 교사가 모두 동시에 사직서를 쓰고 유치원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서무직으로 일하던 직원마저도 사직하는 바람에 나와 내 동기 두 명이 동시에 임용되어서 완벽주의자 원장님 말고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아무것도 모르는 초임 교사 세 명과 이제 막 업무파악을 시작한 서무직원이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이 그렇게 새 학년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만 3세, 가장 어린 아이들이 스무 명 남짓 등록한 병아리반의 교사는 나의 동기 이정민 (가명) 선생님이 맡았고, 다음 해에 취학을 하는 가장 큰 아이들 반인 만 5세 까치반은 역시 나의 동기 유희선 (가명) 선생님이 스물 대여섯 명의 어린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어딜가나 일복이 많은 나는, 하필이면 인원수가 가장 많은 만 4세 다람쥐반을 맡았는데, 자그마치 서른 세명의 아이들이 복닥거리고 있었다. 병아리반은 너무 어린 아기들 반이라, 서무직원 윤미영 (가명) 씨가 교실 활동을 보조해주었고, 까치반은 아이들이 이미 성숙해서 교사의 잔손이 비교적 덜 가는 상황이었지만, 내가 맡은 다람쥐반은 아직도 화장실 뒷처리도 해주어야 하고, 아침이면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고 우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서른 세 명이라는 대규모 학급은 그 당시의 열악한 유아교육 현장 실정에 비추어봐도 너무 많은 인원이었다. 그나마 내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반일제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덕분인데, 서른 세 명의 아이들과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오후 12시 30분이 되면 썰물이 빠져나가듯 아이들이 하원을 했다.
유치원이 해마다 새로운 교사가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일을 십 수년째 반복하다보니, 교육자료가 제대로 정리되고 보관되어 있지를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원하고난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매일 다음날 필요한 교육자료를 만드는 것이 업무의 상당부분을 차지했지만, 어쩌다 일당을 받으며 청소를 해주시는 아주머니가 못오시는 날에는 교실과 화장실과 복도를 청소해야 했고, 도우미 아주머니는 오직 청소만 해주시기 때문에 다음날 아이들이 먹을 간식은 교사가 만들거나 준비해야 했다. 그 밖에도 결석한 아이의 부모에게 전화걸기, 각 아동별로 매일 했던 일을 적어서 면담자료 및 가정통신문을 만들어 보내기, 양식에 맞추어 일일 교육계획안 쓰기, 주제별 계획안 작성하기, 반 별로 돌아가며 실시하는 토요일 연구수업 준비하기, 매 월 두세 건 있기 마련인 행사준비하기… 이 모든 일은 경력이 많은 노련한 교사라 하더라도 다 해내기가 벅찬 양인데, 이제 겨우 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교사 셋이서 어디 가서 물어볼 곳도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하자니 정말 많이 힘들었다.
원내 유일한 경력자인 원장님은 외부 강의를 나가거나, 자신의 행정 업무로 바빠서 좋은 멘토가 되어주지 못했고, 뿐만 아니라 교사와 서무직원에게 늘 인격모독을 덧붙인 비난과 질책만을 퍼부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서무 미영씨에게 시키는 것은 일상다반사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 교사에게 그런것도 몰라? 하고 비웃으며 조롱하거나, 아직도 일을 이것밖에 못했느냐며 화를 내곤 했었다. 자기 딴에는 부하직원을 가르치려고 그랬겠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한 것은 수고했다, 하지만 이런 점이 부족하니 조금 더 노력해라, 하며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모습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집에서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이러느냐 등의 모독적인 발언이나 (밥을 국에 말아먹는 것을 비난하며), 외모를 가지고 조롱하며 업무와 상관없는 일로 놀려대는 것을 즐기곤 했던 (유희선 선생님의 가슴이 절벽이라 초등학생 같아보이는 몸매라며), 참 나이값 못하고 싸가지 없는 성질머리 드러운 여자였다. 하지만 유아교육계의 선배들에게는 어찌나 입안의 혀처럼 살갑게 구는지, 외부에서는 일잘하고 싹싹한 천사라고 헛소문이 나있었던 것이다.
서른 세 명의 아이들이 족두리나 하회탈을 만들 수 있도록 도화지를 서른 세 개 오려두고, 꾸밀 수 있는 색종이는 갖가지 모양과 색깔별로 잘라놓고, 서른 세 개의 고무줄을 잘라놓고, 서른 세 명의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준비해놓고, 서른 세 명의 아이들의 신발장과 사물함 이름표를 월별 주제에 맞추어 새로이 만들어 코팅해서 붙여놓고, 은은한 음악을 틀어놓고, 교실을 돌아보며 혹시 무언가 부족한 것이 없는지 살피고 있자면, 서무 미영씨가 버스로 데려온 아이들이 와~ 선생님~~ 하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초임 교사라 모든 일이 서툴고 힘들었지만, 그렇게 함박웃음으로 등원하는 아이들을 보면 보람이 느껴졌다. 족두리가 무엇인지, 하회탈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함께 만들어서 쓰고 우리나마 전통 음악에 맞추어 탈춤을 가르치고 꼭두각시 춤을 가르쳐서, 추석이 다가오는 어느 주말에는 학부모를 초대해서 민속놀이 하는 날 행사를 치루었고, 동물에 대해서 배운 다음에는 동물원 견학을 다녀왔고, 식물에 대해서 배우면서 유치원 화단에 직접 꽃씨를 심었고, 겨울에는 직접 키운 배추를 뽑아서 아이들과 함께 김치도 만들었더랬다.
일이 힘들어도, 월급이 실망스러워도, 상사가 지랄맞아도,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즐거웠고, 대학에서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행복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내가 부딪혔던 첫번째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학부모는 돈을 지불하는 고객이고, 교사는 그들이 원하는 써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입장인 점이었다. 아니, 원장이 써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고, 교사는 그 원장이 쥐어짜는 도구에 불과한 존재였다.
푸른기와집 경호실 직원이라고 모두가 티비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멋지게 생겼거나, 고위직 공무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부모의 대다수는 고졸 학력으로 군대에 갔다가 무척이나 성실하게 복무하며 하사관으로 남은 사람들 중에서 보수적인 (그들의 언어로는 건전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발탁해서 채용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아내는 대부분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순종적인 전업주부였는데, 지방에 살다가 푸른기와집 직원이 되어 상경한지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자녀 교육에도 높은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유아교육이란,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한글을 먼저 떼고, 구구단을 잘 외우도록 가르치는 것이지, 피아제의 인지이론의 근거한 놀이중심 교육이라는 것은 듣도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분기별로 몇 십만 원의 등록금을 받는 우리 유치원은 고작 반일만 아이를 맡아주고 연구수업이 없는 토요일은 쉬는 데에 반해, 길 건너 태권도장 혹은 속셈학원은 한 달에 고작 삼만원 밖에 안받으면서도 하루종일 한글공부와 숫자공부를 시켜준다며 비교하곤 했다.
더욱 자존심 상하는 일은, 학부모로부터 그런 항의전화를 받은 날이면 그렇게 잘났다던 삼화여대 출신 원장님이 우리 교사들에게 와서 일주일에 하루는 반일이 아닌 종일반으로 운영을 하라던가, 자유놀이 시간을 줄이고 아이들로 하여금 공책에 받아쓰기 연습을 시키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보안규정상 이유로 푸른기와집 직원이 아닌 원아는 받을 수 없으니, 원아등록이 저조한 분기에는 정해진 상여금을 못준다는 일도 있었다. 방학을 앞둔 달에는 혹시라도 긴 방학 동안 원아가 다른 기관으로 빠져나갈까봐 학부모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야만 했다. 만약에 아이가 뛰어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라도 까지는 날에는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인양 학부모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 내 조카처럼 각별한 애정을 느끼는 우리반 아이가 다치면, 교사도 부모 못지않게 속상하고 사고를 미리 예방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 다친 상처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거나 반창고를 붙이는 등의 처치를 하는 것은 교사의 당연한 의무라고 믿었다. 학부모에게 사고가 일어난 경위를 설명해주는 것도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이 엄마가 우리 유치원을 그만두고 떠나가면 안된다는 생각까지 해야 하는 것은 교사 양성과정을 마치고 공정한 과정을 거쳐 임용된 교사에게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이었다. 마치 내 자신이 시장의 좌판에서 내가 파는 생선이 가장 싱싱하다며 행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생선장수를 비하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파는 생선이 가장 싱싱하다는 자신감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 색과 향을 보고 원하면 사가고 아니면 안사가는 구조여야지, 왜 애걸복걸하면서 제발 좀 사가라고 매달려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당시에 다른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하던 동기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모두들 비슷한 딜레마를 경험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이것이 최고! 라며 배운 것이, 현실에서는 최악! 이라 배운 것에게 밀리며, 그 최악의 유아교육을 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다는 현실에 부딪힌 것이다. 즉, 유아기 발달 과정에는 종일반은 너무 길고, 반일제 교육이 가장 적합하며, 읽기 쓰기 수세기는 학습준비가 되었을 때에 시켜야 하며, 그러한 학습준비는 잘 준비된 환경에서 자유롭게 일어나는 놀이상황에서 가장 잘 이루어진다고 배웠지만, 현실에서는 싼 값에 오랜 시간 아이를 맡아주면서 기역니은을 억지고 외우게 하고 의미도 모를 구구단 노래를 열 번도 넘게 부르도록 시키는 곳이라야 엄마들이 지갑을 여는 구조인 것이었다.
물론 그 어느 분야에서나 이론과 실제의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지만, 유아교육은 그 정도가 너무나 심했다. 같은 교육학 분야라 하더라도 초중고 교사가 된 친구들은 자기반 아이들이 내일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면 내 월급이 줄어들텐데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할 일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삼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님들이 이런 현실을 미리 알려주셨더라면, 어느 정도 각오와 함께 교직을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아마 교수님들은 그런 현실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아예 없으셨을것 같다. 삼대부속 유치원이나 극소수 부유층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이 아니면 상대조차 안하셨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삼화여대 교육과정이 독야청청하는 동안에, 동네 상가마다 생겨나는 속셈학원 미술학원 태권도장에서는 엄마들의 지갑을 열기위한 갖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유아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은 저멀리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2015년 1월 17일
아.. 초등학교나 유치원이나 장 마음대로라는 시스템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군요.
교수님 쓰신 글 보니 엄청 이입되네요. ㅠㅠ
초등학교에서도 교장선생님이 가장 문제이신가보군요 🙂
그래도 초등학교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비하면 훨씬 좋은 환경에서 일하시는 거예요.
저는 친한 친구들 중에 초등교사가 몇 명 있는데, 그들이나 나나 대학 다닐 때 배우는 건 비슷한가 싶더니, 취직하고나서의 삶이 무척 다르더라구요.
물론 초등 나름대로의 더 힘든 점이 또 있겠죠. 유치원과는 또다른 엄마들의 치맛바람이라든가, 더욱 꽉 막힌 공무원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행정업무라든가, 유치원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생기는 문제점 대신에, 또 너무 많은 교사들이 함께 일해야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인간관계의 갈등… 뭐 제가 알지 못하는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요?
그래도 아이들 보면서 힘내는 건 유치원이건 초등학교선 마찬가지 아닐까 짐작합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등학교에서도 교장선생님이 왕이세요..ㅋㅋ
중등은 초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평교사 발언권이 세다고 하던데
초등은 많이는 좋아졌다고 하나 제왕적 권력인 건 여전하긴 하구요.
전 도저히 이러곤 못 살겠다 싶어 노조 활동합니다… ^^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이집 or 유치원의 현실은 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긴 했어요.
동생이 어린이 집 선생님이었거든요.
근데 금전적으로도 정말 투명하지 못하고 박봉에 요구하는 건 많고 정말 힘들어 하더라구요.
제 동생은 너무 힘들다 보니까 자기가 어려서부터 끼고 키우다시피 가르치던 애들이
(그 어린이집은 발도르프처럼 ^^; 애들 나이 많아져도 선생님이 계속 애들 데리고 올라갔어요.)
딱 7세 되서 유치원 입학하고 나니까 그만 뒀어요. 온 몸에 골병이 나서요.
초등은 뭐 요즘 애들이 단 몇 년전과 비교하더라도 말도 못하게 드세져서 힘들긴 한데,
그래도 외적인 근무 조건 자체는 여자 직업으로는 이만한 게 없는 건 맞는 거 같아요.
퇴근도 빠르고 자기 근무 공간 보장되고… 맘에 안 맞는 동료 있어도 내 교실에 있으면 되니까
얼굴 안 보면 그만이거든요..^^;
여튼 교수님 블로그 보면서 이런 저런 얘기 읽고 미국 유학에 관한 정보도 얻고
맛있는 음식 이야기도 보고 너무 좋네요. 종종 또 들를께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