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5편: 유아교육과 아동복지의 접점에서 일하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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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여대 유아교육학과 84학번 김민아 (가명) 선배는 여러모로 존경할만한 사람이다. 경남 합천 출신이라 경상도 억양이 약간 남아있는 점잖은 말씨에, 불교에 관심이 많아 명상이나 수련 같은 것을 취미삼아 하고, 윗사람에게는 비굴하지 않은 예의를 갖추는 동시에 아랫사람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인간적으로 대해주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내가 학부 3학년때였던가? 무슨 특강 같은 것을 해주러 학교에 오셔서 인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가 내가 푸른기와집 유치원을 그만두고 백수로 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민아 선배의 남편이 청와대 경호실에서 일하고 있어서, 나를 포함한 교사일동이 모두 그 유치원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은 일찌감치 들었는데, 자기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마침 교사를 필요로하게 되어 내게 만나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민아 선배는 삼화여대 종합사회복지관의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삼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그 당시에는 사회사업학과라는 명칭이었다) 교수와 졸업생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라, 우리 전공으로 치자면 삼화여대 부속유치원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즉, 기관장은 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이고, 그 학과 내에서 손꼽히는 몇 명만이 삼대복지관에 취업을 해서, 우리 삼대복지관이 최고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모든 직원은 삼대 사회복지학과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복지관 어린이집의 학부모 대부분이 삼화여대 교수나 직원이다보니, 어린이집 교사를 사회복지사 보다는 유아교육자격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고, 그래서 민아 선배가 복지관 최초로 삼대 사회복지학과 출신이 아닌 직원으로 채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그 카리스마와 훌륭한 인품으로 학부모들의 신임을 얻어 원장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복지관 입장에서 보자면 무언가 자기 영역을 침범당한다는 느낌이 들었겠지만, 민아 선배가 원장이 된 이후로 어린이집 사업이 복지관에서 가장 활발하고 큰 성과를 내는 부서가 되었고, 더 많은 유아교육 전공 교사를 뽑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는 와중에 내가 토끼반 선생님으로 임용이 된 것이다.

유아교육이라면 치가 떨리도록 싫었지만, 삼대복지관 어린이집 교사직을 수락하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첫째, 종일반 어린이집이고 학부모, 특히 엄마들이 모두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라 (그것이 어린이집 입학 자격 조건이었다) 자신의 아이들을 하루종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선생님에게 무척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푸른기와집 유치원의 엄마들은 대부분 전업주부라서, 반일제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이를 붙잡고 오늘은 뭐 배웠니? 선생님이 몇번이나 발표시켜주셨니? 간식은 뭐 먹었니? 하고 세세한 일을 다 알아낸 다음, 자기 마음대로 종합정리를 해서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원장에게 항의전화를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 애가 선생님이 안도와줘서 만들기를 못했다네요, 혹은 오늘 간식이 부족했던지 배가 고프다고 하네요, 우리 애를 아무개가 맨날 괴롭히는데 왜 선생님이 중재를 안해주세요? 하는 식의 전화가 하루에 한 통 이상은 걸려오곤 했었다. (물론, 아이의 말만 단편적으로 듣고 생각해낸 그 시나리오는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삼대복지관 어린이집 엄마들은 직장일로 바빠서 그런 시시콜콜한 일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고, 오히려 교사가 ‘오늘 진우가 간식을 많이 안먹었어요, 요즘 입맛이 떨어진 것 같아요’, 하고 말해주면 그런 사소한 데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써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분위기였다.

두번째로는, 대학 부설기관이라서 사회복지학과 실습생과 자원봉사 학생들이 꾸준히 있어서 손이 많이 가는 유아교육 자료준비라든지, 급할 때 교실 활동보조를 부탁할 수가 있었다. 심지어 공공근로를 나온 사람들도 있어서 실내외 청소라든지 망가진 책상과 의자 수리 등의 일을 해주는 손길도 있었다. 게다가 한 반의 인원은 스물 네 명인데 주교사 두 명에 보조교사 한 명이 배정되어 있어서 훨씬 교사의 업무가 수월했다. 서른 세명의 아이들을 혼자 가르치면서 간식만들고 청소하고 동동거리던 것에 비하면 복지관 어린이집은 고정적으로 주방일을 하시는 분이 두 분이나 계시고, 공공근로, 자원봉사, 등등의 일손이 많다는 점이 좋았다.

세번째 이유는 앞서 말한 김민아 선배가 좋았기 때문이다. 김혜자 원장에 비하면 훨씬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아랫사람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린이집 주방에 야채배달을 해주시는 아주머니에게나, 상사인 복지관 관장님을 대할 때에나, 심지어 자신의 외손주를 줄 안서고 바로 입학시켜달라고 청탁하러 오신 삼화여대 부총장님을 대할 때에 모두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네살짜리 우리반 어린이에게도, 교사인 나에게도, 항상 상냥하고 친절했다.  

마지막으로, 그래봤자 유아교육? 그래도 유아교육!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미생에서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하는 말에서 따온 표현이다 🙂 유치원 선생노릇이 무척 힘들고 싫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다른 공부를 해서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과 동기들 중에는 패션디자인 학원을 다니다가 의류회사에 취직한 친구도 있고, 금융 분야의 공부를 독학으로 해서 지금은 외국계 은행에 상무로 근무하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내 진로를 급변경할 만큼 유아교육이 싫지는 않았다. 애정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도 있듯이, 내가 유아교육계를 그렇게 싫어했던 이유는 그만큼 유아교육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던가보다. 정말로 유아교육이 싫었다면 그런 애증이 교차하는 감정조차 느끼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다음 글에서는 종일반 어린이집에서 일하면서 얻은 것과 여전히 실망스러웠던, 그래서 마침내 한국 유아교육계를 멀리멀리 떠나오게 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하룻밤에 글을 두 편 쓰자니 조금 피곤하다 🙂

2015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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