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의 영화 두 편: 미운오리새끼 & 극비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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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있는 한국영화 두 편을 보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거의 매달 재미있는 한국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서 볼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기준으로) 재미있는 한국영화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관객이 백만명이 들었다는 힛트작을 보아도 시나리오 자체가 너무 유치하거나, 아니면 좋은 원작을 영화로 망친 졸작이거나, 아니면 도대체 이 따위 영화가 뭐가 좋다고 백만명이나 봤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곽경택 감독이 최근에 극비수사 라는 영화를 개봉했다는 기사를 보았고, 거기에 관련 검색을 하다보니 3년 전에 미운오리새끼 라는 영화도 개봉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숨겨진 좋은 영화라는 평을 읽었다.

곽경택 감독은 1997년에 억수탕 이라는 영화를 찍으면서 장편영화감독으로 데뷔했는데 (그 전에는 뉴욕대 졸업작품으로 단편 영창이야기 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찍었다고 한다. 이 단편영화에다가 살을 더 붙여 만든 영화가 미운오리새끼 라고 한다.) 화려한 배우도 없고 제작비도 무척 저렴했을 듯한 영화이지만 무척 따뜻하고 정겨운 영화라서 두고두고 여러 번 보았고, 그래서 그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몇 년 후에 그 유명한 친구 라는 영화도 찍었는데, 나는 그 영화는 보지 않았다. 왠지 내가 생각하던 곽경택 스타일의 영화가 아닌 것 같아서 내키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운오리새끼 영화는 곽감독이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초심으로 돌아가서 찍었다는 말에 마음이 끌렸다.

1987년 즈음에 부산의 한 군부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6개월 방위병으로 복무하는 전낙만 청년이 주인공이다. 기원을 운영하시던 할아버지 덕분에, 그리고 전직 사진기자였던 (현재는 정신이상으로 고통받는) 아버지 덕분에, 군대에서 이발병이자 사진병으로 바쁘게 지내는데, 거기에서 겪는 모든 에피소드가 실제로 곽감독이 군대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것이고, 그 당시에 군대 선임이었던 음악평론가 강헌 선생과 함께 겪은 일이라고 한다.

찌질한 삼수생 청년은 군대생활도 찌질하게 겨우겨우 마치지만, 그래도 자신이 백조가 될 미운오리새끼일 수 있으니, 너무 비관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독백으로 영화가 주는 교훈을 직접적으로 들려주면서 마무리가 된다. 교훈을 나레이션으로 직접 말하는 영화라니, 유치할 법도 하지만 곽경택 감독의 스타일은 그런 풋풋한 마무리가 유치하지 않고 동화처럼 아기자기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아이들이 일찍 잠든 저녁이라,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이어서 또 한 편을 보는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다.

극비수사 라는 영화는 1978년에 부산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유괴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추리수사물이다. 나도 그 당시에 부산에서 국민학교를 다녔던지라, 영화에서 나오는 부산의 골목골목 풍경이 낯익고 반가웠다.

주인공 형사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이나 유괴된 아이의 아버지 역을 맡은 송영창은 원래 경상도가 고향인지 부산 사투리를 무척 자연스럽게 말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괴 아동의 고모 역할로 나온 장영남은 전혀 해본적 없던 부산사투리를 배워서 연기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인터넷 기사로 읽지 않았다면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장영남의 부산 사투리는 자연스러웠다. 예전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엉터리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장면이 흔하게 있었는데 요즘은 감독이나 배우들이 리얼리즘에 입각해서 사투리를 열심히 연습하나보다. 무척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포니 승용차 한 대에 일곱 아이들과 어른 네 명이 타고서 계곡으로 소풍을 가는 장면은 정말 내가 어릴 때 해봤던 일이라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저 앞에 교통경찰이 있으니 아이들은 전부 “쑤구리~” 하면서 지나가고, 안전벨트는 커녕, 어른들 무릎 위에 앉거나 발치에 끼어 앉아서 그렇게 얻어타는 자가용차 (승용차 라는 명칭보다 더 익숙하다) 는 그렇게도 좋았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감독의 잘 만든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아서 좋았고, 그리운 부산의 풍경과 사투리를 보고 들어서 더욱 좋았다.

2015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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