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한 이야기
도시락 이야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책 이야기
근 3주간은 새로운 학년을 시작하는 준비와, 새학년 새학기 첫주일 동안에 해야하는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보다도 먼저 개학을 해서 자기들 학교 생활에 익숙해진 터라 내 바쁜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아이들이 자라면 혼자 스스로 할 줄 아는 일이 많아지고 따라서 내 엄마로서의 업무가 조금은 덜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더 분주해진 느낌이 든다.
코난군은 학교급식 보다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더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햄앤치즈 샌드위치는 매일매일 싸달라고 할 정도로 좋아한다. 약간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간편한 이유로 정말 거의 매일 같은 샌드위치만 싸주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또 하루 중에 가장 온전하게 하는 식사가 점심 도시락인 남편의 건강도 고려하고, 나자신도 건강과 체중조절을 위해서 도시락을 자주 먹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래서 매월초 코난군 학교에서 급식표가 나오면 코난군에게 급식을 먹을 날을 미리 정하라고 하고, 나머지 날에는 조금더 다양하고 건강한 메뉴로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날은 남편이 강의가 없고, 어떤 날은 내가 식사를 겸하는 회의가 있기도 하고, 코난군이 급식을 먹는 날도 있다보니, 이렇게 2주일치 표를 만들어서 어느날에 무엇을 만들지를 미리 정해두고 있다. 같은 메뉴의 음식을 만들더라도 특정 과일과 특정 야채만 먹는 코난군의 입맛과, 가급적이면 한식에 가까운 도시락으로 싸주고픈 남편의 도시락은 그 구성이 조금씩 다르다. 코난군은 오전 수업시간 중에 한 손으로 간단히 집어먹을 수 있는 간식도 매일 싸주어야 하므로 이렇게 미리 계획을 잘 세워놓지 않으면 건강하고 다양한 도시락을 먹이고 먹기가 힘들다.
2학년이 되면서 태권도를 배우고 미술교실을 다니고 주말 아침이면 아빠와 테니스를 치는 코난군의 각종 행사를 요일별 시간별로 챙기는 것은 코난아범이 주로 하고있지만, 거기에 맞추어서 나도 준비물을 챙긴다든지 둘리양의 라이드를 책임진다든지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도 제법 정신을 분주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승합차로 실어나르는 서비스가 얼마나 부모의 시간과 수고를 덜어주는지,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
이번 학기에는 학생수가 이례적으로 많아서 모든 전공 과목을 추가개설해야 했고, 따라서 그 강의를 맡을 강사를 구해서 일을 맡기는 것도 학년 준비를 시작하는데에 큰 몫을 차지했었다. 그나마 이번 학기에 함께 일하시는 강사 선생님들이 모두 실력있고 믿음직한 좋은 분들이라 마음이 놓인다. 내가 가르치기로 했던 과목을 대신 가르치게 된 토마슨 선생님은 지역 유아교육 연합회 일도 함께 했었고, 나처럼 레인보우 라이더스 어린이집 학부모이기도 해서 서로 알던 사이이기는 했지만, 첫 강의에 나도 함께 들어가서 겪어보니 강의수준도 무척 뛰어난 좋은 선생님인 것을 알게되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데 근엄한 목소리와 태도로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다가 간간이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더해서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등, 어쩌면 내가 가르치는 것보다도 토마슨 선생님이 가르치게 되어서 더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토마슨 선생님의 첫 강의를 들으면서 공책에 낙서처럼 끄적였던 글귀를 옮겨보자면…
“…그녀의 강의는 매우 잘 준비되었고 효과적이다. 심지어 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내 육아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머리로만 아동발달을 이해하고, 정작 실생활에서는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기다렸어야 할 것을 성급하게 내가 먼저 해치우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니 아이들 특히 둘리양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고보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좋은 교수가 못되었던 것 같다. 반성반성하고 자만하지말자. 이 세상에는 – 멀리 갈 거도 없이 우리 동네에만 해도 저렇게나 좋은 강의를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인재를 발굴해서 강의를 맡긴 것은 바로 나이므로, 그렇게 심하게 나쁘지는 않았던 셈? ㅋㅋㅋ”
요즘 출퇴근 길에 과학책이 있는 저녁 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는데 이번에 다룬 책이 신경정신과 의사 올리버 색스 박사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라는 책이었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방송을 듣고나니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생기고, 올리버 색스라는 천재적인 의사양반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고싶어졌다. 방송 내용에 따르면 색스 박사는 아무리 이상하고 기괴한 행동을 하는 환자라도 (두뇌와 신경계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다), 그 사람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도와주려고 했기에, 무척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한다. 간암 말기에 이르러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하면서도 뉴욕타임즈 지에 간간이 기고를 하고 두 권의 유고작이 될 책을 쓰고 있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어제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빌려놓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내 학생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마음을 품고, 아무리 말썽꾸러기 문제학생이라도 비난보다는 좋은 방향으로 선도하려는 노력을 먼저 하는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번 학년에는 학생 수도 많고, 그에 비례해서 교수에게 뺀질거리며 거짓말을 한다든지, 수업에 불성실한 자세로 임하는 학생들도 참 많아서 개강하기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아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도 줄이고 효과적인 학생지도 방법도 모색해보고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은 새 학년 첫 주가 끝나가는 금요일 오후이다. 캠퍼스 광장에서 학생들의 동아리 대모임이 있는데 (이걸 뭐라고 번역하지? Club Fair 라고 쓰면 간단한 말인데 한국어로 번역이 어렵다 :-), 내가 지도하는 한국학생회 부스에 들러서 격려의 말을 해주고 퇴근하는 길에 내일 손님 초대에 필요한 먹거리 장을 보고 둘리양을 픽업해서 집으로 갈 계획이다.
코난아범은 어제 (강의가 없는 목요일) 샬롯까지 내려가서 아이키아에서 사온 코난군의 책상과 의자를 완전히 조립을 마쳐두었겠지?
다음 주 강의와 업무도 대략 마쳐두었으니 이제부터 일요일 밤까지는 엄마 모드로 변신!
ㅎㅎㅎ
2015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