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울푸드 김치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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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코난군의 소울푸드 라는 제목으로 82쿡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감기에 걸려서 목이 아프고 열이나는 코난군에게 계란죽을 끓여서 먹인 일을 써서 올렸는데, 이번에는 내가 그만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사실, 의사를 만나서 정확하게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독감이라고 단정을 내린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 기억으로 2001년에 이렇게 고열이 나고 아팠던 적 이후로 15년 만에 심하게 아팠다.

그 사이에 감기에도 걸리고 앨러지 반응으로 콧물이 줄줄 나기도 하고, 머리가 띵하고 아프거나 하는 일은 있었지만, 이번에 앓았던 것은 그 모든 증세를 다 합쳐도 모자랄 만큼 종합적이고 심했다.

월요일 저녁 강의를 마칠 무렵부터 몸이 좀 안좋다 싶더니 화요일 새벽부터는 열이 무척 많이 나는데 체온계를 가지러 방 밖으로 나갈 수가 없도록 온몸이 아팠다. 콧물과 기침은 기본이고 두통에다 온몸이 아파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화요일에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보내놓고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데, 내 몸에서 나는 열로 침대가 온돌 아랫목처럼 뜨끈뜨끈하게 데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

코난군이 아플 때 먹였던 어린이용 감기약 시럽을 먹으니 잠시 동안 정신이 돌아오는 듯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약기운이 떨어진다 싶으면 다시 원래 아픈 상태로 되돌아왔다.

다행히 화요일에는 강의도 없고 회의도 없어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앓으며 누워있었다.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맥도날드에 가서 저녁을 먹이고 귀가했다.

(지금 생각하니, 아픈 것만 빼면 이 날 하루가 내게는 완벽한 휴가였네!)

수요일에는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서, 내게서 옮아서 또 열이나는 둘리양을 데리고 출근을 했다. 

오후 2시부터 세 시간 짜리 강의가 있어서 어떡하든 결강을 피해보려고 출근을 강행했지만, 점점 상태가 나빠져서 결국 오후 1시 쯤에 학생들에게 이메일로 휴강을 알리고 퇴근해야만 했다.

 

참, 그리고 결정적으로 위의 두 날 동안에 나는 먹은 것이 별로 없었다.

너무 아프니까 허기도 느껴지지 않고, 갈증도 나지 않았다.

남편이라도 시간이 있었으면 뭐라도 만들어주었겠지만, 하필이면 남편은 수요일 하루종일 우리 학교 면접이 있어서 새벽에 나가서 늦은 저녁에나 돌아왔다. 그 전날에는 면접 준비 마무리 하느라바빴고…

그나마 수요일에는 둘리양을 데리고 있어서 둘리양이 마시던 쥬스를 한모금 얻어먹기도 하고, 둘리양이 좋아하는 딸기를 함께 먹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목요일, 느낌상 독감 바이러스는 내 면역체계가 승리를 하고 끝난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그 전쟁의 잔해가 남아서 콧물과 기침이 나고, 이틀 동안의 전쟁으로 체력이 소진되어서 샤워를 하고나면 누워서 쉬어야 하고, 이를 닦은 다음에는 누워서 쉬어야 하는 등, 드러누워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회복의 징조 가운데 하나는 식욕이 생기고 있다는 것.

이틀을 생으로 굶은 공복에다가 원기를 돕는다며 기름기 많은 고깃덩어리를 넣어줄 수는 없다.

부드럽고 소화 잘 되는 따끈한 음식…

 

김치밥국이다.

물에다 마른 멸치를 넉넉하게 넣고 육수를 낸다.

(어릴 때는 김치밥국의 멸치는 다 골라내고 안억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이 멸치가 참 맛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괴기라 그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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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김치냉장고에 든든하게 쟁여져 있는 김장김치는 썰면서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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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육수에다 김치를 넣고 한 소끔 더 팔팔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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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찬 밥 한 공기를 넣고 약한 불에 뭉근하게 10분 이상 끓여서 밥이 부드러운 상태가 되고 국물이 걸쭉해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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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찍어놓고 보니 보잘것없는 음식 같아보이지만, 어릴 때 외할머니가 자주 만들어 주시던 음식이다. 물론 나중에는 우리 엄마도 만들어주셨지만, 내 기억 속에서 이 음식의 기원은 외할머니이다 🙂

국밥이 아니고 밥국이라는 이름이 조금 낯설기도 하고 촌스럽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김치와 부드러운 밥, 멸치의 구수한 맛…

이 멋진 조합은 독감을 앓고난 후 회복기 음식으로 아주 안성마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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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사흘만에 먹는 곡기…

감동의 순간이라 한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한 손으로 카메라 (휴대폰)를 들고, 셔터를 누를 것이 마땅찮아서 턱으로 터치해서 찍은 근접샷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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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이 글을 보시는 엄마, 아빠, 저 이제 다 나았으니 놀라서 급하게 전화하고 그러지 마세요 🙂

내일 금요일 부터는 정상 출근할 거예요.

둘리양도 (밤이나 낮이나 제 옆에서 떠나질 않으니 서로 옮는 게 당연하죠) 열이 다 내려서 내일은어린이집에 갈 수 있어요.

 

2016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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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

앗 김치밥국! 급반갑! 제게도 엄마가 어릴적 자주 만들어주셨던 소울푸드에요ㅠㅠ 이건 꼭 한 그릇만 나오는 국밥뚝개비에 끓여주셨는데…레시피가 멸치육수하나라니..간단했군요. 계란까지 풀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한국도 얼마전 독감이 유행였어요. 저도 아픈데 직접 해먹어야하는 입장이라 뜨끈한 해물미역국을 해먹었네요. 항상 건강하세요! 애독자입니다(뜬금고백ㅋㅋ)

소년공원

김치밥국을 추억하시는 분, 환영합니다!

저는 계란 풀은 건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저희 외할머니와 엄마는 언제나 깔끔한 멸치국물 버전으로만 만들어주셨거든요.

애독자임을 커밍아웃하신 민지님에게 보답하려면 자주 글을 써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래도 자주 오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