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권투 경기 관람을 좋아하셨다.
티비로 보시는 것 뿐만 아니라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벌어지는 경기 실황을 관람하러 가신 적도 많았다.
권투는 물론이거니와 운동경기 자체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그 당시에 유명했던 권투 선수가 누구였는지, 아버지가 누구의 경기를 보고 오셨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기억이 나는 몇 가지는 🙂
밥상을 받아놓고 티비에서 중계하는 권투 경기에 정신이 팔려 그야말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하고 있는 아빠를 타박하던 엄마의 잔소리…
어느 주말 저녁, 잠시 산책하러 나간 줄 알았던 아빠와 남동생이 티비 권투 중계 장면에 관객으로 나온 모습을 보고 신기했던 기억…
나중에 집에 돌아온 동생이, 아빠가 권투 경기를 다 보고나서 짜장면을 사주셨다고 자랑했을 때 무척 화가 났던 기억…
그 이후로는 올림픽 경기에서 우리 나라 선수가 메달을 따는 경기를 지켜보는 정도…
아니면 외할아버지와 함께 김일 선수의 프로레슬링 경기를 티비로 보는 정도…
그 이상의 관심과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경기를 마친 선수가 눈두덩이 붓고 말도 못하게 지쳐서 헉헉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안쓰러웠고, 선수들은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그걸 지켜보는 관중들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잔인해 보였다.
고대 로마시대에 검투사 둘 중에 하나가 죽어나갈 때까지 경기를 지속하던 영화속 장면과 겹쳐지면서, 격투기 종목은 너무 잔인하고 비도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던 내가…!!!
어제 코난군의 태권도 승급 심사 중에서 대련 종목을 지켜보다가 비로소 격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정에 공감하게 되었다. ㅎㅎㅎ
심사를 받는 모든 아이들 중에서 내 아이가 가장 도복이 잘 어울려 보이고, 그가 뻗는 주먹 하나, 발길질 한 번이 그렇게나 멋져 보이더니, 마침내 대련을 할 때에는 내 아이의 킥이 상대방의 몸에 정통으로 맞았을 때, 그래서 "빡" 소리가 제대로 울릴 때 (모든 아이들은 보호장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맞는 소리가 크게 난다. 그러나 많이 아프지는 않다.) 나도 모르게 앗싸~ 하며 즐거워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내 아이가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에는 내 몸이 움찔움찔 하면서 같이 피하게 되고. 상대방의 빈틈이 보이면 '저쪽을 공격해야지!' 하고 소리질러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바로, 우리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을 허공에 든 채로 움찔움찔 해가며 티비 권투 경기를 보시던 그 모습이다 🙂
그런데…
변명이 아니라…
정말로 내 아이 코난군은 태권도를 잘 한다.
그의 까맣고 숱 많은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는 태권도 도복에 참 잘 어울리고, 보호장구를 둘러서 양 볼이 살짝 눌린 얼굴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귀엽다.
그런 귀여운 얼굴이 자못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주먹과 킥을 절도있게 내지르는 모습은 내 마음이찌르르 하고 울릴 정도로 장하다.
아기였던 코난군이 이만큼이나 자라서 태권도를 저리도 잘 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감동하는 것이다.
코난군이 태권도를 좋아하고 꾸준히 잘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선수로 키우겠다거나 하는 계획은 없다.
성인이 되고난 후에 본인이 직접 선택할 직업을 지금 내가 이러쿵 저러쿵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좋아하는 운동 한 가지를 발견한 것이 기쁘고, 이왕이면 검은띠까지 따서 청소년기나 대학생이 되어서 아르바이트 일거리를 찾을 때 자신의 소질을 발휘할 수 있는 특화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흐뭇할 뿐이다.
2016년 6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