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아가라 폭포는 북미 오대호 중에서 이리호와 온타리오호 사이에 있다.
(참조: 오대호의 이름을 쉽게 외우는 방법은 HOMES 이다. Huron, Ontario, Michigan, Erie, Superior 의 앞머리 글자가 HOMES 이다.)
이리호 쪽의 지형이 높아서 온타리오호 쪽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이 폭포를 이루는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이루고 있고, 폭포 자체는 미국 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니, 미국쪽 보다는 캐나다쪽에서 보아야 폭포가 정면으로 잘 보인다.
우리 부부는 예전에 두 번이나 미국쪽 폭포를 보러 왔었지만, 한 번은 미리 서류를 준비하지 않은 채 떠난 여행에서 예정에 없이 갔었고, 그 다음에는 영주권 수속 중이라 국경을 넘으려면 절차가 복잡해서, 이번에야 비로소 캐나다 땅을 밟으며 폭포를 맞은 편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사진에서 폭포 뒤로 보이는 곳이 미국 뉴욕주의 버팔로 라는 도시이다.
그리고 여기는 말굽폭포라는 별명처럼 폭포가 U자형으로 굽어 있다.
위의 미국 폭포와 아래의 말굽 폭포는 원래는 하나의 큰 물길인데, 저 큰 폭포수의 흐름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고트 아일랜드 (염소섬)가 물줄기를 둘로 나누어 흐르게 하고 있다.
폭포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기위해 배를 타기로 했다.
긴 줄을 서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또 다시 긴 줄을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강가로 내려간다.
배에 타기 전에 비옷을 나눠주는데, 미국쪽 유람선은 파란색, 캐나다 유람선 승객은 빨간색 비옷을입게 해서, 폭포 앞의 강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가득찬 배가 떠다닌다.
어른과 어린이용 두 가지 싸이즈가 있는데, 코난군은 이 비옷을 잘 챙겨가서 학교에 갈 때 비오는 날에 입겠다고 한다.
프랑스 빠리바 은행의 김상무와 경기대 부교수는 나와 대학 동기인 친구들인데, 머나먼 미국까지 와서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스무살 시절을 함께 추억하며 즐거웠다.
폭포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방수 카메라를 챙겨왔다.
그러나 아이들 때문에 배의 앞머리에 가지 못했고, 이건 부교수가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
배를 타고 내린 곳에는 기념품 가게도 있고 엘비스 프레슬리 분장을 한 무명가수가 분위기를 돋우는 광장이 있었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엘비스의 노래를 들으며 간식을 사먹고, 기념품도 구경했다.
다행히 날씨가 많이 덥지 않아서 둘리양을 내내 업고 다녔던 남편이 조금은 수월했다.
언제나 다정하고 알뜰히 나를 챙겨주는 좋은 친구 부교수는 올해가 안식년이다.
이번 미국 캐나다 여행 말고도 일본, 유럽, 러시아 등등 세계 여행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내년에 학교로 돌아가면 또 다시 함께 연구를 하자고 다짐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두 친구들은 내 아이들을 마치 친조카처럼 예뻐해주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도 여행 내내 행복해 했다.
꽤 길고도 힘든 여행 일정이었지만 아프지도 않고 힘들다고 불평 한 번 안하고 잘 따라다녀서 이모들의 칭찬이 자자했고,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프렛첼 색깔과 비슷해 보인다 🙂
2016년 7월 15일
대학동기 내친구, 소년공원의 바지런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여행 다녀와서 힘들고 지쳤을텐테….집에 도착하자마자 여행후기를 바로 올렸네요. 저는 집 도착 후 먹고, 자고, 쉬고…..다음날도 쉬고…오늘도 쉬는 중인데…. 아마 소년공원은 집에 신비한 보약(혹시 마약? 은 아니겠죠?ㅋ)을 곳곳에 숨겨놓고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사진, 우리의 비타민이자 천사인 코난군과 둘리양의 사진보니……귀국하자마자 느껴졌던 한국의 습한 공기, 이어 시작된 장마, 국내외 테러, 사건, 사고 소식으로 우중충 했던 기분이 폭포수와 함께 쏴~~ 사라지고, 기분이 맑고 청량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