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진 심사 신청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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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선배 교수가 심사자료 제출을 축하하며 손수 따라준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이 순간을 향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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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와 심사…

살면서 숱하게 경험하는 일이지만 여전히 그 조바심과 초조함은 모든 평가와 모든 심사 과정을 함께 한다.

어릴 때 학교에서 보던 시험에서는 혹시라도 아는 문제를 실수로 틀리게 될까봐 조마조마 했었다. 

대학 입시를 재수 끝에 성공했을 때는 온세상을 얻은 듯 행복했지만 그것도 잠시, 대학교와 대학원의 학생 시절을 보내면서 갖가지 과제와 그에 따른 성적을 받아보는 그 순간은 여전히 두근두근 – 행복한 두근거림이 아니라 정말로 심장이 빨리 뛰어서 느끼게 되는 – 하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교수가 되고나서도 테뉴어를 받을 때, 부교수로 승진할 때, 마치 다시 학생으로 되돌아간 듯한 경험을 했는데, 이젠 마지막이다.

정교수가 되고나면 더이상의 승진은 없으니, 내 생애 마지막 심사가 되기를 바란다 – 이번 승진 심사에서 만약에 탈락하면 내년에 다시 신청해서 다시 심사를 받게 될 것이다.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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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내 손을 떠나 학과장의 책상위로 공간 이동을 한 나의 승진심사 신청 자료이다.

부교수가 된 이후 6년간의 업적을 증빙할 자료를 추려서 모은 것이다.

맨 앞에는 승진 심사를 신청한다는 편지를 써서 넣어야 하는데, 사실상 다른 어떤 자료 보다도 이 신청서가 가장 많이 읽히고 심사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선배 교수들이 조언해주었다.

그래서 2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신청서를 써낸 선배 교수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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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 함께 심사를 받게 되는 동료 교수들과 대략 분량을 맞추어서 1.5배 줄간격으로 아홉 페이지를 썼다. 

이런 공식 서류를 작성할 때는 2배 줄간격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렇게 해서 열 몇 페이지 씩이나 되는 긴 신청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간결하게 (간결해서 9페이지다 헐 🙂 일목요연하게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가장 첫 페이지에 가장큰 임팩트를 주었다. 지난 6년간 받은 평가 결과를 도표로 넣은 것이다.

나머지 자료들은 이미 있는 것을 정리해서 끼워넣기만 하면 되었다.

찾아보기 좋게 섹션별로 정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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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큰 바인더와 섹션을 나누는 컬러풀 비닐 페이지는 모두 학생들이 예전에 제출했던 과제물에서 재활용한 것이라 돈이라곤 한푼도 들이지 않았다 ㅋㅋㅋ

 

 

부교수로 일한지 6년이 지나면 정교수로 승진할 자격이 되지만, 나와 같은 해에 임용되었던 동료 교수 몇몇은 올해에 승진심사 준비를 할 준비가 덜되어 있다며 내년으로 미루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준비가 잘 되든 못 되든 때가 되어 해야 할 일은 해치우고 잊어버리는 쪽을 택했다.

잘 되어서 승진하면 장땡이고, 만약에 불운하게 승진에서 탈락한다면 내년에 재도전을 하는 것이, 내년까지 일년을 그냥 더 기다리는 쪽 보다 승률이 높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즉,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데드라인은 지키자! 하는 내 신념을 다시 한 번 실천한 것이다 🙂

 

이제 그동안 이 작업 때문에 미루어두었던 업무를 따라잡아야 한다.

학생들 과제물 평가와 다음학기 강의계획이며 꽤 오래도록 방문하지 못했던 실습생들의 학교를 찾아가서 그간 무고했는지 안부도 묻고 점검도 해야겠다.

하늘이 도왔는지, 해마다 이맘때 즈음이면 개인적인 문제로 실습지에서 사고를 치거나 방황하는 학생들이 꼭 있었는데, 올해에는 기특하게도 모두가 무탈하게 실습을 잘 하고 있다.

그 덕분에 심사신청 준비를 하는데에 시간과 정신적으로 큰 보탬이 되었다.

 

오랜만에 누려보는 홀가분한 기분 참 좋다 🙂

 

 

2016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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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엄마

박보영 선생님, 축하드려요! 저도 8월에 테뉴어 심사 자료 다 제출했는데 기분 참 이상하더라구요. 정교수 올라갈 때면 또 기분이 남다르겠죠? 

소년공원

아, 제니님도 테뉴어 심사를 받고 계시는군요?

정교수 심사 받을 때는 테뉴어 받을 때 만큼 떨리지는 않는데, 하기 싫은 심정은 몇 배 더 강하더라구요. 이거 승진 안받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없다 생각하니 그런가봐요 🙂

테뉴어와 부교수 승진 심사 좋은 결과 올겁니다!

또 연락해요~

소년공원

오늘 학과장이 내 연구실에 들러서 제출한 자료 잘 봤다며, 심사 커미티에 곧 넘겨줄거라고 중간 보고를 해주었다.

지난 번 연간 평가 회의때 나보다 앞서, 반드시 정교수 심사를 신청하라고 권하던 사람이고, 또 갓 부임해온지라 평가 기준 같은 것도 아직 없어서, 제대로 꼼꼼한 심사를 하기 보다는 대략 형식적으로 평가한 다음 심사 커미티에게 바톤을 넘기려는 듯 보였다. 

나에게는 무척 유리한 일이다 🙂

심사 커미티에는 선배 정교수들이 들어가 있는데, 모두가 나를 잘 알고, 나와 함께 일하면서 우호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야박한 평가를 받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학과장과 심사 커미티, 그 다음으로는 사범대 학장의 심사가 있고, 그 선을 넘어가면 나를 알지도 못하는 높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형식적으로 서류에 싸인을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각 단계마다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