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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농업국가이다 (였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아메리칸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했고, 그러다보니 농작물을 키우고 가축을 돌보는 일이 생존에 직결되는 중요한 일이었다.
누구네 농장의 호박이 가장 큰지, 누구네 돼지가 제일 무거운지, 등을 겨루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아이들은 뛰어놀게 하는 그런 축제가 해마다 여름이면 마을마다 열렸는데, 그 전통이 지금도 남아서 미국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페어가 열리고 있다.
열흘 전에 우리 동네에서 열렸던 카운티 페어에 아이들을 데리고 구경을 갔었는데, 애들은 가축 구경이나 농기계로 하는 카레이스 경기 같은 것보다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에만 온 관심이 쏠렸다.
예전 같았으면 엄마와 떨어져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을 둘리양이 이제 곧 초등학교 학생이 되느라 그런지 혼자서 놀이기구를 잘 타고 놀았다.
코난군에게는 너무 싱거운 돌아가는 찻잔 이었지만, 아직 어린 둘리양에게 워밍업이 되라고 이런 것부터 타기 시작했다.
놀이 기구를 조립해서 가지고 와서 설치하고 관리하는 용역업체가 따로 있어서, 이렇게 넓은 땅만 있으면 즉석 놀이공원이 만들어진다.
놀이 기구 한 개 타는데에 티켓 두 개, 혹은 세 개씩을 받고, 티켓은 열 개에 10달러 하는 식으로 팔고 있었는데, 우리는 놀이 기구를 무한정 타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16달러를 주고 무제한 팔찌를 구입했다.
둘리양이 어렸을 때는 티켓을 몇 개 사서 코난군만 몇 가지 놀이 기구를 골라서 타게 했는데, 이젠 아이들이 커서 무제한 팔찌의 본전을 뽑을 만큼 놀이 기구를 많이 탈 수 있어서 좋았다.
간식으로 솜사탕과 팝콘을 사먹기도 했다.
공을 던져서 맞히면 인형을 주는 게임도 한 번씩 하게 했더니 상으로 탄 인형을 데리고 다니며 함께 놀이 기구를 타기도 했다.
이 날도 남편은 리서치 프로젝트 때문에 출근했기 때문에 나혼자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나도 놀이 기구를 신나게 타고 놀아서 좋았다 🙂
남편은 놀이 기구를 타면 어지럽다며 타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아이들이 타는 것을 구경만 하곤 했는데, 이 날은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목하에 모처럼 놀이 기구를 타며 놀았다 🙂
그래도 둘리양을 혼자 둘 수가 없어서 이런 무서운 기구는 코난군만 타게 해야 했다.
이런 어린이들만 즐기는 시설도 나는 구경만 하고…
엄마가 보고 있을테니 너혼자 타고 오라고 했더니 정말로 혼자서 의젓하게 놀이 기구를 타던 둘리양!
이제 정말 다 컸다.
저녁 5시에 문을 열 때 입장해서 10시 까지 놀면서 (11시에 폐장이었다) 저녁도 사먹었다.
밥도 안하고 놀이 기구도 실컷 타고, 아이들도 심심하다며 불편하지 않고 즐거웠던 여름 방학의 어느 하루였다.
2017년 8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