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학교에서 종업식을 하던 바로 그 날, 하교하는 둘리양을 데리고 서둘러 우리 동네 하나뿐인고등학교 강당으로 갔다.
둘리양의 무용학원 발표회를 위한 드레스 리허설 (실전과 똑같이 의상을 갖춰입고 실제로 설 무대에서 하는 최종 연습)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나름대로 의상을 갖춰입고 무대에 오르는 것이니 엄마의 파우더와 핑크색이 묻어나는 립글로스도발라주었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헤어스프레이도 잔뜩 뿌리고 치장을 했지만, 실제 공연날에는 더 짙은 화장을 하고 오도록 조언을 받았다.
둘리양 차례를 기다리며 다른 연습을 구경해보니, 의상도 화려하고 소녀들의 화장은 더욱 더 화려했다.
이렇게 큰 무대에서 아주 밝은 조명을 받으니 얼굴에 진하게 포인트를 주는 화장을 하지 않으면 눈코입이 안보일 지경이 된다는 것을 알겠다.
그래서 무대화장 이라는 것을 하는거구나…
또 한 번 아이들 덕분에 배운다.
드디어 시작된 둘리양의 공연 연습은 Route 66 라는 곡에 맞추어 추는 재즈 댄스이다.
Route 66 은 미국에서 유명한 도로의 이름인데, 1926년에 개통한 시카고와 산타모니카, 즉 일리노이 주와 캘리포니아 주를 있는 아주 긴 도로이다.
미국 최초의 대륙 횡단 도로라고 한다.
자동차 산업이 활기를 띄던 시절이니 이 도로에 얽힌 노래와 영화도 많이 제작되었고 그래서 미국인들에게는 향수어린 그런 도로인 것 같다.
사실, 올해의 댄스텍 (둘리양의 무용학원) 공연의 주제는 여러가지 교통기관 이어서, Route 66를 공연하는 둘리양의 의상은 자동차 경주 관련자들이 입는 듯한 체커 패턴이 들어가 있고, 다른 공연도 토마스 기차 라던가, 캐딜락, 보트, 그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안무들이 대부분이었다.
둘리양은 매주 토요일에 무용수업을 받는데, 발레, 탭댄스, 재즈댄스를 모두 배운다.
나는 우아한 동작의 발레가 좋은데 둘리양은 발랄하게 뛰고 돌고 바닥을 차고 오르는 재즈댄스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마침 이번 공연도 재즈댄스라서 둘리양이 더욱 즐거워했다.
머리 모양도 우아한 올림머리 대신에 발랄한 포니테일로 묶어주니 몸과 함께 찰랑거리게 되어서 춤이 더욱 돋보이는 것 같았다.
둘리양은 평소에도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다리의 근육양이 아주 많다.
과일과 야채 먹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밥을 잘 먹고 단 음식도 좋아하지만 군살이 없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여러 모로 춤, 특히 재즈댄스에 아주 적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는 춤이라면 아주 잼병이어서 대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은 주말마다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을 추고 노는데, 나는 도무지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남편도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하지만 춤은 나만큼이나 못춘다 🙂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굴 닮아서 춤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둘리양이 원래 무용을 시작한 계기는, 이웃의 다빈이 언니가 배운다고 하니 언니와 같이 있고 싶어서 자기도 배우겠다고 한 것이고, 평소에 낯선 사람들 앞에서 과도하게 숫기없음을 어떻게든 좀 고쳐보려던 엄마는, 그거 좋겠구나 하며 등록을 시켜준 것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다빈이 언니는 여행이며 한국 방문 등으로 무용 수업을 자주 빠지게 되는데 둘리양은 언니 없이 혼자서도 무용 수업을 잘 듣고, 집에서도 아무도 안보는데서 혼자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이 날 연습과 다음날 정식 공연에서 보니, 생전에 안그러던 녀석이 무대에서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넘치는 태도를 보여주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무용 덕분에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니고, 춤을 추는 것이 좋은 나머지 잠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형상이다.
드레스 리허설 동안에는 부모가 마음껏 사진과 비디오를 찍게 해주었다.
대신에 정식 공연에서는 춤을 방해하거나 눈이 부셔 넘어져 다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사진촬영을 금지했다.
게다가 연습을 두 번씩 하니, 한 번은 사진을 찍고 또 한 번은 비디오를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연습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니 학교에서 단짝 친구인 주주와 또다른 친구 날라가 자기 순서를 먼저 마치고 앉아있었다.
자기 차례를 마치면 귀가해도 되지만, 다른 사람들의 공연이 궁금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있는것이 즐거워서 다른 모든 연습이 끝날 때까지 이렇게 있었다.
2018년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