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
방학 중이라 여름 학기 강의를 하는 남편이 집에 없는 동안 두 아이 돌보는 일을 책임지고 전업주부 놀이를 하는 와중에도 한명숙 선생님이 귀국하시기 전에 논문을 써야 하니 간간이 학교에 나와서 미팅을 하고 논문에 대한 의논을 해야 할 약속이 생긴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둘리양이 오빠가 테니스 캠프를 간 사이에 엄마와 단둘이 있으면 엄마에게 심심하다 놀아달라고 귀찮게 하니 그 예방으로 친한 친구 주주를 불러다가 놀게 했던 주간이기도 했다.
코난군의 종일반 테니스 캠프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겨우 월화수요일 사흘간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되었고 마지막 날인 어제 목요일은 아침 11시 30분에 캠프가 끝나니 일찍 아이를 데리러가야했다.
그래서 어제 나의 공식 일정은…
아침 9시에 코난군을 캠프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와서 우리집으로 오는 주주를 맞이함
11시 30분까지 캠프로 가서 코난군을 픽업하고 총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학교로 출발
12시에 우리 학교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논문 쓰기 미팅
2시에 박혜진 선생이 퇴근하고나면 한명숙 선생님과 코난군의 한국어 수업
4시쯤에 남편이 세 아이를 데리러 옴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이는 동안에 주주는 주주네 아빠가 픽업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코난군 태권도장으로 데려감
5시 45분에 나는 계속 학교에 남아 있다가 아너스 신입생 환영 리셉션 행사에 참석 – 그래서 아침부터 풀 메이컵을 하고 옷과 신발을 단정이 차려 입었어야 했음
6시 45분에 행사를 마치면 코난군의 태권도장으로 가서 둘리양을 먼저 데리고 집으로 옴
그런데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은 나로 하여금 후천성 주의력 결핍 장애가 생길 정도로 정신이 없었으니…
아침 11시 30분경 부터 아이들이 내 눈앞에서 사라진 오후 4시 까지 시간 동안에 나는 단 20분도 집중해서 한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11시 20분 우리집에서 둘리양과 주주를 데리고 출발 – 주주의 카싯을 챙기고 내가 미팅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보고 놀 아이패드를 완저히 충전시켜서 챙겨감
11시 30분 학교 미팅에 늦지 않기 위해서 차를 주차장에 넣지 않고 길가에 임시로 세운 뒤 둘리양과 주주를 내보내서 코난군을 차로 데려오게 함
11시 35분 여동생들이 자기 이름을 막 불러서 사람 많은 곳에서 챙피했다며 입이 튀어나온 코난군을 차에 태우고 우리 학교로 출발
12시 5분 학교 식당에 도착하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학생들로 식당이 붐비고 그래서 자리를 못잡을까 우려한 한명숙 선생님과 박혜진 선생님이 먼저 들어가서 식사를 시작했음
나는 아이들이 음식 담는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데 코난군은 혼자 척척 알아서 접시와 먹을 것을 챙길 수 있지만 두 소녀들은 음식을 집다가 말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입장할 때 계산을 한 터라, 다시 식당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
계산대의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소녀들은 식당 바깥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옴
입이 매우 짧은 주주는 드넓은 카페테리아 음식 진열대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찾는데에 어려움을 겪음
뷔페식이다 보니 음식 뿐만 아니라 음료도 선택해야 하고 두 소녀들의 취향을 물어보고 음료 선택을 도움
선생님들과 논문 이야기를 하다가도 세 아이들 중의 한 명이 무언가 더 먹고 싶다는 음식과 음료를 더 가져다주고, 음료를 쏟은 것을 닦아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해주거나, 싱거운 장난질로 사소한 다툼을 하는 것을 중재해 주기도 했다.
아참, 디저트도 함께 골라 주었지…
이윽고 식사는 거의 끝났으나 곧 퇴근해야 하는 박혜진 선생님이 시간을 절약하기도 할 겸, 마침 학생 식당이 한가로와져서 조용해지기도 했으니 앉은 자리에서 논문에 대한 의논을 계속 하기로 했다.
아이들도 식사가 끝나니 아이패드를 보며 놀다가도 엄마에게 어제 미팅이 끝나고 해적선 놀이터에 가서 놀 수 있느냐고 조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논문 두 개를 진행시키고 있어서 우리 미팅은 끝이 날 듯 하다가도 다시 의논해야 할 것이 생각나서 계속 이어졌다.
아이들의 지루하다는 불평과 빨리 놀이터로 가자는 성화도 계속 이어졌다.
마침내 식당을 나와서 한명숙 선생님 연구실로 자리를 옮겨 오늘 새로 찾은 논문을 읽으려고 하는데, 남편이 전화로 예정보다 아이들을 일찍 데리고 가야겠다고 했다.
코난군의 한국어 수업은 취소되었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연구실로 와서 목마르다고 하니 물을 떠다 마시게 해주었다.
물 마시러 한 번 더, 배고프다며 두어 번 더 찾아와서 그 때 마다 물과 간식을 먹게 해주었다.
마침내 또 심심하다며 놀이터 놀이를 작파하고 연구실로 돌아온 아이들에게 일 달러 지폐를 주어 자판기에 가서 과자를 사먹도록 했다.
그 와중에 프린터에 문제가 생겨서 논문 하나를 출력하기 위해 프린터를 손보고 컴퓨터를 껐다 켰다 해야 했다.
그 와중에 동전 주차장에 시간이 다 되었다는 알람이 울려서 차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러고보니 아까 점심을 먹다가 말고도 알람이 한 번 울려서 계산대 직원에게 또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와서 주차장 미터기에 동전을 더 넣고 돌아오기도 했었다.
방학이지만 여름학기 수업도 있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있으니 주차장이 만차라서 동전 주차장을 이용했고, 그러자니 수시로 나가서 동전을 더 넣어야 했던 것이다.
자판기에 돈을 넣었더니 무슨 이유인지 돈이 다시 튀어나온다며 기나긴 복도를 달려 아이들이 도와달라고 했다.
자판기는 왜 그리 멀리 있는지, 잰 걸음으로 함께 가서 과자 뽑기를 도와주었다.
남편이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가니, 아이들을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저만치 남편의 차가 들어와서 주차를 하는데 내 차에 있는 주주의 카싯을 꺼내주려 하니, 아이들은내 차를 타고 가는 줄 알고 차에 타려 했다.
아이들에게 설명하며 아빠차로 타게 하는데, 올 때 가지고 왔던 물건들과 자판기에서 뽑은 과자 등등 빠뜨린 물건이 없는지 확인했다.
마침내 아이들은 남편 차를 타고 떠났으나, 아직도 내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으니…
남편이 전화가 와서 주주 아빠가 몇 시에 데리러 오는지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남편의 볼일이 있어서 주주가 몇시에 가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주주 아빠에게는 영어로, 남편에게는 한국어로 문자를 보내고 받고 하면서 한명숙 선생님과 아까부터 하던 유아기 문해 발달에 그림책이 미치는 영향이나, 그림책에 나온 글자의 종류 (동화의 본문과 삽화에 딸린 글자)에 차별화된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 이중언어 아이들이 그러한 시선집중에있어서는 언어를 막론하고 같은 패턴을 보이더라는 이야기, 우리 데이터를 어떤 표로 보여줄 것인가 – 막대 그래프가 나을지 파이 차트가 나을지, 아이들의 시선 전체를 백 퍼센트로 잡을 것인가, 아니면 책을 보는 동안만을 전체로 잡을 것인가, 뭐 그런 이야기를 했다.
휘유…
도대체 언제쯤이면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각자의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바닥에 쏟은 쥬스를 닦으면서 학술지에 게재할 논문의 데이타 프레젠테이션을 의논해야 하고,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운전해 가면서 아이들의 말다툼을 중재해야 하니, 정신이 다방면으로 분산되어 아주 혼란스럽다.
한명숙 선생님은 이 혼란에 대해 "다이내믹한 삶" 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주셨다.
2018년 6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