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진은 승선 수속을 마치고 디즈니 원더 호에 오르자마자 가진 점심 식사 자리이다.
이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이던가!
원래 승선 시간은 1시에서 4시 사이이고, 온라인으로 원하는 승선 시간을 선택하도록 해서 한꺼번에 승객이 너무 많이 몰려 오래 기다리는 것을 방지하도록 하고 있었는데, 오전 11시부터 이미 승선 수속을 받아주기 때문에 점심을 먹지 말고 일찍 가서 배 안에서 뷔페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크루즈에 타기 전 일주일 가량 씨애틀과 밴쿠버 여행을 하면서 맛집을 찾아가거나 고급 음식을 사먹을 기회를 일부러 피했다.
디즈니 크루즈를 타기만 하면 맛있는 음식을 끼니마다 다른 메뉴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 그 날을 위해 먹는 즐거움을 아껴두기 위해서였다.
재작년 크리스마스에 난생 처음 디즈니 크루즈를 타보았던 우리 가족은, 처음에는 생소하고 얼떨떨한 느낌으로 행복했다면, 이번에는 잔뜩 기대감을 가지고 크루즈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키즈 클럽에 가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레스토랑에서는 어떤 음식을 주는지, 음료수대 에서는 어떤 청량 음료가 나오는지, 수영장은 몇 군데가 있는지, 등등을 이미 알기에,이번에는 무엇을 하며 놀고 무엇을 먹을지를 미리 계획하고 있었다.
배 안에서 먹고 놀고 즐기고 잠자는 동안에 배는 장소를 옮겨서 우리를 새로운 구경할 곳으로 데려다 주었고…
그러니 운전을 할 필요 없는 아빠와, 조수석에서 지도를 보거나 호텔 검색을 안해도 되는 엄마가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아이들도 행복했을 것이다.
게다가 배 안의 대부분의 시설과 혜택이 이미 지불한 값에서 나오는 것이니,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대부분 오냐오냐 하며 허락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음료수를 여러 가지 맛으로 골라서 여러 잔 마셔도 되고, 아이스크림을 하루에 서너번 먹어도 괜찮고, 수영장을 여러 번 드나들거나 키즈클럽을 여러 번 왔다갔다 들락날락 해도, 추가로들어가는 비용이 없으니 다 허락해주었다.
디즈니 크루즈 선사에는 매직, 원더, 드림, 판타지, 이렇게 네 대의 배가 있는데, 모든 배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 클럽이 있는 대신에 카지노가 없다.
다른 크루즈 배에는 사람들의 통행이 가장 많은 곳에 화려한 카지노를 마련해두고 승객들이 재미삼아 도박을 하도록 권장한다는데, 그게 결국은 기계나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딜러에게 돈을 버리는 결과로 이어져서, 크루즈사의 주 수입원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디즈니 크루즈는 그 수입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이 안전하고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점이 내가 디즈니 크루즈를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물론, 디즈니사가 자선사업 단체가 아니므로 크루즈 비용은 상당히 비싸다 🙂
그렇지만 디즈니 크루즈를 한 번만 타보면 비싼만큼 제값을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체험하게 된다.
보통은 형편에 무리가 갈 정도로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얻는 결과는 막상 얻고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돈이 아깝다거나 바가지를 썼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품 가방이나 옷을 가져보지 않아서, 겪어보니 그렇더라고 말할 수는 없다 🙂
하지만 두 번의 디즈니 크루즈 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이럴 때 해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돈버느라 고생했던 일이 다 잊혀질 만큼 행복한 경험이었다.
이 정도의 서비스와 이 만큼의 행복을 누린다면 내가 지불했던 크루즈 비용이 아주 정당한 가격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즈니 크루즈를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줄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다즈니 캐릭터들이 나에게 찾아와서 사진을 찍혀주기 때문이다 🙂
디즈니 월드에 가면 다리가 아프도록 줄을 서서 기다려야 캐릭터 한 두 명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반해, 크루즈 안에서는 식사를 하는 동안에 캐릭터들이 각 테이블로 찾아오기도 하고, 배 안 곳곳에서 시간과 정소를 정해두고 여러 가지 캐릭터가 나와서 전문 사진사가 찍어주는 사진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다.
디즈니 캐릭터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 미키 마우스는 다섯살에 처음 가진 손목 시계에 그려진 캐릭터였고, 도날드 덕이 꽥꽥 거리는 만화를 보며 마음껏 웃었던 유년시절이 있었고, 언더 더 씨 혹은 미녀와 야수 애니메이션 영화의 화려한 영상과 음악은 나의 이 십대 한 자리를 차지했었다.
디즈니 월드에서 즐길 수 있는 퍼레이드나 쇼를 아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디즈니 크루즈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즉, 디즈니 월드의 안락함 버전이 디즈니 크루즈인 것이다.
올랜도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 월드는 너무 넓고 또 너무 남쪽이라 한여름에는 아예 방문할 엄두가 나지 않고, 겨울철에 가더라도 다리를 혹사시키며 구경을 다니거나, 한없이 줄을 서서 기다릴 일이 생기지만 디즈니 크루즈는 바깥 날씨에 상관없이 쾌적한 상태에서 즐길 수 있다.
디즈니 월드의 놀이기구에 비하면 규모가 작거나 숫자가 적기는 해도, 놀이 공원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시설이 많기 때문에, 나는 이제 디즈니 월드 보다도 디즈니 크루즈가 더 좋아졌다.
꼬불꼬불한 워터 슬라이드 사진 속에 숨은 둘리양 찾기!
이제 컸다고 엄마 없이 혼자서 높은 미끄럼에 올라가 낯선 아이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자기 차례가 되니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둘리양은 정말 지난 18개월 사이에 많이 자랐다.
지난 번 크루즈 여행에서는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서 키즈클럽도 못가고 수영장 안에는 반드시 엄마와 함께 들어갔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씩씩하게 혼자 미끄럼도 타고 수영장에도 혼자 들어가서 놀았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아무 일도 안하고 경치 구경이나 하고 커피를 마시거나 산책을 하면되니, 이 역시 내가 디즈니 크루즈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해야 엄마인 나를 귀찮게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물리적 정신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 다음 이유는 무한정 먹고 마실 수 있는 음식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아주 늦은 밤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기계를 열어두기 때문에 언제라도 원하는 맛의 아이스크림을 골라서 먹을 수 있다.
알래스카로 향하는 길이라 물놀이를 하기에 다소 쌀쌀한 기온이었지만 수영장의 물이 약간 미지근하기도 하거니와 수건과 담요를 쌓아두고 마음껏 사용할 수 있으므로, 물놀이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둘리양의 모습이다.
뷔페로 먹었던 아침과 점심식사, 그리고 코스요리로 제공되었던 저녁식사는 먹을 때마다 매번 사진을 찍어두었으니 차차 올리려고 한다.
하루 세 끼 식사 말고도 핏자, 햄버거, 샌드위치, 과일, 등등을 제공하는 간이매점 처럼 생긴 스탠드가 수영장 근처에 있어서, 놀다가 배가 고프면 언제라도 얼마든지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음료수 스탠드는 24시간 운영하기 때문에 한밤중에라도 와서 원하는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커피, 우유, 핫초콜렛이 나오는 기계이다.
뜨거운 물과 여러 가지 맛의 차도 제공되어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 맛을 마셔보았다.
콜라, 사이다, 진저에일, 레모네이드 등이 나오던 음료수 스탠드이다.
보통 다른 크루즈는 이런 청량음료를 따로 돈을 받고 판매한다고 하는데, 디즈니 크루즈는 이 모든 음료가 이미 포함되어 있어서 돈걱정 없이 음료수를 마음껏 마실 수 있어서 좋다는 후기를 많이 읽었다.
젊은이들을 타겟으로 저가 크루즈를 운영하는 회사의 경우, 술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음료 팩키지를 판매한다고도 하는데, 그러다보니 배 안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술병이 나서 토하는 사람, 주정을 부리는 사람 등등 불미스러운 장면이 연출된다고 하는데, 디즈니크루즈는 그러지 않아서 좋았다.
디즈니 크루즈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매일 밤 감상했던 쇼가 환상적이었다는 점이다.
무대 장치와 특수효과를 아주 화려하게 만들어서 브로드웨이에서 보는 뮤지컬과 많이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
또한, 디즈니사에서 제작 배급하는 영화를 여러 가지 상영하기도 했는데, 최신 개봉작도 보여준다.
이번에는 마블의 수퍼 히어로 영화인 앤트맨과 와습을 개봉일보다 하루 앞서서 크루즈 안 극장에서 상영해주어서 코난군은 무척 기뻐하며 감상했다.
내가 디즈니 크루즈를 좋아하는 이유 101 가지 중에서 절반 이상은 바로 이것이다:
엄마가 할 일을 모두 다 해준다!
그래서 디즈니 크루즈는 아이들이 즐거운 여행이기도 하지만, 엄마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먹을 스테이크를 잘라 주는 것은 서버가 해주었고…
흐트러진 침대를 정리하는 것도 룸 서버가 해주었다.
이불과 베개만 정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곰인형도 예쁘게 침대에 놓아주고, 아침이면 침대를 다시 소파로 변신시켜주는 일도 해주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직장 생활을 하고, 반찬가게나 배달 음식이 없는 곳에서 김장을 해먹으며 산다는 것은, 남편이 아무리 빨래를 도맡아 해주고 정원관리와 아이들 숙제를 책임지고 보살펴준다해도, 녹록치 않은 삶이다.
그나마, 아이들이 건강하고 내가 건강하니 지금 수준의 생활을 운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디즈니 크루즈에 타보니, 자고난 침대의 이불과 베개를 가지런히 하는 일도, 헤어 드라이어를 사용한 후에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도, 수건을 빨래해서 말려서 잘 개어서 다시 걸어두는 일도, 여기저기 벗어둔 아이들의 셔츠와 모자를 정리하는 일도, 심지어 세면대와 변기와 욕조를 청소하는 일도 모두 룸 서버가 하루에 두 번씩 해주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만드는 일도 힘들지만, 오늘은 무엇을 해먹나, 무엇을 해먹이나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도 상당히 정신적인 노동이 필요한 일인데 디즈니 크루즈에서는 그 모든 일이 내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남편과 아이들은 그저 끼니마다 엄마보다 훌륭한 솜씨를 가진 요리사가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좋았을 뿐이었겠지만, 나는 한 끼 식사에 식구마다 다른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밥상을 차리기 위한 연구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고, 지지고 볶는 일을 안해도 되어서 좋았고, 먹다가 흘린 것을 치우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고, 다 먹은 후에 설거지를 안해도 되어서 좋았다.
아이들이 키즈클럽에 놀러가 있는 동안에 성인들만 이용하는 (그래서 아주 조용한) 자쿠지에 몸을담그고 빙하를 구경하며 마음껏 릴랙스~ 하고 있자니, 이런 호강을 또 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개같이 돈을 벌어도 불평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