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사온 배추를, 일요일 하루는 크리스마스 장식하느라 바빠서 그냥 놔두고, 월요일에 절여서, 화요일에 버무렸다.
차고 안에서 하룻밤 절인 배추는 소금물에 풍덩 담궈서 절이는 것보다 훨씬 더 숨이 고르게 죽어서 잘 절여졌다.
소금물에 배추를 담그면 배추에서 나오는 물이 소금물의 농도를 묽게 만들어서 절이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골고루 숨이 죽지 않았던 것 같다.
18포기의 배추를 사등분 혹은 이등분해서 자르니 딱 60조각이 되었다.
배추를 절이는 일보다 헹구는 일이 훨씬 더 힘도 들고 시간도 드는 일이었다.
이 날도 바깥에서 헹구고 양념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영하에 가까운 추운 날씨에다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서, 집안에 김치 양념 냄새가 풍기는 것을 감수하고 세탁실에서 일을 했다.
배추 한 포기 당 고춧가루 한 컵 정도로 분량을 잡고, 멸치액젓과 비슷한 맛을 내는 (그러나 구수한맛은 더 좋은 것 같다) 베트남 피쉬소스 한 병을 다 부었다.
찹쌀풀은 끓여서 식혀두고…
양념 재료를 손질했는데, 올해에는 갓이나 파와 무를 썰어서 넣지 않고 모두 갈아서 넣기로 했다.
얼마 전에 이웃의 디군네 엄마가 김치를 담았다며 맛보라고 나누어 주었는데, 무를 채썰지 않고 갈아서 양념을 한 것이 깔끔해 보였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김치를 반찬으로 먹기도 하지만, 찌개를 끓이거나 볶음밥, 부침개 등의 요리로 더 많이 먹는데 그럴 때 마다 부추나 갓, 무채 등의 양념을 털어내고 사용하곤 했었다.
아예 갈아서 양념을 하면 털어내거나 지저분해 보이지 않아서 좋을 것 같았다.
대파를 푸드프로세서에 갈았더니 이렇게 곤죽이 되었다 🙂
마늘도 갈고 생강도 갈고 파도 갈고 갓도 갈고 무도 갈고…. 다 갈았다.
아랫쪽의 분홍색은 무와 새우젓을 함께 갈아서 색이 오묘해진 것이다.
곱게 간 양념과 찹쌀풀을 넣으니 양념이 촉촉해져서 버무리기도 쉬워졌다.
세탁실에 자리잡고 앉아서 두 번 헹구고 꼭 짠 배추에 양념을 바르는 일만 남았다.
배추 60쪽을 두 번씩 짰으니 120번 손목운동을 했고, 그 다음날 까지도 손목과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그래도 일 년 동안 할 고생을 몰아서 한꺼번에 했다고 생각하니 견딜만했다.
손목이 긴 비닐장갑이 김치 양념 바를 때 아주 편리했다.
김치를 버무리고 있자니 남편이 와서 사진을 한 번 찍어주고…
둘리양이 와서 또 한 번 찍어주었다.
배추 포기 사이 빈 공간에는 작은 무를 썰어서 박아두었다.
이렇게 열 여덟 포기 김장을 마치고 우리집 김치 냉장고에 꼭 맞게 채웠다.
김치냉장고에 땅속발효 기능을 선택하니 일주일 정도 발효가 잘 되는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발효가 끝나면 장기 보관 모드로 자동 전환된다.
이제 친한 사람들에게 맛보라고 조금씩 나눠주고, 일년 내내 이 김치로 볶음밥도 해먹고 찌개도 끓이고 라면을 먹을 때 반찬으로 먹을 예정이다.
내년 이맘때 까지는 김치 담을 일 없다 🙂
2020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