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감상한 [힐빌리의 노래, Hillbilly El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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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책으로 먼저 세상에 소개된 [힐빌리의 노래]는 예일대 법대를 졸업한 제이디 밴스가 쓴 자전적 소설이다.

책이 처음 출판된 시기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무렵이어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러스트벨트 지역의 빈곤층 사람들의 생활상과 그들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나도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벼르고만 있다가 수 년이 지나가 버렸는데 오늘 추수감사절 방학이자종강을 맞아 모처럼 넷플릭스를 켰더니 이 책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가 새로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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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 영화에서 남부의 부잣집 철부지 딸로 나왔던 에이미 아담스가 주인공인 밴스의 엄마 역으로 나왔는데, 에이미 아담스는 지난 번에 내가 독후감을 썼던 몸을 긋는 소녀를 영화화 한 작품에서도 주연을 맡았고, 그 밖에도 여러 영화에 출연해서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또 한 명의 인상적인 캐릭터는 밴스의 외할머니였는데 글렌 클로즈 라고 하는 중견 배우가 열연했다.

글렌 클로즈는 30여년 넘는 연기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그 중에 내가 봤고 기억하는 영화는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크루엘라 드 빌 역이다 🙂

 

내가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애팔래치아 지역이기 때문이다.

힐빌리는 애팔래치아 산맥 자락에 사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애팔래치아 산맥은 우리나라 태백산맥 보다 몇 배는 크기 때문에 애팔래치아 지역은 조지아, 테네시, 켄터키, 웨스트 버지니아, 버지니아, 오하이오 등 여러 개의 주에 걸쳐진 큰 지역이다.

버지니아 주 내에서도 내가 사는 지역은 테네시와 웨스트 버지니아 주 경계와 가깝고, 또한 애팔래치아 산맥과도 가깝다.

그래서 우리 학교 안에는 애팔래치안 문화 부전공이 개설되어 있기도 하고 (영문학, 농업, 사회학, 블루그래스 음악, 등을 융합적으로 배운다), 교수나 학생 중에서 힐빌리 출신도 제법 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지어진 외딴 움막 같은 집에 살면서 사냥으로 고기를 마련하고 밀주를 담아 마시고 교육이나 사회문제 등에는 관심없는 자연인에 가까운 사람들…

이 책/영화의 주인공인 제이디 밴스는 그런 배경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대학교도 졸업하고 (학비 마련을 위해 해병대 복무를 했다) 대학원을 명문 예일 대학교 로스쿨로 진학해서 쓰리잡을 뛰어 학비를 마련해서 졸업했다.

어찌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가난한 집안의 고학생이 각고의 노력으로 성공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같지만, 힐빌리의 노래는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 그래서 더욱 높이 평가 받는 책이라고 한다.

제이디의 엄마는 그런 무지하고 가난한 배경을 벗어나려고 열심히 공부했고 간호사라는 어엿한 직업인이 되었지만 – 애팔래치아 사람들 사이에서 자격증을 소지한 간호사라는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무척 대단한 성공이다 – 결국은 그 애팔래치안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미혼모에다 일 년에 한 번 꼴로 남자를 갈아치우고, 그러다가 약물중독에 빠지고 만다.

제이디는 새아빠 중의 한 명이 몰래 키우는 마리화나를 이복형제와 함께 피우다가 점차 청소년 범죄에 가담하게 되고, 비싼 전자계산기를 살 돈이 없어서 학교 수학 시험은 늘 낙제점수를 받았다.

이 집안 사람들은 가족간에 언성을 높여 싸우고 쌍욕을 하는 것이 일상이요, 화가 나면 가족의 몸에 불을 지르거나 몰던 차를 역주행해서 다른 차를 들이받고 죽어버리겠다고 하는 과격한 행동이 일상이다.

술과 담배는 밥과 물보다 더 자주 복용한다.

제이디네 집안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다 그렇게 산다.

저렇게 한심한 사람들이라니… 하고 혀를 차고 멸시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애팔래치안 사람들의 생활상, 즉 문화인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제이디가 여름 인턴쉽 지원자와 그들을 면접할 법률사무소 사람들을 위한 디너 파티에 참석을 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

큰 원탁에 유명 변호사 서너 명이 앉고, 그 사이 사이에 인턴쉽을 지원할 로스쿨 학생들이 끼어 앉아서 식사를 하면서 정식 면접은 아니지만 서로 소개를 하는 자리인데, 제이디는 식탁위에 여러 개놓인 포크 중에서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을 한다.

또한 둥근 테이블에 놓인 물잔과 빵 접시 중에 어떤 것이 자기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맨날 남자를 갈아치우는 엄마 때문에 이남자 저남자의 집으로 이사를 다니다가 마침내 고등학생이 되면서 부터는 구호기금으로 살아가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제이디는 그런 디너 테이블의 매너를 배우고 익힐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식사자리라면 실수로 남의 빵을 먹거나 남의 음료를 마시는 것이 그리 큰 흉은 아니겠지만, 유명 로펌의 면접자리나 다름없는 식사자리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큰 실수이다.

다행히도 친절한 여자친구가 전화통화로 테이블 매너를 급하게 가르쳐주어서 실수는 하지 않았다.

서양식 테이블 매너가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도 좋은 팁이었다 🙂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들면 (오케이 싸인처럼) 왼손은 알파벳 비 가 되고 오른손은 디 가 된다.

비는 브레드, 디는 드링크, 즉 둥그런 테이블에 앉았을 때 어느쪽 음식이 자기 것인지 모르겠다면, 왼쪽에 놓인 빵과 오른쪽에 놓인 음료잔이 내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제이디는 테이블 매너에서 실수를 하고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더욱 심각한 문제와 맞닥뜨렸는데, 누나가 전화를 걸어서 엄마가 다시 약물중독 문제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이다.

예일대학교가 있는 코네티컷 주에서 엄마가 입원한 병원이 있는 곳 – 즉 제이디의 고향인 -오하이오주 까지는 열 시간을 운전해서 가야 하는 거리이다.

밤을 새워 운전을 해서 내려오니 엄마의 상태는 절망적이었다.

병원에서는 더이상 입원을 허락할 수 없으니 무조건 퇴원하라고 하고 엄마의 현재 남편 집으로 갔더니 꼴도 보기 싫다며 옷가지와 살림살이를 2층 창문 밖으로 내던지며 이 동네에서는 흔한 쌍욕을 하는 남편, 삼남매를 키우며 맞벌이 하는 누나네 집에도 갈 수 없고, 제이디는 다음날 오전 10시에 인턴쉽 면접 약속이 잡혀 있다.

겨우 부탁해서 입소할 수 있게 된 요양원에서는 2주일치 입원비를 선납하라고 하는데 제이디의 신용카드는 벌써 한도초과가 되어서 이 카드에서 오십만원, 저 카드에서 백만원, 하는 식으로 쪼개서 지불하는 안쓰러운 모습도 보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ㅠ.ㅠ

엄마가 갑자기 회까닥 돌아서 요양원에는 절대 입원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제이디는 동네 허름한 여관에 엄마를 모셔다놓고 – 그 와중에도 화장실에 숨어서 주삿바늘을 꽂으려는 엄마, 말리는 아들, 그 와중에 몸싸움과 쌍욕 배틀, 아주 대환장파티가 벌어졌다 – 마침내 신발가게 점원 일을 마친 누나가 와주어서 엄마를 인수인계 해놓고 다시 밤을 새워 운전을 해서 코네티컷으로 돌아와 무사히 면접을 본다.

 

이 영화의 결말은 나름대로 해피엔딩이다.

제이디는 친절하고 이해심 많은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자녀를 두었으며, 가족들과 가까이 살기 위해 오하이오로 이사를 했다.

누나도 결혼생활을 23년째 잘 하고 있으니, 해마다 남편을 갈아치우던 엄마의 삶을 물려받지는 않았다.

엄마는 6년째 마약을 사용하지 않고 맨정신으로 살고 있다는 등의 근황이 영화의 마지막에 나온다.

하지만, 애팔래치아 사람들의 삶은 폭행죄를 처벌하거나 마약을 단속하거나 하는 식으로는 변화가 생기지 않을거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또한, 바깥에서 보면 한심하고 저급한 인생으로 보이겠지만, 그 폭력과 무지가 난무하는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그러나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사람도 있고, 쌍욕을 퍼붓는 것이 깊은 사랑의 표현방식이고, 가족간의 우애와, 알지도 못하는 죽은자에 대해 예의를 표하는… 그들 나름의 문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영화는 사람들을 계몽하고 있다.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어서 기쁘다.

 

 

2020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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