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에서 코로나 예방접종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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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이라 부르는 곳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데다, 한국을 그리워하며 누릴 수 있는 한국 관련 서비스 조차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짜장면 한 그릇을 (배달은 고사하고) 사먹으려 하거나 양념 치킨을 먹고 싶어도 무려 네 시간을 운전해서 가야 하는 이 동네가 마치 지구에서 명왕성처럼 먼 거리로 여겨져서 붙인 별명이다.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은 버지니아 주에 산다고 하면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와 가깝고 한인 교포나 주재원이 많이 모여사는 북쪽 도시를 생각하지만, 내가 사는 명왕성은 거기에서 남서쪽으로 네 시간 운전해서 가야하는 곳, 뉴 리버 벨리 지역이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는 옛 노랫말 처럼, 명왕성에서 16년째 살다보니, 그깟 짜장면이나 치킨은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어서 이젠 한인타운이 많이 그립지 않다.

명왕성에도 코로나19 예방주사가 왔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예방접종 대상을 몇 개의 범주로 구분해서 순위를 구분했다. 1A, 1B, 1C, 2… 의 순으로 정했는데 가장 우선 순위인 1A 는 코로나19 환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의료직 종사자와 장기 요양원 직원 등이다. 1B 는 만 75세 이상인 사람과, 프론트라인 직군, 즉 무작위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경찰관, 소방공무원, 마트 직원 등이 해당하고, 초중고 교사와 직원도 이 범주에 속한다. 대학 교수와 직원은 그 다음 순위인 1C 그룹에 속하는데, 여기에는 기타 주요직군 (Essential Worker)도 포함된다. 또한 75세 미만의 나이이지만 기저질환이 있어서 각별한 건강관리가 필요한 사람들도 포함된다. 2 그룹은 16세 이상 모든 사람이다.

미국 질변관리본부 코로나19 예방접종 관련 웹페이지

작년 연말부터 1A 그룹을 대상으로 접종이 시작되었고, 어떤 회사의 백신이 더 안전하냐,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하느냐, 등등의 논란이 많았다. 나는 어차피 내 순번이 돌아오려면 몇 달은 기다려야 하니, 백신의 안정성에 대해 호들갑을 떨 필요없이 그냥 먼저 맞은 사람들을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 1B 그룹의 접종이 시작되면서부터 백신의 효과와 안정성에 관한 헛소문이 더욱 무성해지고, 또 접종 대상에 관한 설왕설래도 시끄러워졌다. 그 혼란을 틈타서 자기 차례가 아니지만 서류를 허위작성해서 새치기 접종을 받는 사람도 생기고, 접종 부작용이 아니라 다른 일로 사망한 사례를 마치 코로나 예방접종이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도 생겼다. 심지어는 예방주사를 맞는 순간 사람 몸안에 무슨 칩이 들어가서 유전자 변형을 만들고, 빌 게이츠가 어쩌구 저쩌구… 정말 듣기만해도 한심한 뜬소문이 떠돌아서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요즘은 백신의 종류를 놓고 저런 한심한 소문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 여전히 짜증이 난다.

위의 페이지에서 내가 사는 곳에서 접종을 받을 수 있는 사이트를 검색할 수 있다.

1B 그룹 접종 시기 부터는 미국의 각 주와 지자체마다 조금씩 유동성있게 접종 대상을 늘려가고 있었는데, 우리 학교가 있는 래드포드 시티는 보유한 약이 넉넉해서 만 65세 이상의 사람들까지도 1B그룹으로 간주하고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게 했다. 초중고 교사가 모두 접종을 마친 후에는 반일 수업에서 종일 수업으로 스케줄을 늘이기도 했다. (아직 16세 이하 아이들은 접종 대상조차 아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종일 수업도 집에서 온라인으로 참석하는 옵션을 선택했다.) 특별한 냉동 시설이 필요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다 맞히지 못하고 남은 약을 버려야 하니, 대기자 명단을 두고 남는 약이 있을 때는 해당 대상이 아니어도 주사를 맞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버지니아주 보건국의 웹페이지

우리 학교는 뉴리버벨리 보건국과 협조해서 학교 시설을 접종 장소로 제공하는 등의 편의를 제공했고, 그 덕분인지 교수와 직원들이 아직 1C 그룹 접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백신의 물량이 한정되어 있으니, 교직원의 가족들은 아직 대상이 아님을 명시해두었다. 3월의 마지막주 화수목요일 중에 원하는 날로 예약을 하라고 하는데, 수요일 저녁 수업이 있어서 혹시나 접종 후 부작용으로 아파서 수업에 지장이 있을까봐 목요일로 예약을 했다.

래드포드 대학교의 실내 체육관이 예방접종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집에서 미리 작성해간 문진서류를 내고 (앨러지 반응이 있는지, 다른 질환으로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는지, 등등을 묻는다), 신분증과 교직원증을 확인한 다음 줄을 섰다. 학교 체육관을 접종 시설로 사용하고 있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과 주사를 맞는 장소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원봉사자들이 색깔이 다른 푯말을 들어 서로 신호를 주고 받아, 어떤 주사를 어디에서 맞을지를 알려주었다. 2차 접종의 경우에는 1차에 맞았던 것과 같은 것을 접종받지만, 1차 접종은 화이자, 모더나, 존슨앤존슨 중에서 무작위로 맞게 되었다. 특정 회사의 약을 고집해서 접종을 거부하면 다음 접종 예약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안내를 미리 받기도 했었다. 음식점에 가서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주문하는 일이 아니고, 나 자신의 개인 목숨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게다가 모든 접종제는 미국 보건국에서 안전성을 승인받았으니) 지체말고 주는대로 주사를 맞으라는 뜻이다.

어떤 회사의 접종 주사를 언제 맞았는지를 기록하는 접종카드이다.

나는 무작위 예방주사 뽑기에서 화이자가 당첨되었다. 연필심 보다도 가느다란 주삿바늘이 팔뚝에 꽂히는 시간도 찰나의 순간처럼 짧았다. 주사를 맞은 이후 급작스런 앨러지 반응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15분 동안 대기하는 곳에 앉아서 기다렸다가 나와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30분도 안걸려서 끝났다. 주사를 맞은 이후 빠르면 6시간 늦으면 12시간 이후부터 몸에서 항체를 만드느라 열이 나거나 근육통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데, 혹시라도 심각한 이상 반응이 나타날지도 모르니 V-Safe 라는 앱을 다운로드 받아서 부작용을 보고하라는 권고가 있었다. 하지만 매일 괜찮은지를 물어보는 메세지가 2주일 동안 오는 것이 귀찮고, 또 별로 부작용이 심하지 않아서 앱을 설치하지 않았다. 나에게 나타난 부작용은 작년 가을에 맞았던 독감예방주사 보다도 훨씬 수월했는데, 약간의 피로감과 이틀 정도 주사 맞은 팔뚝이 뻐근하게 아팠던 것이 전부였다. 듣자하니 1차 보다도 2차 접종 이후에 근육통 관절통 등의 부작용이 훨씬 더 심하다고 한다. 2차 접종은 4월 29일로 정해졌는데, 마침 학기 말이라서 부작용이 심해도 일에 쫓기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어서 잘 되었다.

버지니아 주지사가 일을 열심히 잘 하고 있는지, 4월 18일 부터는 그룹 2, 즉 16세 이상 모든 사람들이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해서 남편도 예약을 해두었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은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살고 있는 주의 주지사와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일을 잘 하는지에 따라서 마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 같은 혜택 혹은 불이익을 받게 된다. 버지니아 주지사는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의사 출신이고 바이든 대통령과 같은 민주당 소속 인사라서, 코로나19 방역을 열심히 잘 하고 있는 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주지사로 있는 주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도 않고 그래서 날마자 확진자가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으니,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것도 참 다행스런 일이다.

예방접종을 마친 후에도 여전히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증세는 가볍게 넘어간다고 함)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으며 조심해야 한다. 얼마전 미국 질병관리본부에서 12-16세 연령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예방접종의 안정성 실험을 마쳤다는 발표가 있었다. 아마도 이번 여름 동안에 접종 대상 연령을 12세까지 낮추지 않을까 짐작한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코난군은 12세 이상의 연령이니 예방주사를 맞게 할 생각이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학년이 시작될 때는 코로나19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란다.

2021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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