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University of Virginia (줄여서 UVA 라고 부르는, 버지니아 주 안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가는 주립대이다) 가 있고, 그 학교 교육학과에 밥 피안타 (Bob Pianta) 교수가 있다. 피안타 교수는 유아교육에 있어서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물리적 심리적 환경의 우수성을 측정하는 도구를 개발하는 일을 열심히 해왔다.
내가 박사 논문을 쓸 때는 그의 작품 중에서 ECERS-R 이라는 도구를 많이 활용했는데,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도구인 CLASS 라는 것이 피안타 교수의 연구실에서 제작되어 이제는 미국 전역에서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내가 실습지도를 많이 하는 헤드스타트 교실에서도 프로그램의 수준 관리를 위해서 정기적으로 CLASS 관찰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 강의 시간에도 그 관찰 도구에 관해서 가르치고 있다. CLASS 는 이전의 ECERS-R 에 비하면 교사의 역량에 더욱 무게를 두고 관찰하고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내가 상임이사로 있는 래드포드 어린이집에서도 전미유아교육협회 인증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CLASS 관찰을 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관찰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격증을 받은 사람이 관찰한 결과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래드포드 어린이집의 원장과 부원장이 CLASS 관찰자 자격 시험을 보았는데 원장은 합격했지만 부원장이 불합격하는 바람에 10개가 넘는 학급을 모두 다 관찰할 수가 없게 되었다. 원장이 합격한 자격증은 아주 어린 아기들 반만 관찰할 수 있어서, 만 3-5세 아이들의 교실을 관찰해줄 사람이 필요해진 것이다. 상임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의논한 끝에, 나와 두어명의 지원자가 이번 여름 방학 동안에 연수를 받고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여름학기 강의가 끝나자마자 이틀간의 연수가 시작되었다. 온라인이기는 하지만 실시간으로 강사를 만나서 즉석에서 연습문제를 풀어가면서 연수를 받는데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점심 한 시간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꼬박 앉아있어야 했다. 열 두어명 쯤 되는 연수생들은 현직 어린이집 교사도 있었고, 초등학교 교장 교감도 있었고, 나와 같은 상임이사회 멤버인 벨린다는 보험사무실을 운영하는 다소 뜻밖의 직업을 가졌다. (ㅎㅎㅎ 그녀는 래드포드 어린이집의 학부모인 인연으로 상임이사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각자 간략한 소개를 하는데, 내 직업을 말하고나니 금새 걱정이 시작되었다. 명색이 유아교육 교수인데다 심지어 이 관찰 도구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강의까지 하고 있다는 사람이 만약에 자격증 시험에서 불합격을 한다면 그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이틀간의 연수만 참석한다고 해서 합격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고, 총점 80점 이상을 얻지 못하면 불합격, 재시험은 두 번까지만 허용되고, 세 번째 불합격이 되면 아예 다음 시험 응시 자격이 일 년간 정지된다고 한다. 연수 중간에 시험삼아 해보는 테스트에서 어떨 때는 80점이 넘게 나오지만 어떨 때는 70점을 받을 때도 있어서, 과연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연수를 마치면서, 가급적이면 배운 것을 잊어버리기 전 2주 안에 첫 시험에 응시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연수는 수요일과 목요일이었는데, 두뇌를 풀 가동해서 너무 피곤했던지라 금요일부터 주말 동안은 휴식이 필요했고, 월요일은 아이들 승마 레슨 라이드를 핑계로 시험을 미루었다. 그리고 오늘 화요일 늦은 오후에 시험을 시작했다.
시험의 내용은 배운 것을 외우거나 응용하는 것이 전혀 아니어서, 감독도 따로 필요없고 시간 제한도 없이 수시로 온라인으로 접속해서 시험을 볼 수 있고, 중간에 내가 원하는 대로 휴식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유치원 교실의 수업 장면을 기록한 비디오를 보고, 관찰 도구를 이용해서 그 교실의 환경을 평가하는데, 그 평가 결과가 정답과 일치하는 확율이 80퍼센트가 넘어야 하고, 총 다섯 개의 비디오를 보고 평가를 해야 한다. 게다가 총점의 평균이 80점이 넘는다 하더라도, 특정 항목에서 세 번 이상 정답과 일치하는 평가를 하지 못하면 불합격이 된다.
달달 외운 것을 기억해내서 맞는 답을 고르는 시험이라면 별로 어렵지 않겠지만, 이 시험의 방식은 준비를 하기가 까다로웠다. 저 교사가 지금 아이들과 공감하면서 가르치고 있는지, 자기만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하고, 지금 가르치는 개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수 중에 모의 평가를 해보니 각 사람마다 판단 기준이 달라서 자칫 잘못하면 정답에서 멀리 떨어진 평가를 내릴 확율이 20퍼센트 보다 훨씬 높았다.
오후에 시작해서 비디오 두 개를 평가하고, 잠시 쉬면서 아이들 저녁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면서 머리를 식힌 다음 나머지 비디오 세 개를 더 평가하고 시험을 마쳤다. 온라인으로 비디오를 보면서 평가 점수를 입력하는데 중간에는 점수를 보여주지 않고 마지막 다섯 번째 비디오 평가를 마치니 바로 총점과 합격 여부가 나왔다.
합격!!!!!!
이제 공식적으로 인증받은 관찰자가 되었다는 기쁨 보다도, 같은 시험을 다시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고, 시험에 떨어져서 챙피당할 일이 없어졌다는 기쁨이 아주 컸다 🙂 여름 방학 동안에 보람있는 일 하나를 더 이루어서 기쁘기도 하다.
2021년 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