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엄마는 이사를 반대하시던 주주 할머니가 프랑스로 가신 이후 이사를 결심했다. 산골동네 치고는 우리 마을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서 좋은 값에 마음에 드는 집을 사는 일이 쉽지 않은데, 다행히도 주주 엄마는 좋은 값에 좋은 집을 샀고 최근에 이사를 마쳤다. 전에 살던 집에 비해 크고 새 집인데다 고속도로와 가까운 위치여서 계속 살기에도 좋고, 만약에 다시 판다고 해도 좋은 투자가 될 것 같아보였다. 재테크를 잘 하는 주주 엄마는 이전 집을 아직 팔지 않고 세를 주면서 기다리다가 우리 동네에 마음에 드는 집이 나오면 그걸 구입하고 헌 집을 팔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주주가 2년 후에는 중학생이 되니까 우리 동네에 집을 사면 중학교 고등학교를 걸어서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를 기념하기 위해 주주의 아빠와 우리 가족 모두를 초대해서 집들이를 했다. 주주의 엄마와 아빠는 주주가 아주 어렸을 때 이혼을 했지만,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공동으로 양육권을 행사하며 자주 왕래하고 있다. 어찌보면 한 집에 살면서 불화로 고통받는 것보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따로 살면서 필요할 때는 서로 돕고 친구처럼 잘 지내는 모습이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주 엄마가 원래 손이 크고 뭘 하든 했다하면 제대로 거하게 하는 스타일인 줄은 이미 알고 있지만, 집들이 음식을 누구네 환갑잔칫상 차리듯 거하게 차렸을 줄은 몰랐다 🙂 나는 보통 손님 초대를 하면 한 두 가지 메인 요리를 만들고, 전채요리와 사이드 메뉴 한 두 개, 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후식이나 특별한 음료(식혜 등)를 준비하는데, 그 정도만 차려도 우리집에 오는 손님들은 모두들 내게 수고했다며 감사하게 먹고 간다. 그런데 주주 엄마가 차린 이 날 저녁 밥상은 마치 중국요릿집에 간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였다. 물론, 그래서 무척 행복했다 ㅎㅎㅎ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전자렌지에서, 에어프라이어에서, 오븐에서, 자꾸만 음식이 더 나왔다. 중국 이름이라 다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고기요리, 채소요리, 볶은 것, 튀긴 것, 조린 것, 찐 것, 무친 것 등등 아주 다양했다. 어떤 것은 쓰촨요리였고 또 어떤 것은 중국 북부 지방의 요리라고도 했다. 나라가 넓으니 음식도 다양하게 발달한 것 같다.
아빠들은 와인과 맥주를 마셨고 술을 못마시는 나는 물잔으로 건배를 했다. 음식 하나 하나가 모두 맛있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해서 먹었다. 그러고보니 코로나19 이후로 중국식 뷔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없다. 언제 다시 이렇게 여러 가지 음식을 입맛대로 골라 먹는 뷔페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집들이 선물로 무엇을 살까 많이 고민하다가 화장지와 세제를 샀다. 둘리양에게 늘 친절하게 잘해주는 주주 엄마를 생각하면 값비싼 선물을 하고 싶었지만, 살림살이를 다 갖추고 사는 주주 엄마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겠고, 장식품은 집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부담없이 써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자, 한국 문화를 소개할 수도 있는 것으로 고른 것이다. 화장지처럼 술술 잘 풀리고 세제 거품처럼 재산이 불어나라고 한국사람들은 집들이 선물로 이런 걸 준다고 말해주니 무척 재미있어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고양이털 알러지가 있는 코난군을 먼저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계속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며 놀았다. 주주 엄마는 오래도록 키우던 고양이를 재작년에 떠나보내고, 얼마후에 고양이 두 마리를 유기묘 센터에서 데려왔다. 두 마리가 형제는 아닌데 함께 구출된 이후 서로에게 애착이 형성되어서 함께 입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코난군은 알러지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쓰다듬어주며 함께 놀기를 좋아했지만, 이전에 친구네 집에서 그렇게 고양이와 한나절을 놀고 온 후 며칠 내내 코가 막혀 고생을 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 날 집들이에 코난군을 데리고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코난군이 주주네 집에서 주는 저녁밥이 틀림없이 맛있을거라며, 그걸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함께 와서 밥만 먹고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한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즐거운 저녁 식사였다.
2022년 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