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금요일부터 벌써 일요일에 눈이 많이 내릴것이니 대비를 하라는 예보가 있었다. 눈만 많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얼음비와 눈이 번갈아 내리는데다 기온이 며칠 내내 영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강풍까지 불어서 정전의 위험이 있고 운전도 위험하다는 소식이 날씨 앱에서 계속해서 떴다. 다행히도 눈이 내린 다음날인 월요일은 마틴루터킹 공휴일이어서 어차피 우리 가족 모두는 등교나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화요일에도 계속 날씨가 나빠서 휴교령이 내리거나 출근을 못할 상황이 될 것을 대비해서 주말 전에 퇴근하면서 필요한 일거리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또한, 자동차에도 연료를 가득 채워놓고, 비상시에 가동할 발전기에 넣을 휘발유도 사두었다. 며칠간 먹을 양식도 마련해두었다.

일요일인 오늘 아침부터 하루종일 눈과 얼음비가 내렸다. 눈오는 풍경이 이제는 더이상 새롭지도 즐겁지도 않아서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동네 주민들이 눈풍경 사진을 잘 찍어서 올려둔 것을 감상하니 편리하다 ㅎㅎㅎ 이렇게 춥고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운 날에는 집안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것이 상책이지만, 남편은 겨울 산책을 하고 싶었는지, 필요한 것이 별로 없는데도 걸어서 식료품점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살 것을 적어주었는데, 잠시 후에 전화가 왔다. 쇼핑리스트를 두고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의 전화를 받을 때 나의 상황은 문자로 남편에게 쇼핑 리스트를 다시 써주기가 어려웠다. 김장 김치를 꺼내서 썰고, 한 개에 1달러 하는 파인애플 네 개를 산 것을 썰어서 통에 담아놓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의 사진과 아래 사진을 한 손으로 찍어서 문자 대신에 보내주었다.

요즘 코난군은 어쩐지 입맛을 잃어서 먹는 일이 신통치가 않다. 키는 자라는데 몸무게는 오히려 줄어들기까지 했다. 코난군 자신은 슬림한 몸매가 만족스러운지 살이 빠졌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지만, 엄마인 나는 어떻게 하면 코난군이 밥을 잘 먹게 될까 고민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정성 가득한 팬케익을 구워주었다. 평소에는 시판 믹스 가루를 사다가 구워주지만, 오늘은 밀가루에 베이킹 파우더와 버터, 계란, 우유를 계량해서 넣고 구웠다. (사실은 믹스 가루가 다 떨어져서…) 점심에는 코난군이 좋아하는 멕시칸 요리를 해주었는데, 그것도 사진 찍는 것을 잊어버려서 글로만 적는다. 핀토빈을 직접 압력솥에 삶아서 으깨서 볶아 만드니 통조림으로 사먹던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코난군은 아침에 팬케익을 두세 개 먹었고 점심도 타코 쌈을 서너 개 만들어서 잘 먹었다.

지난 금요일에 아트 선생님이 멸치 견과류 볶음 반찬을 많이 만들었다며 내게 나누어 주었는데, 멕시칸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둘리양에게 멸치 볶음을 넣은 삼각김밥을 만들어주니 아주 잘 먹는다.

요며칠간 저녁 메뉴는 스시 스타일의 김밥이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단무지와 햄과 계란과 기타등등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한국식 김밥이 아니고, 미국의 일식집에 가면 파는, 김밥 한 줄에 재료가 한 가지 들어가는 무척 단촐한 김밥이다. 입맛이 없다며 번번이 끼니를 거르던 코난군이 아보카도만 넣고 만든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미국-일본식 단촐 김밥을 만들어주니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사실은 단촐 김밥은 만들기가 수월해서 나도 좋다. 한국식 김밥을 만들려면, 당근을 채썰어 볶고, 계란을 얇게 부치고, 단무지와 게맛살과 햄이나 어묵도 알맞은 크기로 썰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서 시금치를 무쳐서 넣기도 하는 등 품이 보통 많이 드는 요리가 아니다. 그런데 단촐김밥은, 아보카도 넣고 한 줄, 게맛살만 넣고 한 줄, 그런 식으로 만드니까 시간이 덜 들고, 힘도 덜 들어서 김을 안에 넣고 밥이 겉으로 나오는 누드 김밥도 만들어보고, 꽃잎 모양 김밥도 만들어보는 등 즐기면서 요리를 할 수 있다.





비록 단촐하게 만든 김밥이지만, 고급 일식집 기분을 내라고 일본 음악도 틀어놓고 예쁜 접시에 예쁘게 담아서 차려주었다. 눈이 많이 오는 주말이라 달리 나가서 할 일도 없고, 이런 것도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하니 즐거웠다.

2022년 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