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에서 온 커피

르완다에서 온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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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언어를 잘 모르겠지만 커피 봉지에는 독일어가 적혀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지난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월 중순 개강을 앞둔 주말에 식재료를 사려고 알디 마트에 갔다. 입구와 가까운 채소 코너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뒤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이거 살까?” “아니야 이게 더 나아” 하는 등의 대화로 미루어 한국인들끼리 장을 보러 온 것이었다. 버지니아 공대에 한국인 교포나 유학생이 많으니 개강을 목전에 둔 시점에 마트에서 한국인을 마주치는 것은 별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코너를 돌며 슬쩍 보니 내 또래로 보이는 엄마와 대학생인듯한 딸 둘, 그렇게 세 명의 여자가 카트를 밀면서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나머지 통로를 돌면서 필요한 것을 내 카트에 담고 마지막으로 우유와 계란이 있는 신선식품 코너로 갔는데 거기에서 어떤 아저씨가 내게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혹시 한국분이세요?” 하고 물었던 것 같다. 이 마을에 오래 산 한국인들은 나처럼 마트에서 다른 한국인을 마주쳐도 아는 사람이 아니면 못본척 지나쳐가는 것이 일상인데, 새삼스레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는 것이 신기하고 약간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스캔을 잘 했기 때문이다 🙂

내가 한국인이 맞다고 한국어로 대답을 하니, 그 아저씨, 멀리 있는 가족들을 불렀다. “여보, 얘들아, 이리와봐. 여기 한국분이 계셔! 와서 인사해!” ㅎㅎㅎ 얼떨결에 일가족과 인사를 하고보니 아까 채소 코너에서 봤던 세 모녀와 아저씨가 한 가족이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어디 사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고 또 얼떨결에 묻는 말에 대답을 다 했더니 아까보다 더한 반응을 보이며 “아이고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이 먼나라까지 와서 그런 훌륭한 직업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하는 등의 감탄을 계속해서 했다. 듣고 있기가 민망하기도 했고, 가족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우리 동네에 처음 와보는 듯한 초보 유학생 가족인 것 같아서 이야기의 주제를 돌릴 겸, 내가 질문을 했다. 이 동네에 처음 오셨느냐, 버지니아공대에 입학한 학생이냐, 등등의 역공(?ㅎㅎㅎ)을 했다.

넓지도 않은 알디 마트의 통로에서 카트를 앞에 두고 꽤나 긴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 가족은, 부모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 르완다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큰 딸은 미국 워싱턴주 씨애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둘째 딸이 버지니아 공대에 작년에 입학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르완다에서 원격수업을 받다가 대면 수업이 시작되어서 캠퍼스에는 올해 처음으로 왔다고 한다. 둘째 딸의 입학을 도우려고 씨애틀과 르완다에서 온가족이 와서 학교 근처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내일이면 헤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한국음식을 한 끼 해먹이려고 마트에 왔다고 했다. 미국 마트에 와보는 것이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라 어디에서 무얼 사야할지 몰랐는데 세 모녀는 내가 한국인인 것을 눈치채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가 사는 물건을 따라 샀다고도 했다 🙂 파, 마늘, 등등의 한국음식 재료를 미국 마트에서 발견하고 골라서 구입하는 것이 처음 온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두 딸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내게 딱 뵙는 순간에 인상이 좋아서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아봤다, 그런데 이 동네에 한국인 교수님들이 그렇게나 많다니 다들 대단하고 자랑스럽다는 등의 듣기에 민망한 말을 했고, 또 르완다에서는 한국인이 많지 않아서 이렇게 우연히 한국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말이 많지 않은 어머니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고 있었는데, 나는 나대로 그 엄마의 심정에 빙의가 되어서, 막내 아이를 혼자 두고 다시 머나먼 길을 떠나자면 걱정이 많겠다,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이 동네가 살기에 조용하고 안전하다, 한국인 커뮤니티도 있어서 도움을 주고 받을 수도 있다는 등의 말을 해주었다. 한인교회에서 대학부를 오래도록 지도해온 이*정 교수님에 대해 말해주기도 했고, 또 정말 응급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고 둘째 딸과 전화번호를 교환하기도 했다. 살면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알 기회가 많지 않았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날 기회도 드물었는데 르완다에 사는 한국인 일가족을 만난 것이 내게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 후로 개강을 하고 두어번쯤 둘째딸과 문자를 주고 받은 적이 있다. 개강은 잘 했느냐, 지내는데 어려움은 없느냐, 하는 정도의 안부였다. 그리고 추수감사절 방학을 맞아 김장을 한 다음에 다시 오랜만에 연락을 해서 김장김치와 직접 빚은 만두를 나누어 주었다. 둘째 딸은 추수감사절 방학 동안에는 씨애틀 언니에게 다녀왔고, 종강을 하면 겨울방학 동안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간다고 했다. 아마도 코로나19 때문에 르완다에서의 사업을 잠시 접고 부모님이 한국에 가있는 것 같았다. 언니와 부모님과 긴밀하게 자주 연락을 하고 사는지, 직접 담은 김장김치와 직접 만든 만두를 나누어 준 것에 대해 아주 많이 고맙다는 가족의 말을 내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겨울 방학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둘째딸이 르완다에서 온 커피를 선물했다.

검색을 해보니 르완다에서는 자기들의 언어인 키냐르완다어를 사용하고, 프랑스어, 스와힐리어, 영어가 다음으로 많이 쓰인다고 하는데 어쩐지 커피 봉지에는 독일어가 적혀있다.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커피라고 하는데 아마도 공정무역 관련한 단체가 독일에 있어서 그런가 짐작한다. 커피 이름을 검색해보니 홈페이지와 동영상이 나오는데 르완다 여성들이 재배, 수확, 로스팅해서 판매하는 커피라고 한다. 날 커피콩을 파는 것보다 그렇게 직접 가공해서 팔면 르완다 현지에 더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있어서 가난한 여성들에게 자립의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르완다 커피를 마셔본 적은 없지만 그 이웃인 에티오피아 품종의 커피는 마셔본 적이 있으니 비슷한 맛이지 않을까? 하고 남편이 짐작했다.

2022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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