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9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미드 굿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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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새 회차가 올라오는대로 챙겨보던 미국 드라마 두 편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음 시즌을 준비하며 종영을 한 상태이다. 엄마와 함께 드라마 보면서 수다하기를 좋아하는 둘리양이 대안으로 제시한 드라마가 있는데 그게 바로 굿 닥터 이다. 방학이라 시간도 많고, 드라마가 재미있기도 해서 둘리양과 나는 하루에 최소한 한 편이상 보고 있다. OTT 서비스를 제공하는 훌루 에서는 40분짜리 드라마 한 편 동안에 1-2분짜리 광고를 대여섯 번 넣었기 때문에 (물론, 돈을 더 내면 광고없이 드라마를 볼 수 있다) 드라마 중간 광고 시간에는 팝콘을 튀겨와서 먹거나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아니면 드라마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토론할 수도 있어서 오히려 좋다. 14세 이상 시청을 권고하는 드라마라서 가끔 어른들의 육체적 사랑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따로 정색하고 “교육” 할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둘리양과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미드 굿 닥터의 포스터

한편, 요즘 아줌마들 사이트에서 한국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해 좋은 평이 많은 것을 보았다. 일단은 이상한 검사 우병우가 떠올라서 시청도 하기 전부터 거부감이 들었고 (드라마 내에서 주인공 우영우가 하는 대사가 우병우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한 듯 똑같다 “내 이름은 우영우/우병우.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우병우”), 자폐증과 동시에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주인공이 전문직에 종사한다는 설정이 굿닥터와 많이 겹쳐 보여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 포스터

그런데 문제는, 둘리양은 굿 닥터 드라마를 반드시 엄마와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쓴대로 드라마를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드라마 시청 자체보다 어쩌면 더 중요하게 여겨서 그런 것이다. 가끔은 나는 시간이 남아서 드라마를 보고 싶은데 둘리양은 피아노 연습을 하거나 수학 공부를 해야 해서 내가 참아야 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시간이 생겨서 꿩대신 닭으로 우영우 드라마를 대신 보게 되었다. 역시나 인터넷 게시물과 댓글로 짐작한 것처럼,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변호사가 초능력에 가까운 기억력과 암기력을 발휘해서 의뢰인의 소송을 승리로 이끈다는 내용이었다. 자폐증이 있지만 의학서적의 모든 내용과 그림을 줄줄 외우고, 환자의 몸안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능력이 있는 숀 머피가 좌충우돌 하면서 환자를 살린다는 굿 닥터의 내용과 모든 면에서 비슷했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특이한 발성과 손동작 몸짓 같은 것도 두 드라마의 주인공이 열심히 연습하고 연기해서 아주 비슷해 보인다.

그렇다고 우영우 드라마가 미국에서 완전 성공작으로 시즌 6까지 제작하고 있는 굿 닥터 드라마를 흉내낸 것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굿 닥터 라는 드라마가 원래는 한국 드라마였던 것을 판권을 사서 미국을 배경으로 다시 제작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영우 드라마가 흉내를 냈다고 하면 한국드라마 굿 닥터를 따라했다고 볼 수 있겠다.

한국 드라마 굿 닥터의 포스터 – 나는 이 드라마는 아직 시청하지 못했다

원조와 표절에 관한 논란도 요즘 아줌마 사이트에서 자주 보인다. 작곡가이자 가수인 (이걸 영어로는 싱어송라이터 라고 하는데, singer-songwriter 라고 쓴다. “노래 하나 불러봐 라이터야 Sing a song, Lighter” 라고 발음하면 안되고, 가수-작곡가 라는 뜻으로 “싱어-송롸이러” 라고 발음하는 것이 맞다.) 유희열이 쓴 노래 여러 곡이 누군가의 곡을 베낀 것이라고 한다. 논란이 되는 노래들을 직접 들어보지 않았고, 유희열이나 원곡의 작곡자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으니 누가 원조이고 누가 표절인지, 또는 표절인지 아닌지에 대해 내가 할 말은 없다. 이기적이고 방관자적 자세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저 내 귀에 듣기 좋은 노래를 들으면 그만이고, 변호사든 의사든,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내게 재미를 주는 드라마를 시청하면 만족할 따름이다.

한국 영화 클래식의 주제곡으로 쓰인 노래 [나에게 넌, 너에게 난] https://youtu.be/5ysdHjaeGGU

미국 밴드 Fastball이 만들어 부른 노래 [Out Of My Head] https://youtu.be/6uEJXodcME0?t=15

위의 두 노래도 내 귀에는 무척 비슷하게 들린다. 악기의 편성이 비슷하고 (드럼과 전기기타와 통기타를 연주하고 심지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젊은 남자들인 것도 똑같다), 화음의 배열과 리듬도 아주 비슷하다. 미국 노래는 1998년에 만들어졌고 한국 노래는 2003년 제작된 영화 주제곡이었으니, 만약에 표절이 있었다면 미국 노래가 원조이고 한국 노래가 따라만든 것일게다. 하지만 그건 각 노래의 저작권을 가진 사람/회사들이 따질 문제이고, 나는 그저 두 노래가 모두 듣기 좋다. 소박한 악기 편성과 편안한 화음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느낌이다.

다시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와서 🙂 미드 굿 닥터의 주인공 숀 머피는 외과 수술 전문의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서 (그게 바로 자폐증의 주요 증상이다) 환자나 동료들에게 좋은 말로 포장해서 소통할 줄을 모르고, 그러다보니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큰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다 잘 될겁니다” 하고 격려하거나 환자 가족들에게 “너무 걱정 마세요” 하는 등의 말은 커녕, “당신은 오늘 이 수술을 받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라거나 환자 가족에게 “환자가 아픈 것은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하는 식으로 직설적인 말만 한다. 그런 약점을 덮을 수 있을 만큼 초능력에 가까운 실력으로 정확한 진단을 내리거나 획기적인 수술법을 생각해내기 때문에 의사 노릇을 성공적으로 잘 하고 있다. 또한 동료들이 함께 경쟁도 하지만 돕기도 해서 서로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가기도 한다.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위치한 병원이어서 환자나 의사 간호사의 인종이 다양하다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프레디 하이모어는 어렸을 때 찰리와 초코렛 공장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이다. 원래는 아동 소설이었던 것을 1971년에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걸 2005년에 팀 버튼 감독이 다시 한 번 영화로 만들었다. 팀 버튼 감독의 작품이 대체로 몽환적이고 색감이 화려한데, 2005년작 찰리와 초코렛 공장 영화도 신기하다! 하는 느낌이 드는 재미있는 영화라서 코난군이 어렸을 때 여러 번 함께 본 적이 있다. 가난한 집의 착한 어린이가 초코렛 공장 견학 티켓을 운좋게 손에 넣고, 공장 견학을 가고, 결국 공장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귀여운 꼬마가 굿 닥터가 된다 🙂

프레디 하이모어는 원래 영국인이어서 굿 닥터 드라마에서는 미국식 영어를 자폐증 톤으로 말하지만, 다른 매체에서 인터뷰를 한 영상을 보면 영국 액센트가 아주 강하다. 동료 의사인 클레어 브라운도 드라마 내에서는 미국 영어를 잘도 말하지만, 인터뷰에서는 아주 심한 영국 영어를 말한다. 드라마 속의 배경은 샌프란시스코와 가까운 도시인 산 호세 (미국식으로는 새너제이 라고 발음한다 ㅎㅎㅎ) 이지만 실제 촬영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했다고 한다.

우영우 변호사도 동료들과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한국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직접 보니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다. 고래를 아름답게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서 보여주는 장면도 좋았다. 다만, 이런 드라마만으로 자폐증을 접하는 사람들이 자폐증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하는 우려가 있다. 자폐 스펙트럼은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빨주노초파남보 다른색으로 보이는 것처럼 사람마다 증세가 완연히 다르기 때문에, 모든 자폐증 환자가 다 굿 닥터나 우영우 변호사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오히려, 드라마 소재로 쓰일 정도로 현실에서 없는 희귀한 경우라고 봐야 한다. 슈퍼맨과 원더우먼 영화를 본 후에 모든 미국 남자와 여자들이 초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편견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자폐증을 환상에 가깝도록 미화시킨 다음, 장애인도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으니 경멸하거나 차별하면 안된다고 계도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편견과 차별을 불러 일으킬 위험이 있다. 훌륭한 재주가 없는 장애인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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