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오늘 아침 내가 준비한 음식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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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경력이 쌓여서 그렇기도 하고, 아이들이 자라서 나의 직접적인 손길이 덜 가게 되어서, 요리나 설거지 등의 집안일을 하는 것이 수월해진 것을 체감한다. 게다가 갱년기를 지나면서 수면욕도 줄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더이상 힘들지 않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세 명 분의 도시락을 세 가지 다른 메뉴로 준비하고 남편의 아침식사 까지 한식으로 준비하는,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일을 해냈다 🙂

둘리양의 도시락

둘리양 학교 급식 메뉴. 이번 주에는 금요일이 휴교일이어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메뉴가 있다.

둘리양은 매일 저녁 다음날의 학교 급식 메뉴를 검색한 다음 급식을 먹을지 집에서 도시락을 싸갈지 정한다. 위의 메뉴 중에서 굵은 글씨로 써있는 주메뉴는 셋 중에 하나를 고르고, 나머지 가는 글씨체로 써있는 사이드 메뉴는 공통으로 나온다. 어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팬케익이 나오는 날이라 학교 급식을 먹었고, 오늘 화요일은 치킨 타코나 치킨랩 샌드위치 또는 터키 샐러드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둘리양이 엄마의 떨어지는 기억력을 돕기 위해 적은 도시락 메뉴 기록 🙂

베이글 샌드위치가 먹고 싶으며, 도시락통의 작은 칸에는 과일을 넣어주면 좋겠는데, 집에 있는 과일이 무엇이 있냐고 물었다. 용의주도한 둘리양이다 🙂 포도와 사과 중에 어떤 걸로 넣어줄까? 하고 물으니 포도가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 엄마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기억을 못할 수도 있으니 종이에 도시락 메뉴를 좀 적어두라고 했다. 코난군은 같은 걸로 싸주어도 되지만 전날에 먹고 남은 스파게티가 있고 또 코난군이 스파게티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그걸로 싸주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부엌에 나와보니 둘리양 도시락에 넣어주려고 했던 포도를 어젯밤 누군가가 다 먹어치운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럴수가! 하고 도시락 메모를 보니 위의 사진처럼 포도를 좍좍 그어 지워버리고 사과라고 다시 써둔 것이 보였다 ㅎㅎㅎ 나중에 물어보니 어젯밤에 내가 잠든 사이에 코난군과 둘리양이 야식을 챙겨 먹다가 포도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걸 다 먹어버려서 도시락 메뉴를 고쳐 써두었다고 한다. 아이가 사리판단을 할 수 있게 되니 이렇게나 수월하다! 둘리양이 아직 글을 쓸 줄도 모르는 유치원생 나이였다면, 자기가 찜해두었던 과일을 오빠가 다 먹어치운 것을 보고 화를 내거나, 아니면 그 밤에 나를 깨워서 사건 보고를 했을텐데 말이다.

베이글을 토스터에 구워 크림 치즈를 바르고 두 가지 종류의 햄을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사과를 썰어서 갈변하지 않도록 설탕물에 한 번 담궜다 건져서 도시락통에 담아, 둘리양의 도시락 완성.

코난군의 도시락

전날인 월요일은 내가 저녁 강의가 있어서 출근 하기 전에 가족들의 저녁 식사를 준비해둔다. 목요일도 마찬가지이다. 엄마가 차려줄 수 없으니, 남편이나 아이들끼리 그릇에 담아서 먹기 편하고 전자렌지에 쉽게 데울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해두는데, 어제 저녁에는 밋볼을 넣고 스파게티를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테니스 클리닉을 마친 두 아이들에게 아빠가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주어서 스파게티를 먹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코난군의 도시락으로 당첨. 코난군은 학교 급식을 먹으려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점심 시간이 부족해진다며 언제나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는다. 샌드위치, 구운 감자, 파스타 같은 것을 돌아가며 싸주는데 오늘 아침은 전날 만들어둔 스파게티를 데워서 담아주기만 하면 되니까 아주 편했다.

남편의 도시락

남편역시 점심은 시간이 부족하다며 한 손에 들고 일하며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를 늘 준비해달라고 했는데, 얼마 전에 한 건강검진 결과를 보니 샌드위치 보다는 조금 더 건강한 음식을 먹게 해야 할 것 같아서 요즘은 샐러드를 만들어 준다. 시판 샐러드 야채를 사다가 쓰지만, 거기에 다른 채소를 더 썰어서 넣고, 닭가슴살, 견과류, 치즈 등을 더 얹어서 영양의 밸런스를 고려하고 있다.

또한, 아침 식사도 씨리얼이나 토스트를 먹던 것을 요즘은 국을 한 가지 끓여서 잡곡밥을 말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차돌박이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먹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 7시부터 30분 동안에 무려 네 가지 다른 종류의 음식을 준비한 것이다. 물론 전날 만들어둔 것을 담기만 한 것도 있고, 남편의 된장찌개도 전날 저녁에 미리 끓여둔 것을 데우기만 했다는 꼼수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이 이렇게 높은 생산성을 이루어낸 것이 스스로 자랑스럽다 ㅎㅎㅎ


여기까지 쓰고나니 가족들이 하나둘씩 귀가를 했다. 나는 오늘은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귀가하는 가족을 맞이할 수 있었다. 가족들의 도시락 결과가 썩 좋지 않다 ㅎㅎㅎ 코난군만 도시락 가방을 깨끗히 비워왔고 (스파게티 말고도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간식을 두어가지 더 넣어준다), 남편은 회의가 연달아 있고 바빠서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며 그대로 가지고 왔다. 둘리양은 어쩐 일인지 베이글 빵에서 사과 냄새가 나서 샌드위치를 조금만 먹고 남겨왔다고 한다. 사과는 따로 백에 담아서 통에 넣어주었는데도 사과와 베이글 샌드위치가 서로 냄새를 교환했나보다. 그런데 빵에서 사과 냄새가 나는 것이 그리 불쾌한 일인가?

살림 경력에다 엄마 경력이 쌓이다보니, 가족들이 도시락을 남겨와도 별로 속상하지 않다. 즉, 엄청난 고생을 하며 준비한 도시락이 아니어서 남겨와도 내 고생이 허사로 돌아갔다는 실망감이 생기지 않고, 도시락 깨끗이 먹기와 엄마노릇의 평가는 그리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

2022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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