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1
가을 아침 등교길 풍경

가을 아침 등교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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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 단풍이 한창인 우리 동네

지난 주 까지만 해도 나무와 산은 초록색이 많았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온 산이 다 울긋불긋해졌다. 길가에 낙엽이 떨어져 쌓인 것을 보며 또다시 레이킹 작업을 안해도 되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어제 아침에는 두 아이들이 등교하는 장면을 오랜만에 사진으로 남겼다.

폰을 보며 아침을 먹는 코난군

코난군은 아침 식사를 아주 간단하게 한다. 요거트나 오트밀을 조금 먹곤 하는데, 그것도 저렇게 선 채로 폰을 보며 대충 먹는다. 나는 도시락을 다 준비한 다음에는 소파에 앉아서 모닝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 등교 준비를 지켜보기만 한다. 내가 일일이 따라다니며 챙겨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등교할 준비를 잘 하기 때문이다. 시간적 효율을 생각하면 소파에 앉아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지하실에 내려가서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래도 아침에 집을 떠나는 가족들에게 다른 건 못해주어도 밝은 미소와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하고 있다.

현관 문 앞에 고이 모셔둔 운동화
애지중지 하는 신발은 신을 때도 무척 조심스럽다.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문자로 아침 인사도 마친 코난군은 도시락과 물병을 가방에 넣은 다음 학교에 간다. 얼마전 동네 야드세일에서 득템한 나이키 운동화를 신주단지 모시듯 애지중지 하는데, 신을 때 조차 신발의 형태가 망가지지 않도록 천천히 조심스럽게 발을 집어 넣는다 ㅎㅎㅎ 청소년의 인지발달 특징 중에 하나가 내 머릿 속 청중 (imaginary audience) 현상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 사소한 것에 엄청나게 신경을 쓰는 것을 말한다. 코난군이 매일 아침 입은 옷과 헝클어진 듯한 머리 모양은,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사실상 코난군은 무척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옷을 고르고 머리를 손질한다. 저 운동화도 발등에 잔주름 한 개라도 생기면 그걸 곧게 펴기 위해 종이를 구겨서 신발 안에 넣어두곤 한다. 티끌 하나라도 묻으면 만사를 제치고 털어내기도 한다. 사춘기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가상의 청중이 들어앉아서 그런 사소한 것에 대해 지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동발달을 강의하는 것이 직업인 덕분에 그런 특성을 잘 알게 되어서, 굳이 코난군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비웃거나 하지 않는다. 나도 행운이고 나같은 엄마를 둔 코난군도 행운인 셈이다 🙂

학교 가는 코난군
할로윈 장식을 한 우리집 전경
왼쪽의 호박등은 타이머를 연결해서 매일 저녁에 예쁘게 불이 켜진다.
작년에 뜨개질 해서 만든 리스를 올해에도 다시 걸어두었다.

5분 거리에 있는 학교로 걸어가는 코난군을 배웅하며 보니 이웃집들도 할로윈 장식을 많이들 했다. 경쟁이랄 것 까지는 없지만, 우리집도 남들처럼 명절 분위기를 내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때마다 이런 장식을 하는데, 동네 최강은 못되어도 중간 이상은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무도 몰래 나혼자 뿌듯해 하고 있다.

우리 앞집 옆에 난 길로 코난군이 걸어가고 있다. 이 집은 유령과 마녀와 공룡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이다.
왼쪽 앞집도 아주 열심히 할로윈 장식을 했다. 가장 왼쪽에 드러누운 용은 전기가 연결되면 벌떡 일어나 불을 내뿜는다.

코난군이 우리 동네 산책로를 걸어가서 건널목을 건너는 것을 보고나면 나는 집안으로 들어온다. 건널목 이후에는 큰 가로수 때문에 코난군의 모습이 더이상 안보이기 때문이다. 그 때 쯤이면 윗층에서 옷을 갈아입고 머리 손질을 마친 둘리양이 내려와 있다.

학교갈 준비를 벌써 마친 둘리양
학교에서 할 아침 자습을 미리 하고 있다.

둘리양은 코난군 보다도 더 아침 입맛이 없어서 식사는 거의 하지 않고, 더운 날에는 시원한 쥬스를, 요즘처럼 서늘한 날에는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 마시는 것이 전부이다. 나역시 어릴 때부터 아침 시간에는 입맛이 없고 억지로 뭘 먹으면 하루종일 속이 거북한 체질이어서, 아이들에게 억지로 아침 식사를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강요한다고 말을 들을 아이들도 아니고… 대신에 코코아 한 잔을 정성껏 만들어 주었다. 생크림도 얹어서. 둘리양은 등교하면 아침 자습 시간에 온라인 수학 게임을 하게 되어 있는데, 일찍 일어나서 등교 준비를 마치고도 남는 시간 동안에 그 자습 게임을 집에서 미리 한다. 그렇게 하면 학교 자습 시간 동안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냉장고 맨 윗칸에 둘리양이 챙겨둔 것은??
전날 밤에 챙겨둔, 도시락에 넣을 과일이다.

지난 번에 둘리양이 찜해두었던 포도를 코난군이 다 먹어버려서 다음날 도시락에는 다른 종류의 과일을 넣었던 일이 있었다. 그 이후 둘리양은 이런 예방책을 마련했다. 사실은 무진장 새콤한 석류 같은 과일은 어차피 둘리양이 아니면 먹을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열심히 챙겨두지 않아도 되는데… 둘리양은 레몬이나 석류 같은 새콤한 과일을 좋아한다. 그런데 석류는 한 알에 1-2달러씩 하는데, 한 알을 다 까서 알맹이를 모으면 고작 밥숟갈로 서너번 담을 분량 밖에 나오지 않아서 무척 비싼 과일이다. 중동 지역에서 이민온 친구들 말로는, 자기네 나라에서 석류는 양동이에 가득 담아놓고 큰 대접에 까서 배가 부르도록 흔하게 먹는 과일인데 미국에서는 겨우 한두 알을 사다 먹어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 마당에도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우리집을 처음 지었을 때 할아버지께서 입주 기념 식수를 하라고 주신 것이다. 시골 할아버지댁 마당에 있는 석류 나무에서 묘목을 얻어낸 것 같다. 그런데 우리집 석류는 꽃만 많이 피고 실제 열매로 까지 자라는 것은 거의 없거나 한두 개 정도 밖에 안되었다. 그래서 석류의 맛 보다는 떨어진 꽃으로 소꿉놀이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직접 만든 고무줄로 머리를 묶은 둘리양. 귀걸이도 이제는 내 도움없이 혼자서 끼우고 빼고 한다.

아이들 학년 중에 4분의 1이 지나서, 이번 주간은 중간 성적이 나오고 초등학교는 학부모 면담을 하는 기간이다. 남편이 늦게 출근해서 아이들 등교를 봐줄 수 있는 화요일, 오늘 아침 시간으로 둘리양의 면담을 잡았다. 5학년이 되고나서 처음 면담이고 담임 선생님과는 개학일에 만난 이후 두 번째 만나게 되었다. 헌터 선생님은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해서 학부모와 소통하는 것이 수월해 보였다. 둘리양은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고, 선생님의 질문에도 활발하게 대답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했다. 심하게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학교 버스를 타러가는 둘리양 (주황색 가방을 맨 키큰 어린이)

오늘 아침에 둘리양은 아빠와 함께 학교 버스 정거장으로 가서 등교했다. 내가 이른 아침 학교 면담을 마치고 돌아오니 둘리양과 남편은 이제 막 집을 떠나려하고 있었다. 똘똘하고 야무진 둘리양이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어서 참 기쁘다.

2022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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