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반을 기다리고 기대하던 네번째 디즈니 크루즈를 다녀왔다. 우리와 동행했던 주주네는 디즈니 크루즈가 아닌 다른 크루즈를 두 번 타본 경험이 있고, 우리 가족은 디즈니 크루즈만 세 번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비교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주주 엄마는 늘 가장 노릇을 하면서 여행의 모든 것을 직접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하다가 이번에는 우리 가족이 이끄는대로 따라만 다니니 정말 편하고 좋은 여행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 역시 주주 엄마의 너그러운 씀씀이 덕분에 여러 혜택을 누려서 좋았다.
이번 크루즈에서는 코난군과 둘리양이 모두 키즈클럽을 즐기지 않았다. 둘리양에게 만 3-11세를 위한 오셔니어스 클럽과 오셔니어스 랩은 다소 유치한 느낌이 드는데다, 절친인 주주와 함께 있으니 굳이 키즈클럽이 아니어도 다른 재미를 누릴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코난군은 이번에 처음으로 만 14-18세를 위한 바이브 클럽에 들어갈 자격이 되었지만, 승선 첫 날 오픈하우스를 가보더니 자기와 맞지 않는 곳이라 여겼는지, 다시 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마도 못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눈에 띄어서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코난군은 아기때부터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었는데, 바이브 클럽의 분위기가 아마도 고등학교에서 다소 껄렁한 아이들이 모여 놀기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편하게 놀 마음이 안들었던 것일까 짐작한다. 코난군은 “그냥 난 수줍음이 많아서 안갈래요 (I won’t go because I am just shy)” 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렇게 되고보니, 이젠 우리 아이들이 디즈니 크루즈를 졸업할 때가 되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나는 아직 졸업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ㅎㅎㅎ
그러고보면 남편역시 디즈니 크루즈를 좋아했다기 보다는, 디즈니 크루즈에 환장하는 나를 보며 행복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ㅎㅎㅎ 나는 크루즈 여행 보다도 “디즈니” 크루즈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 확실히 맞다. 디즈니 크루즈 안 곳곳에 숨어있는 디즈니 캐릭터나 스토리를 찾아내는 즐거움을 누리려면 수많은 디즈니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잘 알아야 하고, 디즈니가 유치한 아이들만의 놀이 주제가 아니려면 각별한 애착심이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내가 디즈니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누구든 나만큼은 디즈니 공주의 이름과 특징과 주제가와 스토리를 알고 있는 줄 알았다. 동물 캐릭터인 구피와 반려동물 캐릭터인 플루토는 둘 다 개를 모티브로 하지만, 디즈니 가상 현실에서는 역할이 사뭇 다르다. 구피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옷을 입고 말을 할 수 있지만, 플루토는 말을 못하고 개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만 의사소통 할 수 있다는 점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었다. 주주엄마 역시나 미키마우스 등의 유명 디즈니 캐릭터 정도는 알지만, 나만큼 디테일을 알지는 못해서 그런지, 먼저 경험했던 다른 선사의 크루즈와 비교해서 디즈니 크루즈가 월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듯 했다.
내가 처음 접했던 디즈니는 외항선원이셨던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다주신 미키마우스의 팔이 시간을 가리키는 손목시계였다.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어린 나이였지만 아날로그 시계를 읽을 줄 알았던 나는 그 시계를 즐겨 착용했고, 요즘은 애플와치에서 똑같은 그림으로 시간을 보여주는 페이스를 장착하고 있다. 그 이후 수많은 디즈니 만화와 영화를 감상했고, 머나먼 미국땅에는 디즈니랜드 라는 곳이 있다고 배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디즈니랜드는 미국 뿐만 아니라 일본, 프랑스, 홍콩 등의 나라에도 있고, 미국에는 캘리포니아 주의 디즈니랜드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디즈니월드가 플로리다 주에 있었다.
내가 고향 부산을 떠나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대학 기숙사에 머물 때, 서울에 사시던 고모님댁엘 자주 방문했었다. 명절이나 주말에 집에 내려가기에는 시간이 없고, 그렇다고 기숙사에서 지내기는 처량한 느낌이 들 때 마다 강남의 꽃이름 아파트에 사시는 고모댁을 가면 맛있는 명절 음식을 얻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의 형제들 중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했던 이 고모에게는 삼남매의 자녀가 있었는데, 강남의 부유한 집안 자제들이 그러하듯, 나로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사는 모습이 보였다. 삼남매 중 가작 막내인 언니는 나보다 두어살 위였는데, 대학생 시절 동안에 미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언니의 여권과 비자 발급은 고모부의 회사 직원이 알아서 처리해 주었고, 아마도 캘리포니아 주로 여행을 갔었는지 디즈니랜드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플루토 캐릭터와 함께 사진을 찍어서 고모댁 거실에 장식해 두었었다.
그 때 그 사진을 보면서 나와는 너무도 먼 다른 세상의 모습이라고 여겼다. 그 때 나는 집을 떠나와서 서울의 사립대학교 등록금을 지원받는 것만 해도 죄송할 지경이었고, 해외 어학연수나 여행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었다. 고모가 해주시는 맛있는 음식을 얻어 먹으며 사촌언니의 디즈니 사진을 보는 것이 나와는 가장 근접한 디즈니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은 세월에 나는 어느덧 미국에 와서 살게 되었고 디즈니월드는 여러 차례 방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생활 20여년 동안에는 디즈니 크루즈에서 플루토와 사진도 여러 번 찍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 얼마나 감개무량한 개인적 성취인가. ㅎㅎㅎ
크루즈에서 내린 후, 주주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우리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방문해서 이틀을 더 머물고, 집을 떠난지 12일만에 귀가했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내리고 텅 빈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한밤중에 장을 보고, 다음날은 빨래를 하고 일주일 이상 밀려있던 여름학기 강의 채점 일을 했다. 노느라 힘들어서 감기몸살을 앓기도 했다. 이제 조금 여독에서 회복되고 기운을 차리고 보니 오늘이 주주의 생일파티 날이다. 생일파티에 둘리양을 데려다주러 가면서 주주 엄마에게 내 고마운 마음을 표하기 위한 작은 선물도 전하려고 부랴부랴 준비했다. 내일은 아트레슨이 있는 날이니 아트 선생님께 드릴 선물도 포장해 두었다. 선생님은 크루즈 사진이 보고 싶다고 하시니, 내일 아이들을 데려다주러 가면서 컴퓨터를 가지고 가서 다운로드 받은 사진을 보여드릴까 생각하고 있다.
2023년 6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