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H마트에서 울다: 울긴 왜 울어?

소설 H마트에서 울다: 울긴 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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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아트 선생님이 빌려준 책을 하루만인 어제 토요일에 다 읽었다. 역시나, 나의 게을러진 독서 습관은 지적 탐구심이 느슨해져서가 아니라 재미있고 빨리 읽을 수 있는 한글 책으로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탓이었다. 내 탓이 아니어서 안도감이 든다 🙂

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은 2021년인데, 얼마전 은퇴를 앞둔 선배 교수 리즈에게 내 김장김치를 나눠줄 때 리즈가 마침 요즘 읽고 있는 책에 김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며 내게 이 책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이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 한국인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소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를 그리워하다니, 너무 신파조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동네 도서관에서 이 책이 늘 대출중이라 빌릴 수가 없어서 읽기를 미루어 왔었다.
리즈가 강력 추천하기도 했고 마침 아트 선생님이 한글로 번역된 책을 가지고 있어서 빌려 읽게 되었다.

원래는 영어로 쓰인 소설 H마트에서 울다

에이치 마트는 한아름 마트를 누구나 읽고 기억하기 쉽게 알파벳 첫 문자를 따서 지은 한국 마트 이름이다. 내 미국 생활 초창기만 해도 한국사람들은 한아름 이라고 부르던 이 가게가 지금은 미국내 여러 곳에 개점을 했고 캐나다에도 여러 군데가 있다. 마트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한국인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즐겨 찾는 가게가 되었다. 한국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식재료와, 한국 요리에 필요한 뚝배기나 양은냄비 같은 조리 도구도 팔고, 한국 화장품, 옹기 항아리, 전기밥솥, 아기자기한 사무용품 등등 온갖 한국 제품을 구비하고 있어서 구경만 해도 즐거운 마트이다. 짜장면, 돌솥비빔밥, 깁밥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푸드코트도 있다.

북미 대륙 곳곳에 지점이 있는 에이치 마트

이렇게 즐거운 마트에서 울다니, 도대체 왜?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서부 오레곤 주에서 자랐고 동부 펜실베니아주와 뉴욕에서 록밴드 그룹 활동을 하는 음악가이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아버지 덕분에 태어나기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9개월 아기일 때 한국을 떠났고 일본과 독일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오레곤 주에 정착해서 여느 미국 아이들처럼 자랐다고 한다. 다만 여느 교포 아이들과 다른 점은, 어머니와 외가의 재력이 뒷받침해주었는지 아동기 내내 2년마다 한국을 방문해서 한 달씩 강남에 있는 외가에 머물면서 외할머니, 이모들, 사촌형제와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연세 어학당에서 한국어 연수를 받기도 했던 덕분에 한국 문화와 언어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소설의 저자인 미셸 조너

미셸의 어머니는 한국을 떠나 미국인 남편과 살지만 자신의 삶의 방식과 외동딸을 키우는 양육방식은 한국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했는데 그 중에 많은 부분은 내가 어릴 때 보던 우리 엄마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미소가 흘러나왔다. 매끄러운 피부관리를 위해 정성껏 세안을 하고 여러 단계별 화장품을 바른다든지, 그 과정 중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톡톡 치거나 윙윙 하는 얼굴 맛사지 기계 소리에 대한 기억, 작고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모으고 옷차림에 맞게 착용해서 언제나 외모를 단정하고 아름답게 유지하려는 습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집안 정리에 몰두하는 모습…
그런 자기 관리를 딸에게도 강요하고 간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미국 아이들에게는 먹히지 않는 일이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밥숟갈 위에 반찬을 얹어준다든지, “울긴 왜 울어? 엄마가 죽었냐?” 하는 말로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에 대해서 저자는 기겁을 할 정도로 싫어했다.
그 중 몇 가지는 우리 부부가 우리 아이들에게 하는 행동이기도 해서 그것 역시 재미있었다. 아이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특히 한식을 먹을 때 “밥만 먹지 말고 이 반찬도 먹어봐” 하고 권한다든지, 무심코 숙이고 있는 아이의 견갑골 사이를 툭툭 치며 “허리 펴고 자세 똑바로!” 하고 일깨워주는 것, 등등…

미셸의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고작 스물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저자는 이제 마음껏 울어도 “울긴 왜 울어? 엄마가 죽기라도 했니?”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될터이다. 엄마의 병간호를 하면서 항암치료제의 부작용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엄마에게 평소 드시던 한국 음식을 만들어 드리려고 유튜브 망치 아줌마 비디오를 검색하고, 엄마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드리기 위해 부랴부랴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그러다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어느날 에이치마트에 들렀다가 푸드코트에서 한국 음식을 나눠먹고 있는 한국인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 모든 한국적인 기억 때문에 울고 말았다.
이 책은 뉴욕 타임즈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올랐고 내 동료 리즈가 그랬듯 많은 미국인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리즈의 말에 의하면 무척 슬픈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흥미롭고 한국 문화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했다. 한국 음식과 엄마를 통해 비추어지는 한국인의 생활 문화를 저자가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사는 정혜윤 번역가가 한국어로 번역을 잘 하기는 했지만, 영어로 원래 쓰인 책을 다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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