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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개학을 하고 어른들도 개강을 하고 아직도 새로운 스케줄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신학기이다. 이번 학기에는 저조한 학생 등록 때문에 평소보다 한 과목을 더 추가로 가르쳐야 해서 조금 더 바빠지고 복잡해진 스케줄을 기억하는 데에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아이들의 스케줄도 잘 기억하고 있어야 어느 날에 저녁밥을 할지 어느 날에 라이드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방과후 테니스 클리닉이 있는 날은 월요일과 수요일인데, 아이들 라이드는 남편이 해주면 되지만 내가 월수요일마다 저녁 강의가 있어서 저녁 식사를 전날에 미리 준비해 두거나 아니면 사먹게 해야 한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두 아이의 음악 레슨이 있지만 아이들이 걸어갈 수 있어서 라이드는 필요없고, 나도 저녁 식사 시간 전에 퇴근할 수 있어서 편한 날이다. 금요일은 아트 레슨에 데려다 주어야 해서 오후 강의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귀가해야 한다.
오늘도 아침부터 이런 저런 일로 바빴는데, 편리한 위치에 있는 우리집 덕분에 수월하게 모든 일을 해냈다.
이번 학기 가르치는 과목 중에 의학적 관점에서 보는 유아특수교육 이 있는데, 판데믹 이전에 갔던 신생아 중환자 병동 견학을 드디어 올해에 다시 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올해부터는 견학을 하려면 무려 아홉가지 서류에 싸인을 해야 하고, 그 중에 둘은 결핵균 검사와 독감 예방접종을 했다는 확인서를 첨부해야 한다. 학생을 인솔하는 교수에게도 예외는 없어서, 나도 그 모든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견학하기 일주일 전까지 모든 서류 제출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개강을 하자마자 학생들에게 예방접종과 검사를 받도록 독려하고 있다.

지난 월요일에 결핵균 검사를 받았는데, 원래는 피부에 균을 넣고 결과를 보는 방법의 검사를 하려고 월요일은 검사, 수요일은 반응을 확인하는 날로 예약을 잡았다. 그런데 월요일에 만난 패밀리 닥터가, BCG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은 피부로 하는 검사에서 잘못된 양성 반응이 나올 수 있으니 혈액으로 하는 검사를 추천했다. 그런데 오늘 수요일에 잡아둔 예약을 취소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아서 (나중에 보니 오늘 예약은 가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 시간을 집에서 보내다가 병원으로 갔다. 만약에 병원이 집에서 멀리 있었다면 미리 전화를 해서 오늘 예약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확인했겠지만, 집에서 5분도 안걸리는 가까운 위치여서, 만약에 오늘 예약이 필요없다 하더라도 혹시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다면 바로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으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아이들 아침밥을 만들어 먹이고, 남편과 아이들의 도시락을 세 개 준비해주고 그들이 집을 떠날 때 배웅을 해주었는데도 아직 8시가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 때 부터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다 마쳤는데도 시간이 남아서, 오늘 저녁에 가족이 먹을 카레를 만들어 두었다. 병원 예약 시간이 가까워져서 카레만 만들어두고 집을 나왔는데, 5분 거리 병원에 가니, 내 검사는 피부로 한 것이 아니어서 오늘 예약은 필요없는 것이었고, 피검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아서 결국은 헛걸음을 하게 된 것을 알았다. 간호사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허비한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5분 거리 집으로 돌아와서 전기밥솥에 밥을 앉혀놓고, 이른 점심을 먹고 출근해도 12시 강의에 충분한 시간이어서 좋았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대단한 시간 절약이었다. 아이들이 걸어서 등교를 하니까 학교 버스를 기다리거나 학교까지 운전해서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되어서 일차 시간 절약, 병원과 집이 가까워서 월요일에 검사를 받는 것도, 오늘 헛걸음을 한 것도 소요되는 시간이 아주 적어서 또 시간 절약, 우리집에서 우리 학교까지 거리가 전보다 10분이상 가까워져서 집에 들러서 밥을 먹고 다시 출근할 수 있고, 저녁 식사 준비도 미리 해둘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이번 학기에 지도하는 교생실습도 우리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둘리양이 졸업한 초등학교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초등학교는 우리집에서 우리학교로 가는 길 중간이 있다) 아주 편리하다.
4년전 이맘때 이 위치에 우리집을 지을 결심을 한 것은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
2023년 8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