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살상 무기’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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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미 코넬대 교수

‘대량살상 무기’라는 듣기에도 끔찍하고, 전문가들이나 사용할 듯한 말이 이제는 미국인에게도 햄버거나 콜라만큼이나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9·11 이후 정부와 언론에서 대량살상 무기 확산이 미국 최대의 안보위협이라고 되풀이해서 호들갑을 떤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터이다.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주문을 외듯이 되풀이한 것도 효과가 있어서, 미국 조사단 스스로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한 증거가 없다고 인정을 했는데도 미국인들 다수는 아직도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다.
필자가 있는 대학 학생들도 이러한 집단적 최면증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필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하는 나라는 어디일 것 같은가? ①매년 탄저균 900㎏을 생산한다. ②유전자공학을 이용해서 탄저균 유전자를 식중독균에 이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③생물무기를 효율적으로 파급할 수 있는 운반체를 개발하고 있다. ④국제기구의 사찰에 반대하고 있다.”

눈치 빠른 독자는 간파했겠지만 정답은 미국이다. 이 정답을 바로 알아차리는 미국 학생은 많지 않을뿐더러 정답을 알고 난 학생들은 불편한 표정이 된다. “이 동양인 교수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건가?”

그러나 필자의 심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라크의 생화학무기 프로그램은 1990년대 유엔 사찰단에 의해 적발되고 해체되었다. 하지만 80년대로 가면 이라크는 생화학무기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있었고 이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80년대에 탄저균을 비롯해서 보툴리누스 등 생물무기에 사용될 수 있는 세균을 사담 후세인 통치 하의 이라크에 공급한 나라는 어디인가?”

정답은 역시 미국이다. 미국의 한 사기업뿐 아니라 연방정부 연구소인 질병통제소가 이러한 대량살상 무기 확산행위에 가담했던 것이다. 더욱이 질병통제소는 이라크 알 무타나에 있는 생화학무기 연구단지에 직접 세균 샘플을 제공하기까지 했다.

최근 언론보도는 이란이 80년대에 파키스탄을 통해 핵무기 생산시설을 도입하려 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란은 핵무기 시설 도입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이러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는 않다. 언론의 보도만 보면 이란은 80년대부터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했고 지금도 그 야욕을 버리지 못한 위험한 대량살상 무기 확산국이다.

그러나 언론의 집단 최면적 일방 보도에서 한걸음 물러나 당시의 중동을 보자. 이라크는 미국의 비밀스런 지원을 등에 업고 이란과 전쟁을 하고 있었고, 생화학무기라는 대량살상 무기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채 미국과 이라크를 상대하던 이란은 이란 나름대로 대량살상 무기 확보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지금 와서 이란-이라크 전쟁과 미국의 이란 고립정책, 이라크 지원정책을 빼버리고 이란의 행위만을 문제 삼는 것은 정확한 상황인식도 아니고, 안정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란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러나 이란의 행위만을 문제시하는 일방적 상황인식은 위험하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쌍방적 해결책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북핵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이 최근 공식적으로 밝힌 것과 같이 핵무기를 개발했다면 이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러나 북의 행위만을 문제시하는 일방적 인식은 위험하다. 미국이 이미 50년대부터 핵무기로 북한을 위협하는 한편, 경제봉쇄로 북을 고립시킨 데 이어, 부시 행정부 들어서 선제 핵공격과 정권변형으로 적대정책을 강화했다는 전체적 상황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는 ‘대북 적대정책’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대북 적대정책’ 해소에 미국과 한국이 각자의 몫을 하는 만큼 ‘북핵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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