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영일기 5월 10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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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아침 10시가 성적처리 마감시한이었다.
네 과목 중에서 교생실습 과목은 바바라 선생님이 최종 처리 및 보고를 하셨고, 나머지 세 과목은 내가 마쳤다.
인간발달: 12명 중에 2명이 B, 나머지는 A
유아문학: 21명 중에 1명이 B, 나머지는 A
유아발달과 학습: 21명 중에 18명은 A, 두 명이 B, 그리고… 오늘 모처럼 일기를 쓰게 한 학생 한 명이 C를 받았다.

강의 중에 다른 학생에게 핸드폰을 걸어서, 벨소리 끄는 걸 잊어버리고 있던 그 학생만 얼굴 빨게지도록 곤란하게 만든 적도 있고 (이건 그 곤란함을 당했던 학생이 내게 사과 메일을 보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룹으로 하는 과제에서 자기 몫을 다 하지 못해서 인심을 잃기도 하고… 암튼 그다지 성실하고 성숙한 편이 못되는 그 녀…

기말 페이퍼를 수요일까지 내도록 되어있었는데, 아파서 다 못썼다며 다음 월요일까지 내겠다고 했고, 나는 늘 그래왔듯이 그 정도쯤이야 하고 허락해주었다. 월요일 밤 늦게 보낸 페이퍼 파일을 열려고 하니, 이상한 문자만 나오고 열리지가 않았다. 다시 보내라는 이메일을 즉시 보냈으나 이틀동안 묵묵부답… 수요일 밤에 이메일이 와서 기숙사 컴퓨터가 이상해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목요일 아침에 인쇄해서 내겠단다.

목요일 아침에 다른 과목 페이퍼 더미 속에서 발견한 달랑 한 페이지 짜리, 이름도 과목도 안써있는 그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과제물…

네 페이지를 참고문헌을 인용하면서 쓰라고 강의계획안에 써놓고, 수업시간에도 리마인드 시키고, 심지어 채점기준표까지 미리 보여주었건만…

그녀가 받은 점수는 10점 만점에 1점…
다른 학생들은 6점에서 10점까지 받았고…

나도 혼자 고민을 제법 했었다. 그냥 B를 주고 치울까…? 아니면 엄정하게 C를 줄까…?
B를 받은 다른 두 학생들의 숙제와 비교한 결과, 양심상 도저히 그들과 같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C를 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성적이 전산상으로 뜬 어제 그 학생이 자기가 왜 C를 받았는지 궁금하다는, 감정을 상당히 자제한 메일이 왔다. 나도 이성적으로 그 학생이 제출한 모든 과제물의 점수를 조목조목 알려주었다.

그리고 오늘… 상당히 열받은 느낌이 드는, 왜 자기가 1점밖에 못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메일이 왔다.

오후 내내 머리를 쥐어짜며 답장을 썼다.
강의계획안에 나와있는 과제작성법과, 채점 기준표를 복사해 붙이고, 니가 숙제를 제 때에 냈더라면 다시 고쳐쓰라는 조언을 해줄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보다 나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겠다… 그렇지만, 실망하거나 화내지는 말어라… 내가 가르친 다른 과목에선 A를 받았으니, 평균적으로 나한테서 B학점을 받은 것 아니냐… 나는 니가 그렇게 아프면서도 두 과목 모두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 자랑스런 마음이 든다… (꾀병인 게 분명했지만, 니가 만든 덫에 너를 걸려들게 해주마… 이런 의도로 써넣은 문장임)

그리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그 학생과 다른 학생의 과제물, 그리고 보내려하는 이메일을 바바라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바바라 선생님도 그 학생이 C를 받은 것에 대해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내가 쓴 이메일의 내용이 충분한 설명이 된다고 하시기에…

이메일을 보내놓고 퇴근을 했다.
그리고 저녁 내내 다시 곰곰히 생각하고 있다…
내가 잘 한 것일까, 잘 못한 것일까…?

다음 학기엔 4학년 강의가 없어서 다시 그 학생을 강의실에서 만날 일은 없으니 후환(?)이 두렵지는 않은데…
친절한 교수가 되는 건 좋지만, 영혼과 양심은 팔지 말라던 이경화 선생님의 충고도 생각나고…
–> 그럼 잘 한 짓이지 아마?

그렇지만, 얄미운 짓을 좀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난 일 년간 나한테서 네 과목이나 배운, 정이 많이 든 학생인데… 학점 때문에 속상해할 그녀를 생각하면…
–> 내가 조금 심했던 건 아닐까?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 돌이킬 수는 없다는 것.
내일부턴 더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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