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나는 딱히 열광하며 즐기는 스포츠가 없다. 직접 플레이 할 줄 아는 종목도 없고, 선수들의 이름을 줄줄 꿰며 관람하는 종목도 없다.
축구라는 경기는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내 관심분야 밖의 일이었다.
어릴적 어쩌다 티비에서 중계하는 세계대회를 (그게 월드컵이었는지 청소년 대회였는지조차도 모름) 흑백화면으로 스쳐보거나, 그걸 보면서 들고 있는 밥숟갈이 들썩이도록 발길질을 덩달아 하시던 아빠에게 나직한 잔소리를 보내던 엄마의 음성, 아니면 교실 뒷편 게시판에 오려붙였던 흑백의 신문 사진… 그런 것이 내가 인지하던 한국 축구의 전부였다.
아… 차범근이 광고하던 남양 요구르트도 있구나… 인기 아나운서와 결혼한 허정무 선수도 기억나고… 그리고 대중가요 후렴구처럼 신문이나 티비에서 읊조리던 멘트… 우리 선수 열심히 뛰었으나 세계의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던…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딱히 축구가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유학 생활의 고단함을 한자리에 모여 소리 지르고 먹고 마시며 풀 수 있는 신나는 기회였고, 홈그라운드의 잇점이다, 심판이 편파적으로 잘 봐줬다, 이런 저런 말은 많아도 어쨌든 좋은 성적과, 세계 대회를 유치한 우리 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더욱 즐거웠었다.
서랍 속 4년 전의 붉은 티셔츠를 꺼내 입고, 이번에도 축구 화면 앞에 앉았었다.
토고에게 이기고, 프랑스에게 비기고, 마침내 스위스 전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동은, 우리 나라 선수들의 체력과 기량이 향상되어서 남의 땅에서도 16강을 노리는 수준이 되었다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나는 오프사이드 반칙의 정확한 정의도 잘 모르고, 누가 공격수고 누가 수비수인지도 모르고 (오직 누가 골키퍼인지는 아주 잘 안다 ^__^), 4-4-2 전법이니 하는 것도 알지 못한다.
그런 일자무식인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은…
머나먼 나라 독일에서 하는 경기를, 또다른 머나먼 나라 미국에서 영어로 하는 중계방송을 보는 내내, 내 귀를 때리던 한국인들의 응원하는 소리로부터였다.
우리 나라가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경기에 직접 가서 저렇게 큰 소리를 내며 응원을 하는 수준이 되었구나… 국제선 비행기값 내지는 최소한 월드컵 경기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아졌구나… 빨간 티셔츠 한 장 사입는 건 껌값 수준이고, 한 번 쓰거나 바르고 버릴 붉은 악마 머리띠와 페이스 페인팅에 들이는 돈보다도, 우리팀 응원이 더 중요한… 그런 나라가 되었구나… 하는 어찌보면 궁상맞기까지 한 감동을 느꼈던 거다.
이십 수 년 전, 밥상머리에서 흑백 화면으로 국제 축구 경기를 보던 그 시절에… 우리집 밥상엔 돼지고기 한 점 없는 김치찌개가 올랐고, 엄마는 단 두 켤레의 양말을 매일 빨아대며 우리들의 입성을 그나마 단정히 꾸려주시곤 했다. 조금 더 궁상맞은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우리 동네에서 우리집 형편은 그나마 ‘좀 산다’는 수준이었다.
배고프던 그 시절, 머나먼 남의 나라에 가서 경기하던 그 때 그 시절 그 선수들… 관중석에서 단 한 마디의 응원 구호라도 들을 수 있었을까? 14인치 흑백 화면 앞에서 방구들이 꺼져라 응원해도, 그 함성이 태평양을 넘어설 순 없었고, 그래서 그들도 ‘세계의 장벽’을 넘을 수 없었으리라…
이제 우리는 선수들의 헤어 스타일과 유니폼 디자인을 논하며 축구를 관람한다. 잘생긴 축구 선수는 화장품 광고 모델을 하고, 감독은 비싼 돈을 주고 외국에서 수입해 온다. 심판이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판정을 하면, ‘주최국에 대한 예우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배짱을 내밀고, 우리에게 불리한 판정을 하는 심판에게는 ‘저 놈이 나쁜 놈이다’ 하지, 배고픈 나라의 서러움이라고 울분을 삭히지 않는다.
이만하면 16강에 들지 못해도 충분히 훌륭하지 않은가…?
2010년 월드컵 경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다고 한다.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여유있는 마음으로, 승부의 결과 보다도 경기 자체를 감상하며 관전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2010년 월드컵 경기는, 잘 꾸며진 지하 AV룸에서 벽면에 쏘아 비친 초대형 화면으로 보면서 응원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어본다. 그야말로 30년 만의 내 인생의 쾌거가 아니겠는가 말이다…